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 생보업계 민간의료보험 출시 경쟁
3월 2, 3일자 경제지를 위시한 일간 신문들은 생명보험회사들의 “개인
의료보험” 상품 출시와 판매경쟁을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교보생명이 민영의료보험 형태의 상품인 “개인의료보험”을 2일부터
판매하기 시작하였다는 내용을 다룬 것으로 그 대강은 이러하다. 보험
가입자가 질병으로 보험회사가 지정한 병원에 입원할 경우, 보험회사
는 질병당 약정된 보험금으로 병원비를 직접 지급한다. 지급하는 비용
중에는 의보급여대상 치료비의 본인부담금 전액을 포함하여 MRI 등
의 고가검사장비에 대한 비용도 포함되어 있다. 만약 병원비보다 보험
금이 크면 잔액을 가입자의 통장에 입금시켜 주고 부족한 병원비에
대해서는 보험가입자가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사실 이와 같은 건강관련 민영보험이 우리에게 그렇게 낯설고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그 부류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암보험은 96년말 가
입고객이 8백 50만명을 초과하여 평균 5가구 당 1가구가 가입되어 있
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보험의 보장 내용 제한과 높은 본인부담금은 대다수 사람들 사이
에서 ‘암보험이나 성인병보험 하나쯤은 가입해 두는 것이 좋다’는 정
서를 자체적으로 확산시켜 온 지 이미 오래다. 몇 천원의 의료보험료
인상에 거세게 항의하면서도 실제로는 보장의 수준마저 알기 힘든 암
보험에 매달 몇 만원을 꼬박꼬박 바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개인의료보험”에서도 30세 남자가 20년 만기로 매달 4만2천1백10원
의 보험료를 내어야 3대 질병(암, 뇌졸중, 급성심근경색)이 생겼을 때
치료비로 2천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개인의료보험” 출시는, 공적 의료보험에 대한 만연된 불
신의 결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심각한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현재의 사회보험의 위기 상황에 중첩되어 발생하였다는 점이다.
의보 재정의 파탄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는 마당에 약속된 정부의
재정지원은 그 기미조차 보이고 있지 않다. 또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기조에 편승하여 자본은 사회보험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의 경감을 요
구하고 있다. 누적된 보건의료 모순의 폭발 속에서 의사를 비롯한 공
급자들의 불만도 현단계의 개혁 과정에서는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사회보험을 지켜내고 올바른 방향
으로 개혁해야 할 민중마저 의료보험에 대해 기본적인 애정과 신뢰를
갖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민영의료보험의 상품경쟁이 본격화한다면 의료보험의
권위는 급격하게 추락하고 말 것이며 개혁을 위한 어떠한 작업도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자명하다. 최근 더욱 심
화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은 그대로 건강상의 불평등 심화로 나타나
게 될 것이며, 사회적 비효율성의 증가 속에서 보험을 운영하는 자본
과 사회적 부담을 덜게 될 총자본의 이익만이 보장될 뿐이다.
둘째, 기존 건강관련 민영보험들이 가입자들에게 질병이 발생했을 때
고정금액을 보상하는 방식, 즉 직접 정액보상인 데 비해, 이번 “개인
의료보험”은 여러모로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먼저 의료체계에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으면서 효과를 미친다는 점이
다. 실제로 교보생명은 가입자들이 이용할 병원 지정 문제를 대형 대
학병원 및 종합병원과 협의 중이라 한다.
극단적인 무질서 상태인 현 의료체계가 실제적인 필요(need)와 효율
성을 추구하는 개혁으로 기본 방향을 잡기보다는 더더욱 왜곡될 가능
성마저 보여주는 지점이다. 공공 보건의료의 강화. 민간 의료체계의
정비와 같은 시급한 과제는 또하나의 커다란 장애를 맞게 될 것이다.
고가 의료장비의 이용에 관해서도 남용이 우려되는 한편 의학적인 필
요가 보험사의 이해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는 등, 비효율과 진료의 왜
곡은 심화될 것이다.
현단계 한국의 보건의료는 자체적인 모순이 누적, 심화되어 온 가운데
신자유주의의 위협마저 가세하여 올바른 개혁의 전망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민중적 힘에 기반한 보건의료개혁을
통해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현상 유지조차도 힘들다는 것을 이번
민간의료보험 출현 사태는 말하고 있다. 사회보험의 위기는 의보재정
의 고갈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보험의 이념적 존립 기반 자체
가 도전받고 있는 현실을 분명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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