1900년 2월 27일 탄생한 영국노동당이 엊그제 창당 100주년을 맞았다.
100년 전 이날 언제나 그렇듯 우중충하고 안개가 짙게 낀 런던의 패링돈가 메모리 홀에서 노동조합 대표 등 129명이 모여 노동창 창당의 깃발을 치켜 든 것이다. 이들은 노동조합과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진보적 노선의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 독립노동당, 사회민주연맹 등 사회주의 단체 들의 대표들이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노동당의 이름을 내건 것은 아니었다. 새 단체는 의회 진출을 목표로 노동대표위원회(LRC: Labor Representation Committee)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노동당명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출범 6년 후의 일이었으며 사회주의 당헌을 채택한 것은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 후 최초로 집권에 성공했다.
사생아 출신이지만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제임스 램지 맥도널드가 온갖 역경을 딛고 최초의 노동당 내각의 총리가 된 것이다. 그의 내각에는 방직공 등 공장노동자 출신 각료들이 적지 않았는데 중요한 연회에 참석할 때 입을 연미복조차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첫번째 열리는 각료회의에 거의 모두 지각을 했는데 만원버스와 특장전차 탓이었다.
어쨌든 그런 노동당이 애틀리 윌슨 등 지도자들을 거쳐 토니 블레어에 까지 이르렀다. 『이제 계급간의 투쟁은 끝났다. 새천년에는 좌파나 우파로 대별되는 이데올로기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 제3의 대안인 실용주의 노선을 모색해야 한다.』 노동당 100년, 그 기수 블레어는 그렇게 외치고 있다.
그러나 「제3의 길」에는 대내외적 도전 또한 만만치 않다. 「그것은 정치적 매춘일 뿐」이라는 전 원내총무 포스터의 비판, 「제3의 길은 잘못된 길」이라는 동료의원 44명의 비난성명, 『제3의 길이 아닌 영국의 길을 찾 아야 한다』는 보수당수 헤이그의 혹평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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