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 관계개선 지원 나서야한다

「LA타임즈」4/11 브루스 커밍스

지난 일요일 약속한 대로 6월 중순 남북한 지도자들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면, 이는 획기적 사건이 될 것이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한 직후 한반도가 분단된 이래 양국 지도자들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55년간 서로 상대방을 비난만 해왔을 뿐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또한 한국전쟁 발발 50주년 기념일의 서막을 알리게 될 것이다. 정상회담은 권좌에 오른 이래 (적국 진영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국인이라곤 거의 만난 적이 없는 은둔자인 김정일의 데뷔 축하 파티가 될 것이다.

북한은 (현직 대통령을 비롯해) 남한의 지도자들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적이 없다. 남한은 한반도에 또다른 국가가 존재함을 계속 부인해왔다.

기념일이라 함은 보통 모종의 종지부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전쟁이 종식된 것은 절대 아니다. 한편, 우리나라 언론들은 김일성의 수수께끼 같은 아들을 테러리스트나 미치광이, 호색한, 또는 인민이 굶어죽는 걸 보며 바이올린이나 연주하는 네로 황제 등으로 틀에 박힌 묘사를 일삼아왔다.

그 전에도 양측이 한반도의 화해라는 희망을 제기한 적이 있지만 허무하게 내동댕이쳐지곤 했다. 1972년 7월 김일성과 남한의 정보부장이 비밀리에 회동하여 양국간에 통일 원칙을 발표하였다. 1991년말에는 또다른 공동원칙이 선포되었다. 1994년 6월 김일성이 역사상 최초의 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그는 2주 후에 사망하였다. 앞서의 “획기적인” 원칙은 정상회담 제안만큼이나 덧없이 흘러가버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충분히 다를 수 있다. 수년간의 외교와 남한 및 미국 정책의 극적인 변화, 완고하고 심술궂은 이미지를 벗어버린 북한의 타협 등을 통해 기반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3년간의 위기는 1994년 6월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지만 정력적인 외교를 통해 북측의 핵 원자로 프로그램을 동결시켜 지금까지 작동을 제어하고 있다. 1997년 북한은 법적으로 엄밀히 따져보면 전쟁 상태의 지속인 현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4자 회담”에 동의하였고 정전협정을 조인하지 않은 남한과의 대화 거부를 조용히 철회하였다. 은닉된 핵시설이라는 대규모 지하 시설을 둘러싼 1998∼99년의 소동은 북한측이 자신의 안보시설에 대한 미국의 전례없는 사찰 요구에 응함으로써 마침표를 찍었으며, 지난 해 9월 북한에 대한 50년간의 경제재제를 철회하는 대가로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겠다는 워싱턴과의 합의가 그 뒤를 이었다. 최근 평양 당국은 외교 공세를 펼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관계를 트고 독일, 프랑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미국(다음 달 역사상 최초로 최고위 북한 대표단이 방문할 예정이다) 등과도 관계 개시를 논의하고 있다.

공화당은 이러한 관계 개선을 유화책이라고 비난하고 있으며 민주당은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클린턴 최고의 대외 정책상 업적임에도 말이다.

한편 김대중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커다란 위협에 직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해 역대 남한이나 미국의 어느 대통령보다도 많은 정책상의 변화를 일구어냈다. 1998년 2월 취임식에서 그는 북한과 “화해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을 약속했으며 워싱턴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평양 당국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선언하였다. 이는 어떠한 친선 기미도 증오했던 그의 전임자들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태도였다. 그는 1998년 6월 워싱턴 방문 당시 최초로 경제재제 중단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였다. 그는 또한 식량과 기타 원조물품을 아무런 양보조치도 요구하지 않고 전달했으며 많은 남한 기업들에게 북한에 투자할 것을 장려하였다. 그의 참을성있고 지속적인 “햇볕 정책”은 남북 문제에 관한 오랜 연구와 두 개의 한국이라는 시기 전체에 걸쳐 지도자로서 겪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남한 국회의원 선거를 사흘 앞두고 이루어진 정상회담 발표의 시기에 관해 앞다퉈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경우 북한측이 김대중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게다가 어느 누구도 김대중이 정치꾼(politician)이 아니라고 말한 적이 없다. 수십년간 독재자들의 수중에서 고난을 겪으면서 대화와 화해, 평화,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관대함이 필요하다는 덕목을 배운 그에게는 정치인(statesman)이라는 말이 보다 어울릴 테지만. 이러한 덕목들은 한반도의 역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전쟁을 벌이는 것은 너무나도 쉽지만(실제로 전쟁은 1950년 6월의 하룻밤 사이에 시작되었다) 거기서 빠져나오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한반도의 역사를 말이다. 해리 트루먼의 시대에, 어느 누가 20세기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 중 하나가 바로 코앞에 닥쳐있다는 사실을,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이 전쟁에서 헤어나오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김대중은 한국전쟁의 종전(이는 궁극적인 화해와 통일에 없어서는 안될 전주곡이다)을 가져온 인물로 퇴임하기를 원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경탄할만한 그의 야심을 시기하는 게 아니라 조용히 입을 다문 채 그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브루스 커밍스는 시카고대학 교수이며 최근 저서로는『관점들의 시차: 세기말 미국-동아시아 관계에 관한 이성적 이해(Parallax Visions: Making Sense of American-East Asian Relations at the End of the Century, Duke University Press, 1999)』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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