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영상 14

정치세력화와 TV

선거는 끝났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과제를 중심으로 선거 활동과 그 결과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겠지만, 선거기간 동안 TV매체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정도는 쉽게 평가할 수 있다. 결론은 단순하다. 비록 MBC와 KBS가 선거가 끝난 후 뒤늦게 프로그램 하나를 편성하기는 했지만, 선거기간 내내 TV는 진보적 정치활동과 관련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뒤집어 말하면 언제나 그렇듯 보수정당의 앵무새 역할을 줄기차게 했을 뿐이다.

의석 확보에만 매달리는 의회주의에 대한 경계를 기본적 전제로 삼으면서도, 선거는 분명 진보세력의 선전과 조직활동을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선거가 점점 대중매체를 활용하는 전투로 변하면서 진보세력의 입지를 확보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필자가 처음 국제연대 활동에 뛰어들던 6년전, 국제회의에 참여했을 때 만났던 브라질 활동가들의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우리와 비슷하게 80년대 중반부터 노동운동의 폭발적 발전이 진행중이던 브라질에는 노동자당(PT)이라는 좌파정당이 있다. 당시 PT는 대통령 선거에 거듭 출마하고 있었고, 선거기간에 실시된 여론조사는 박빙의 승리를 예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또다시 PT의 근소한 패배로 이어졌고, 회의에 참석한 브라질 활동가들은 눈물을 펑펑 쏟았으며, 축하파티는 위로장으로 뒤바뀌고 말았다.

당시 선거에 대한 평가 중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바로 대중매체의 문제였다. 미디어 운동가들이 헌신적으로 활동했는데도, 브라질의 TV는 모두 보수적인 자본가가 장악하고 있었고, 그들의 여론몰이는 선거막판을 결정지을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미디어는 이제 우리 정치적 삶의 결정적 순간을 좌우할 힘을 지니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볼 수 있듯 우리의 대중매체는 이념적으로 똑같은 이른바 4대 보수정당의 홍보담당자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일상적으로 부르조아 정치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해서는 엄청난 분량을 할애하면서도 노동자의 정치투쟁은 소수집단의 집단이기주의 정도로 묘사하거나 혹은 무시함으로서 정치를 대중과 철저히 분리시킨다.

물론 미디어의 이러한 태도를 결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정치세력화는 이러한 미디어의 역학관계를 어느 정도라도 바꾸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러한 미디어 역학관계의 결정적 변화는 우리가 얼마나 독자적인 대중적 미디어 공간을 확보해내며 그것을 우리의 정치활동과 결합시켜내는가에 달려있다. 정치세력화의 한 가지 실험을 딛고 서서, 우리가 다음 선거를 기약하며, 아니 그보다도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선거참여에만 한정하지 않는 일상적인 정치활동의 강화를 위해 우리는 소모적인 언론플레이를 벗어나서 스스로를 혁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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