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공적 혹은 사적 삶의 영역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육체적, 성적(sexual) 혹은 정신적 고통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수 있는 성에 기반한(gender-based) 모든 형태의 폭력”을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규정한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여성의 존엄성을 총체적으로 파괴한다는 점에서 여성 인권을 위협하는 최대 걸림돌로 지목되고 있다.

여성들은 일생을 통해 단 한 번도 ‘안전한 밤길’을 걸어보지 못한다. 거리뿐 아니라 가정, 학교, 직장, 사이버 공간 등 일상의 곳곳에서 성희롱, 강간, 구타 등의 폭력에 직면한다. 대개 이러한 폭력은 가장, 교수, 고용주, 어른 등 남성들이 자신의 우월적인 지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가하는 것이므로, 종속적 관계에 놓인 여성들은 이에 저항하기 힘들다.

우리의 경우, 최근 10년간 성폭력특별법에서부터 가정폭력방지법, 남녀고용평등법, 지난해 제정된 남녀차별금지법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법과 현실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여성의 일상은 전쟁터

매매춘(賣買春) 역시 여성에 대한 폭력의 또다른 얼굴이다. 매매춘의 과정은 돈의 힘으로 일시적으로나마 남성이 여성의 몸에 대한 독점적인 사용권을 소유하는 과정이므로, 매춘여성은 흔히 매춘남성의 폭력의 대상이 된다. 또 매춘 여성들의 상당수가 과거 강간과 학대의 경험을 갖고 있다는 사실, 동기가 무엇이든 일단 매매춘구조 속에 빠져들고 나면 매춘여성이 업주나 중간착취자 등에 의한 폭력과 착취의 대상으로 노예화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여성에 대한폭력이 또다른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정부의 지원과 육성정책 하에 형성된 기지촌의 존재, 외화획득이라는 미명하에 관광산업을 육성하면서 매춘코스를 집어넣는 관행을 묵인해온 정부의 태도는 국가권력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방조하거나 오히려 지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무력갈등 하에 증폭되는 폭력

특히 무력갈등 하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은 더욱 파괴적이다. 종군위안부의 존재에서 알 수 있듯, 무력갈등 하에서 여성들은 조직적 강간, 성노예(sexual slave), 성고문, 강제불임, 강제임신 등 성적 폭력의 희생양이 된다. 동티모르, 르완다, 구 유고, 버마, 코소보 등 대다수 무력갈등 상황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이러한 현상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하나의 전술로서 활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게이 맥두걸 유엔인권소위원회 특별보고관은 그 이유로 △적들을 극도의 공포에 떨도록 만들고 △여성이 속한 집단의 명예를 공격함으로써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으며 △강제임신 등을 통해 인종청소의 효과까지도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여성의 몸을 하나의 전리품으로 간주하는 남성중심적 전쟁 질서도 한 몫 한다.

제주 4·3항쟁과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여성들이 성고문과 강간 등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던 사례는 타민족이 아닌 국가권력에 의해 가해진 대표적 테러행위. 그러나 지금까지 이러한 폭력행위가 처벌된 사례는 하나도 없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반인도적 범죄행위이자 인권침해로 간주하지 않고, 여성과 그 공동체의 수치로만 여기는 사회적 태도가 여성에 대한 폭력에 침묵하도록 만들기 때문. 무력갈등이 종식된 이후에도 피해 여성들이 일생을 통해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역사적으로 고착되어 온 성의 불평등, 여성을 지배와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행을 극복하고 평화를 실현하려는 노력없이 폭력으로부터 해방된 여성의 삶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경내]

<투쟁하는 여성들〉 매매춘 여성의 인권에 주목한다!

순전히 타인들에 의해 ‘창녀’와 ‘순결한 우리 누이’ 사이를 오고가는 기지촌 여성. 그들의 문제를 ‘여성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군사주의와 매매춘에 반대하는 여성주의자 연대』가 바로 그들.

“매춘여성들은 경제적 착취, 감금, 폭행 등 일상적 폭력 속에 살아갑니다. 또 금전을 매개로 한 성 관계는 평등할 수 없습니다.” ‘여성주의자 연대’에서 일하는 한 활동가는 매매춘에 반대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렇다면 군사주의는? “군대에서는 남성문화의 부정적 측면인 ‘폭력성’이 극대화되고, 그것은 성 관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봐요. 이런 점에서 기지촌 여성은 매매춘과 군사주의, 이중적 억압의 희생자인 셈이죠.” ‘여성주의자 연대’가 미군부대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문제에 주목하게 된 데는 기지촌 자원활동의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리고 지난 해 9월 동두천 기지촌에서 발생한 이정숙 씨 사망사건은 ‘여성주의자 연대’가 구성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정숙 씨 사망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로 모였던 이들이 기지촌과 매매춘 전반의 문제를 계속 고민해나가자는 데 의견을 모은 것.

앞으로 ‘여성주의자 연대’는 “우선 ‘창녀’라는 낙인 속에 스스로를 묶어둔 채 살아가는 기지촌 여성들의 존재, 그리고 그들이 겪는 일상적 폭력의 문제를 공론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곤 한마디 덧붙인 말, “사람이 죽을 때만 반짝하는 선정주의적 접근으로는 절대 기지촌 여성들의 문제를 풀 수 없지요.” [이주영]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