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곰이 부리고… >

구조조정 강요하더니 주식투자로 떼돈

10대재벌 총수재산 1년새 46%나 늘어

5천5백만원 휴게회원권에 1만2천명 줄서

봄이다. 황사바람이 거셀망정 지리한 겨울을 견디고 얼굴을 내민 새순을 볼 수 있어 좋은 계절. 그러나 민초들은 생명탄생의 기쁨을 느낄 겨를도 없이 보릿고개에 주린 배를 움켜줘야 했다.

누가 이를 비단 30년 전의 일로만 돌릴 수 있는가. 지금 월 23만원에도 못미치는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무려 1천3백만명을 넘어섰다. IMF가 우리 생활에 미친 영향이란 이렇게 잔인한 것이었다.

새 천년은 다를 거라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지난 98년말 12만명이던 굶주리는 어린이들은 99년 상반기에만 5만명이 늘어 17만명을 넘어섰다. 많은 경제지표는 나라가 금융위기에서 벗어났다고 말하는데 왠 일인지 가난한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또 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

1년만에 재산을 2천억원 가까이 불린 이가 있으며, 나라 곳간에 빚은 쌓일망정 지위를 이용해 부인이나 자녀들까지 동원한 주식투자로 재산을 불린 관리들이 셀 수 없다.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이 밤근무나 과로로 무려 27.1%가 유산의 아픔을 견디고 있을 때, 병원장이자 두산그룹 창업주의 넷째아들인 박용현씨는 1년새 재산을 88억 늘렸다. 두산주식 13만1천6백17주 유·무상증자 에 힘입은 것인데 이는 행정부 공직자 재산증가율 1위다. 공기업 노동자들이 숱하게 잘려나가 길거리를 헤매는 동안 이른바 공기업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한 진념 기획예산처 장관은 봉급 등을 투자신탁회사에 맡기거나 부인이 엘지정보, 동부화재 주식에 투자해 수억원을 불렸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93년 재산공개제도 도입초기 여론의 비난을 받아온 부동산 거래도 마다 않고 있다. 김경재 의원(민주당)은 세비와 부인의 병원 수익금, 은행대출금, 사채 등으로 대지와 잡종지, 아파트를 새로 샀고, 강종희 의원(자민련)은 자신과 부인 명의의 임야와 전답 등 14필지를 팔았다. 주진우 의원(한나라당)은 부인이 강원도 평창군 용평과 충북 청원군 가덕면에서 10개 필지를 매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세금이라고 제대로 냈을 리 만무하다. 총선시민연대에 따르면 4·13 총선에 출마하는 현역의원 13명이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준 뒤 증여세 일부를 떼먹었다.

오는 5월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자리에 새로 들어설 초호화판 피트니스클럽은 게르마늄 암반 광천수로 채워진 온천 사우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 회원권 분양가는 1인 3천5백만원, 부부권은 5천5백만원에 이른다. 그런데도 이미 1만2백60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고 한다. 호텔업계에 따르면 이들은 전·현직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판·검사 등 상류층 인사들이다.

재벌들은 어떤가. 10대그룹 총수들의 보유 주식 규모가 대폭 늘어났다.

이들의 주식은 지난해에 견주어 28%나 늘었다. 금액 기준으로는 상승폭이 더욱 커 1조4천5백67억원에서 6천8백15억원(46%)이나 늘어난 2조2천3백83억원이다. 최근 이른바 후계자 선정과 관련해 천민재벌의 본질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온갖 추태를 연출하고 있는 현대재벌 일가가 첫줄에 서 있다. 정몽헌 회장이 3천2백85만주로 가장 많고, 정주영 명예회장, 정몽구 회장 등 세 부자가 나란히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 김석원 쌍용 회장, 이건희 삼성회장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재벌들이 단계적으로 없애기로 한 회장비서실도 구조조정본부 또는 위원회로 이름만 바꿔 삼성 1백17명, 엘지 69명, 현대 47명씩 인력을 갖추고 여전히 그룹경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현대의 경우 최근의 패권다툼에서 드러나듯 모든 것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한마디에 결정나고 있다.

이같은 이유로 대한민국은 공공공사와 건설, 방위산업 등의 분야에서 고위 공직자들의 부패가 가장 심한 나라 중 하나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국제투명성기구(TI)가 지난 20일 밝혔다. 국내 돈세탁이 공무원이 연루된 비리사건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은 이 탓이다. 마약범죄 조직이 가장 큰 돈세탁 집단으로 등장한 국제사회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대한민국의 돈세탁 규모는 연간 54조∼1백69조원이나 된다는 게 최근 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분석이다.

IMF 경제위기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대한민국의 분통터지는 자화상이다.

정경은 joungke@kct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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