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김씨가 겪은 IMF 2년>
살아남는 것 빼곤 다 포기했다
아이는 학원·학습지 끊고, 아내는 10원짜리 전자부품 조립
현대로 넘어간 뒤엔 살인적 노동강도…전과 다른 ‘봄’ 맞고 싶다
지난 88년부터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엔진부에서 일해온 노동자 김아무개씨. 그에게는 전업주부인 아내와 초등학교 3학년인 딸, 다섯살박이 아들이 있다. IMF가 모든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가혹했지만 그 이전부터 부도난 공장에 몸담고 있던 그에게 지난 2년은 결코 쉽지 않은 기간이었다.
97년 7월 기아자동차가 부도처리되면서 노조는 그해 임금동결, 상여금 전액과 여름휴가비 유보를 결의하기에 이른다. 이듬해인 98년은 IMF에 묻혀 더욱 암울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잔업축소로 실질임금이 뚝 떨어진 상황에서 1년 동안 8백%가 나와야할 상여금은 3백%만 나왔다. 지난해는 회사쪽이 임단협을 지루하게 끄는 바람에 연말에 가서야 기본급 4만5천원 인상과 상여금 5백%, 15만원 지급에 합의했다.
임금삭감도 삭감이지만 지난 2년 동안 소하리공장이 ‘없어진다’, ‘이전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아 오히려 마음고생이 더했다. 그 뿐 아니라 동료들도 술렁댔다. 김 씨는 “많은 동료들이 이 참에 그만 둘까 싶다가도 다시 일자리를 잡기가 어려울 거라는 공포감에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말한다. 지난 해 노사간에 맺은 ‘올해 12월까지 일방적인 고용조정은 없다’는 합의가 그나마 위안이 됐다.
가족들의 생활도 말이 아니었다. 지난 2년 저축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기본급으로 할 수 있는 거라곤 입에 풀칠하는 것 것밖에 없었다. 큰 아이는 피아노학원과 학습지를 끊었고, 아내는 하나에 10원도 못 받는 전자부품 조립에 나섰다. 가계에 보태겠다는 아내의 심정을 이해했지만 마음이 안쓰러워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내는 그 일을 1년간이나 계속했다.
문화생활도 모두 단절됐다. 가끔 하던 가족들의 외식도 마음먹기 어려웠고, 비디오테입 하나 빌려보는 것도 주저했다. 그러나 회사가 현대그룹에 인수된 뒤부터 가동률은 1백%에 가까워졌다. 1만5천명이나 줄어든 인원으로 가능한 배경에는 살인적인 노동강도가 자리잡고 있다. 기아자동차노조가 자랑했던 주 41시간노동은 98년 42시간으로 늘고, 정규직이 빠져나간 일부 라인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채웠다.
노조는 올해 현대차노조 등과 함께 대우차 해외매각 반대투쟁에 나서는 한편 주40시간노동제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기아차는 항상 4월에 임단협이 무르익는다. 김씨는 올해 지난 2년과 다른 4월을 맞고 싶다.
정경은 joungke@kct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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