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연대 Section2 : 아시아 연대

아시아는 싸우고 있다

아체주, 인권유린당하고 있는 인권운동가들

수마트라 북부에 위치한 아체주에서는 인도네시아 안보군이 인권운동가들이 반란조직을 기도했다는 이유로 이들을 강제 구인한 뒤 행방불명되고 이들의 활동이 철저하게 봉쇄 당했다. 국제 엠네스티는 작년 동티모르에서 나타난 패턴과 동일하게 인권상황을 기록하는 어떤 누구라도 안보군의 폭압적인 진압으로 어떠한 증거도 없이 낙인찍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체주에서 인권운동에 대한 탄압은 최근 몇 주간 계속해서 증가추세에 있으며 그들은 불법적인 살인과 독단적인 구금, 고문, 협박등으로 희생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 대부분이 안보군에 의해 끌려가게 될 것이라며 공포에 질린 채 달아나고 있다고 엠네스티는 덧붙였다.

“인권운동가들이 안보상황의 정도에 따라 그들의 작업을 수행한다는 것은 이제는 실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사회운동가들에 대한 탄압은 국가안보라는 미명아래 어떠한 종류도 상관없이 살인과 고문을 할 수 있게 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엠네스티는 경고하고 있다.

매일 타지역으로 이동하여 “행방불명”과 살인이 발생하는 사태에 대해 진상조사를 하고자 하는 활동가들의 노력은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다. 주로 학생으로 구성된 인권모니터 조직 PCC(People’s Crisis Centre)의 자원활동가는 안보군에 의해 금지구역이라는 이유로 아체주 북부에 거주하고 있는 농부 두 명의 갑작스런 행방불명과 피살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원천 거부당했다. 언론에 종사하고 있는 자미니 게니와 쥴키프리 아메드라는 사람은 아체 독립운동의 지원자를 색출하는 “싹쓸이 조직”인 안보군에 의해 피살되었다. 이 두 사람은 아체북부 Blang Seupeng마을에는 자바니의 아내가 첫 번째 임신해 있는 터라 축제에 참가했다가 도착한 안보군의 눈을 피해 숨어있었으나 발각되어 그 자리에서 총을 맞았다. 그 두 사람은 어디로 끌려갔는지, 생존했는지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사회개혁위원회라는 지역의 시민단체로부터 7명의 활동가들이 지난 2월에 구금 당한 채 심한 고문을 받았던 사실을 조사하기 위해서 아체주 동부구역으로 파견된 또 다른 PCC팀은 이 지역의 안보군의 중무장하고 있어 그들의 작업을 수행하지 못하는 일 또한 벌어졌다.

“안보군은 인권을 유린하는 사태를 계속해서 초래하고 있다는 말을 하자마자 인도네시아 군부는 오히려 안보군은 아체주에서의 인권을 신장시키고자 하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안보군의 과도한 폭압적 행위에 시민을 보호하는 어떠한 조치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엠네스티는 보고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인권운동가에 대한 보호 장치를 즉각적으로 수립해야만 하며 그들이 모든 주에서 행하고 있는 만행을 통제해야 할 것이다.(국제엠네스티 2000, 3 ,8)

인질로 잡힌 시민들 위험상태에 놓여….

배경

국제 엠네스티는 체첸당국이 현재 체첸에 억류된 인질중 언론종사자와 인도주의적 원조를 하는 활동가의 안전을 촉구하는 의사표명을 계속 제기했다. 이들이 속한 조직은 그들의 전문적인 활동할 수 있도록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1997년 이후로 체첸에 억류된 모든 언론가와 활동가들을 즉각 석방할 것으로 촉구해 왔다. 인질사건에 대해 국제적인 비난이 일자 , 아슬란 체첸 대통령은 지난 97년 7월이후로 인질 유괴자를 사형에 처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국제 엠네스티는 현재 3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납치되어 죽어갔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체첸분쟁이 계속되면서 무고한 시민이 무장한 체첸 그룹에 의해 지금까지 납치 구금 인질로 잡히는 사태가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는 어떤 정치적인 이유가 포함되어 있는데 체첸의 무장세력이 신변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으며 체첸 본국으로부터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이 안전하게 인도되면 현재 억류된 인질을 풀어주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국제 엠네스티는 전하고 있다.최근에, 전에 인질로 있던 두 시민이 지난 99년 6월 19일 체첸 무장세력에게 잉구센티야에서 납치 당한 블라드미르 야트시나라는 이타르 통신 사진 기자가 살해당한 것을 목격했다고 폭로했다. 지난 2월 28일 연방안보위는 마련한 Alisher Orazaliyev(카자크스탄의 시민, 22)의 브리핑에서 “지난 2월 20일 샤토이 마을에서 교환된 우리는(인질그룹) 야트시나가 건강상에 어떤 문제가 있어 보였다.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보여서 5km를 남겨놓고, 더 이상의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공습이 시작된 이후 우리는 숲으로 도망을 쳐야 했고 후퇴 중에 우리는 그의 시신을 보게 되었다.”고 밝혔다.

야트시나의 부인이자 모스코바 경제학자로 있는 골로벤코바는 “그는 분쟁이 발생하기 전에 정치적인 수감자로 있던 사람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그들은 야타시나를 더 이상의 사업적인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들의 정치그룹은 체첸 반군으로부터 다른 팀과 몇 번이나 교환되었다.”고 언급했다. 골로벤코바는 그녀는 러시아 장교와 잉구셍티야 공화국 대통

령에게 몇 차례나 도움을 호소하였으며 체첸 당국에도 몇 번이고 청원서를 써왔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체첸 외무부 장관인 일리야스 아카마도도프는 지난 3월 7일 엠네스티에게 체첸정부는 범죄집단이 인질을 납치해온 사실에 대해서는 지난 과거동안 수 차례 유죄를 구형해왔다고 하면서 야트시나처럼 특별한 사례를 알지 못했지만 체첸정부의 채널을 통해 이러한 사태에 대해 조사를 해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다른 인질은 엠네스티에게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순수한 회계사로 있었다가 “와하비스”라고 불리는 무장조직에 의해 인질로 잡혔다고 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무장세력은 인질로 하여금 강제적으로 참호를 만들게 하고 그들은 연방정부와 교전을 했다고 전했다. 체첸 수도의 시민은 이들 무장세력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으며 종종 그들이 마을로 침투해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제안을 거절을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마피아 깡패조직은 아니며 분명 훈련을 받고 조직화된 군대그룹일 것이라는 추측도 하였다. 엠네스티가 현재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체첸 공화국에 인질로 있는 시민들 중에는 지난 99년 10월 이후 체첸에서 억류되어 있는 프랑스 사진가지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엠네스티 정부는 체첸 당국에게 인질로 있는 시민을 당장 돌려보낼 것과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줄 것을 촉구했다.

(국제엠네스티 2000, 3, 7)

동티모르와 동남아시아 안보

-동북아 안보 네트워크 특별보고서-

웨이드 헌틀리와 피터헤이슬

이 기획글은 노틸러스 제단에서 주최한 전 세계적 안보를 위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웨드 헌틀리와 동아시아 분야 정기보고서인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 그리고 세계체계” 를 제출한 피터헤이슬이 공동으로 펴낸 글입니다. 이들의 시각은 아직 1세계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어 우리와는 일정 다른 입장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1.미국의 책임

2.공동의 지역적 안보-유엔과 아세안

3.지역안보의 헤게모니- 호주

4.위험한 가정과 결론

서

지난 8월 30일 동티모르 독립투표당시 발발한 인종학살과 유엔의 승인 하에 다국적군의 파견 등 일련의 동티모르 사태는 동티모르의 비극적인 역사에 있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동남아시아의 지역분쟁을 자체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여러 아시아-태평양안보협정의 형편없는 무능 속에서 동티모르의 유혈사태와 분쟁이 발발한 것이다. 게다가 탈냉전 시대이후 인권과 국제적 안보관계 하에 그 심각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으며 최근 국제사회속에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하

나의 문제인 “인종청소”가 중첩되어 있다.

미국의 책임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 당국들간에 남겨진 중요한 문제들이 산재해 있더라도, 의심할 여지없이 동티모르 민중의 대학살에 대한 중대한 책임성은 일차적으로 독립투표때 만행을 저지른 민병대와 이들을 지원하고 인가한 인도네시아군에게 있다. 그러나 위기에 대한 국제적인 개입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동티모르에 억업을 가했던 인도네시아에 대해 국제적인 과실의 역사를 밝혀내는 것 또한 중요한 의제이다.

문제의 책임을 보다 확대시켜 보면거기에는 미국의 책임이 단연코 거론되어야 한다. 미국은 지난 수십년 동안 자국의 이해를 유지시키는데 있어 대중적 저항운동을 저지시키고 인도네시아 군부독재를 인정하고 이를 보호하는데 정책을 입안했다. 이러한 접근에 따라 미국은 인도네시아 군부의 국제 인권기준을 광범위하게 어기고 있는 것에 대해서 용인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1965년부터 66년 사이에 벌어졌던 인도네시아의 대학살을 방조해왔다. 미국은 포르트칼 식민 통치의 종언과 함께 1975년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공을 은밀히 지원하고 묵시적으로 이를 수용했다. 동티모르 침공을 명백히 용인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워싱턴은 이 지역에서의 인도네시아의 유혈사태를 억제시키고자하는 유엔의 의미있는 노력들을 전복시키는 일들을 배후에서 진행시켰다. 또한 지난 25년간 인도네시아의 잔악 무도한 통치를 방관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티모르 민중학살의 국제적 관심과 지원을 효과적으로 저지시켜온 것이다. 동티모르 독립투표 이후에 가해질 폭력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유엔 참가국의 지원을 미국은 꺼려왔으며 이것은 단지 최근 인도네시아 군부와의 공모중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투표 이후 위기가 가시화 되는 동안 미국의 많은 논평가들은 자국의 이해 속에서 인도네시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인도네시아 영해가 원유생산지라든가 혹은 동남아 지역에서의 일정한 파워를 가진 국가로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등을 인용하며 술책을 부리고 있다. 이를테면 일련의 논쟁들은 마라카 해협과 롬복 해협을 호주주변의 해안항로를 교대로 사용함으로써 적은 비용과 상대적으로 용이한 측면이 있는데 이것을 무시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서 인도네시아의 분쟁 때문에 두 항로를 패쇄시

켜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자기합리화는 동티모르와 이 지역의 지원국들 사이에서 미국의 신용만을 깍아 먹게된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동티모르 위기를 접근하는데 있어 미국의 주의를 요구했던 일정정도의 논쟁은 일면 타당성을 있다. 특히 동남아 지역에서의 전략적 특성이 뚜렷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가하고 미국은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의 권력 계층들을 이용할 수 있는 여러 수완을 일정 상실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과 인도네시아간의 장기적이고 친밀했던 군사적 교류는 동티모르 사태 이후 상당히 쇠잔해진 상태다. 아직까지 인도네시아 군부는 두 국가간이 상징적으로 중요성을 지속시키겠다는 입장을 보이기 있지만, 실제적인 가치를 보면 퇴색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동티모르 독립선거 일주일전에 행해졌던 합동 군사훈련이 중단되었던 사건처럼 군사적 지원의 흐름은 인도네시아 군부의 상당한 요구에 대해서 압력을 행사는 등의 태도로 전향했던 일들이 발생했다. 이로써 인도네시아의 모든 군사적 교류에 회의를 보냈던 클린턴 행정부는 펜타곤의 반대를 물리치고 동티모르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토록 승인하고 인도네시아 군부에게 외압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였다.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인도네시아는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가 불어 닥친후, IMF와 세계은행 그리고 아시아개발은행으로부터 받은 신용을 통해 매월 10 억 달러 상당의 외채를 미국과 일본에 의존하고있다. 이런 상황은 결국 미국과 일본에 적지않은 영향력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영향력을 정책적 기제로써 이용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동티모르를 폭력적으로 억압했던 데에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인도네시아 군부는 외부지원이 차단됨으로써 인도네시아 사회에 최소한만의 영향을 미치는 세력으로 남게 되었다. 따라서, 지난해 9월 딜리 수도의 대학살이 발생하는 동안 많은 이들이 예상하고 있었듯이, 더 이상 인도

네시아 폭압적인 군부 권력의 지도력은 위협이나 경제봉쇄 조치를 철회할 수 있는 지원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현실적으로, 대규모적인 경제 봉쇄는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국민이 군부정권의 만행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자국의 군부정군의 행위로 말미암아 인도네시아 민중전체로 책임 전가될 위험에 처해 있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경제봉쇄정책이 계속 유지될때, 가난과 경제적 파산, 그리고 사회적 갈등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인도네사아 고위 정치인들은 민주화 운동을 수용하는데 있어 상당한 질곡에 빠질게 자명하다.

이러한 현실은 서티모르와 다른 인도네시아 내 드러나고 있는 주 독립운동에 대한 인도네사아 군부세력의 대응에 미국은 개입을 확장하기 보다는 축소하는 형태로 유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 개입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인도네시아와 이 지역 어디서든지 발생하고 있는 사태에 대해 자국의 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초기 동티모르에 직접적인 개입을 꺼려했음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정부는 뉴질랜드의 아펙(APEC)회담에서 동남아지역에서의 위기 대응을 강조하였다. 또한 동시에 오스트렐리아와 타국들은 국제적인 평화유지군의 지원을 위한 미국의 강력한 수단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는 국제적이면서 자국내 여론의 압력에 못 이겨 마지못해 묵인했던 것이고 클린턴 행정부는 동티모르 독립투표 전후로 벌이진 폭력사태에 인도네시아가 공모되었다는 비난에 대해 대단히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정부의 직접적인 비난을 통해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에 대한 평화유지군을 수용하게 되었으며 미국의 시선을 민감하게 추이하고 있다.

유엔의 승인과 미국이 승인의 도장을 찍은 후 나라별로 파견된 국제적인 파병 구성은 오스트렐리아와 한국군을 포함해, 중국은 경찰을 투입하고 일본은 서티모르에 자위대를 인도적인 차원에서 배치하였다.

위와 같은 사실에서 두가지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데, 위 사례에서 증명하고 있듯이 미국 권력이 개입하는데 있어 상당한 복잡성을 띠고 있다하더라도, 한번의 기회가 동티모르 민중을 지원하도록 하는, 현명한 선택을 택하게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에는 ‘동티모르 미래에 우위한 인도네시아의 안정’이란 이름 하에 드리대는 미국 이해잣대의 합리화란 고작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있어 부적절한 수단이 존재하는 지상에서 아무런 정당성이 없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아마도 더욱 중요한 문제일지 모르는데, 위기의 결과가 결국 미국의 중심적 역할을 재생산하게 되는 것이란 특정지역의 구성된 국가가 수행해야할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함으로써 비극적으로 지역안보에 무능한 국가들을 출현시킨다는 것이다. 동티모르에서 발생했던 많은 일들, 그리고 앞으로 야기될 문제들은 동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의 안보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으로서 계속해서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동티모르 사태의 경과과정은 집단적인 인권유린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아세안 국가 군부세력에 대한 수용해야할 행동규준이라는 사안이 부상하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코소보사태 이후 나타난 전례들과 함께, 등장하고 있는 인도주의적 개입의 정당성에 한층 기여하게 된 셈이다. 기존 안보기구들은 위기가 출현하자마자 효과적이면서 급속도로 번지게 된 사태에 적절한 대응을 구사하지 못함으로써,

동티모르 민중에게 더 없는 죄값을 이미 저지른 셈이다. 오스트렐리아가 주도하는 다국적군의 파견은 우선적으로 재정과 인원을 지역적으로 광범위하게 위탁했던 의미를 지니는 반면, 이러한 결점을 본질적으로 해결하는데는 상당히 부족하다.

■ 글·번역·정리 : 박진홍 (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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