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책방
요즘 무슨 꿈을 꾸시나요?
이주영 / 평화인권연대 회원
1. 글을 시작하며 <평화연대> 소식지 이 번호 평화책방에서는 그 동안 필자가 게재했던 서평이나 책 소개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의 글을 게재합니다. 그것은 제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짧은 산문과 평화연대 회원들에게 드리는 작은 선물들로 채워질 것입니다.
2. 봄입니다. 저는 봄을 좋아합니다. 요즘은 나의 계절 취향에 대해서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벚꽃과 목련은 이미 피었다가 지고 있고, 아직 개나리는 만발한 봄입니다. 여러분에게 올 봄은 어떻게 다가왔습니까? 아직 봄을 느낄 겨를이 없으신 분들을 위하여, 혹은 봄을 만끽하고 계신 분들을 위하여 봄소식을 전합니다. 봄이 횡단보도 건너서 길가 한 모퉁이에 봄이 먼저 왔다 하얀 무명 수건 쓰신 할머니 펼쳐 논 봄나물 냄새 물씬 풍겨 이렇듯 속수무책인 세상 바쁘게 횡단보도 넘나드는 사람들 시선은 늑장을 부려 잠시 쉬어 가고 싶다 콩가루 더벅더벅 묻혀 냉잇국 끓여 나눠먹고파 유치원 아이들 선생님 뒤를 좇아 손들고 종종걸음 푸른 신호등 일시 정지하면 개나리꽃 눈부셔라 오래 전에 쓴 제 시입니다. 귀향한 후 사람들과 만날 기회 가 드물었던 저는 요즘도 이런 생각을 합니다. “따뜻한 밥에 냉잇국을 끓여서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나눠먹고 싶다.”
3. 근황 총선이 끝났습니다. 4.19혁명은 이제 4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곧 남북정상회담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요즘 저는 이런 사회적인 상황들에 둔감합니다. 얼마 전에 제 남동생은 입대를 했습니다. 건장한 대한민국의 남성으로 태어난 이상 필히 거쳐야 할 과정인 입대가 무슨 대수로운 일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평범한 50대 주부이신 우리 어머니가 아들을 군대에 보내면서 하신 말씀인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면 군 복무 기간이 단축될 수 있으려나…” 라는 희망은 절대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괜히 우울해집니다. 2000년을 맞이하면서 이 땅의 사람들이 가져보는 희망 중에는 통일 실현의 가능성에 대한 꿈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남북정상회담은 통일로 가는 그 초석이 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만 왠지 저에겐 정치적인 쇼로만 비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4. “레삼 삐리리 레삼 삐리리” 평화연대 상임활동가인 한 친구로부터 처음 평화책방에 대한 연재를 청탁 받았을 때, 그 친구는 평화책방이 글쓰기 운동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질 것을 주문하였습니다. 과연 제가 그 친구의 청탁에 제 값을 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볼 때가 있습니다. 글쓰기 운동이라는 주제에 대한 제 생각은, 아니 그보다 좀더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에 대한 제 생각은 사람들에게 꿈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여러분은 무슨 꿈을 꾸십니까? 꿈이 ‘dream’의 형태이든지 ‘hope’의 형태이든지간에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제가 읽었던 동화 한 편을 소개할까 합니다. 「사평역에서」, 「눈 오는 밤」이라는 명시를 썼던 곽재구 시인이 최근에 쓴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엽서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문학동네』 2000년 봄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여기에 발췌한 글은 「엽서 여행」중의 단편인 <아무르의 비단 깃발>입니다. 아무르는 포터입니다. 트래킹을 하러 온 외국 등산객들의 짐을 대신 옮겨 주는 것이 그의 일이지요. 자기 몸집보다 두 배쯤 크고 무 거운 짐을 이마에 메고 그는 산을 오릅니다. 자신의 나이를 스물 셋부터 스물 다섯 살 사이라고 말하는 그는 이 마가 많이 벗겨졌습니다. 해발 사천 미터나 오천 미터가 되는 곳까지 짐을 운반하고 아무르 가 받는 하루 일당은 이백 루피쯤 입니다. 우리 돈으로 삼천원이 조금 넘는 돈이지요. 일이 끝나고 나면 그는 멋진 목소리로 ‘레삼 삐리 리’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일당이 적지 않냐고 물어보았지요. 그의 대답은, 귀한 것은 돈이 아니라 우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따뜻한 믿음 같은 것을 돈을 주고 살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등산객들의 짐을 옮겨주고 돈을 받는 것은 양심에 꺼리는 일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 그가 돈을 받는 이유는 읍내에 그가 운영하는 고아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백 루피면 열 명의 아이들이 일 주일 살 수 있 어요.” 그의 꿈은 자신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아이들을 위 해 한 달에 보름쯤은 짐을 나를 수 있었으면 하는 것 이었습니다. 레삼 삐리리 레삼 삐리리 그에게 노래의 의미를 묻자 그는 싱긋 웃으며 얘기 했습니다. 너와 나 사이, 우리들의 삶 속에 화사한 비단 깃발 이 펄럭이네. 우리들 삶 속에도 아무르의 비단 깃발처럼 화사한 깃발이 펄럭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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