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남북정상회담, ‘눈앞 이해’보다 길게 보자
강정구(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94년 여름 정상회담이 김일성 주석의 유고로 뜻밖에 중지된 지 6년만에 다시 열리게 되어 많은 남북의 동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 합의는 이전의 합의와 사뭇 다른 의미를 가진다. 94년 합의는 민족 자주적인 합의가 아니라 전쟁일보 직전이라는 긴박한 상황에서 전미국대통령 카터의 중재로 마지못해 남한이 응한 측면이 짙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 역시 안으로는 냉전전사와 흡수통일의 칼날을 곤두세우면서 정상회담에 임했었다. 물론 위기는 기회를 낳을 수도 있지만 무언가 밝은 전망은 아니었다.
‘자주적 합의’ 의의 커
이번 합의는 우리들 스스로의 자주적 합의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한결 높다. 남한은 나름대로 포용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고, 현대 등을 통한 민간 경제협력을 지원하고, 북미 및 북일 관계개선에 발목을 잡기보다는 지원하고, 미국에 대북한 경제봉쇄의 해제를 요청하는 등 대북정책에서 김영삼정권 때와는 1백80도 전환을 하였다. 바로 이러한 목적의식적 정책의 성과물이라 볼 수 있다. 북한 또한 여전히 극심한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작년부터 나름대로 체제를 정비하고 안정추세에 들어감으로써 나름대로 자신감을 회복하였다. 또한 객관적으로 남한과의 관계개선으로 극심한 경제난을 해소하여 장기적인 생존권을 확보하여야 하는 현실적인 요구가 있다. 여기에다 남북 모두 통일의 초석을 다져야 하는 민족사적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내외적 조건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정상회담이라는 우리 문제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합의하였듯이 앞으로 통일문제를 포함한 우리의 모든 문제를 남북이 앞장서서 풀어나가는 초석을 확보한 셈이다. 외세에 의해 분단이 강제된 지 반세기 여만에 만나는 남북정상회담은 앞으로의 이정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접근자세나 성격 및 의제 등에서 그 첫 단추를 제대로 꿰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상회담의 성격은 민족사의 긴 역사도정과 결합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외세에 의해 분단된 조국을 자주적으로 통일해야 하는 절대적인 민족과제를 위한 통일터전 닦기이다. 또 이 통일기반 조성은 지금 우리가 봉착한 통일딜레마를 급속히 해결하는 것이다.
통일딜레마를 살펴보자. 2020-2030년 경 중국의 GNP가 미국을 능가하는 시점에서 중국은 더 이상 미국의 동북아 패권행위를 용납하지 않아 동북아에 중·미간에 신냉전이 도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과거 미·소간의 동서냉전 하에서 남과 북이 아무리 협력하더라도 이 미국과 소련이 강제하는 외세의 위력 때문에 통일은 거의 불가능하였다는 역사적 경험을 보건대 바로 이 동북아 신냉전이 도래하기 이전에 최소한 부문통일이라도 이루어 이 지구촌에서 우리 민족의 통일을 기정사실화하여야 한다. 그래서 통일의 외적조건은 통일은 너무나도 시급한 문제로 긴급히 서둘러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남과 북은 지난번 서해교전에서 보듯이 아직도 원초적인 적대의식이 지배하고 있어 북한을 통일의 동반자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또 북한의 GNP는 남한의 군사비 수준에 불과할 정도여서 남북의 총체적 역량차이가 너무나 크다. 그래서 통일의 내적 조건은 너무나도 미성숙 되어 있어 당장의 통일은 북한을 남한의 내부식민지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 통일 외적 및 내적 조건상의 모순이 통일딜레마다. 그러므로 남북정상회담은 바로 이러한 딜레마를 장기적으로 풀어나가고 이를 위한 큰 그림을 서로 제시하는데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통일기반 조정에 주력해야
이를 위해서 장단기적으로 논의 및 실행하여야 할 많은 사안이 있다. 일부에서는 경제협력과 이산가족문제에 국한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긴 하지만 이는 통일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조그만 부분집합에 불과한 것이다. 무엇보다 한반도에 전쟁발발을 막기 위한 냉전청산과 평화체제 구축, 주한미군철수, 동북아협력안보체제, 상호군축, 북한경제의 재활성화 등 통일터전 닦기에 핵심적인 사항을 중심으로 의제가 설정 및 논의되어야 한다. 물론 당면 현안문제인 교류나 협력, 이산가족 등 여타 사안도 논의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어디까지나 위의 핵심사항에 비해 하위개념의 차원에서 논의되고 다뤄져야 할 성격인 것이다. 이들 하위차원의 문제가 민족사적 거대구도인 통일터전 닦기에 안 받침하고 뒷 받치는 형식으로 접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민족사적 거시구도와 분리된 채 홀로서기를 고집한다면 조그만 일 때문에 큰일을 그르치는 민족사적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정상회담을 단기적 표면사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 구조사로 인식하고 이에 걸 맞는 위상 설정, 의제 선정, 합의 도출 등을 통해 김대중은 남한의 대통령이 아니라 민족의 대통령으로, 김정일은 노동당총비서가 아니라 민족의 총비서로 승화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요구한다. 동시에 남북의 주민은 제각기의 단기적 이해관계에 맞추어 정상회담을 바라보고, 비판하고, 딴지 걸고, 방관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지원하여야 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