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일/경남대 교수·사회학

오늘은 110주년 메이데이, 국제노동절이다.

메이데이는 1886년 5월1일 미국 시카고의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주장하며 벌인 평화 시위가 경찰의 개입으로 유혈 사태로 번져 시위 주동자들이 체포되어 사형당한 사건(헤이마킷 사건)이 기원이 됐다.

프랑스혁명 100주년이었던 1889년 파리에서 창립된 제2 인터내셔날은 창립 대회에서 이날을 전세계 노동자들이 함께 공유하는 노동절로 정할 것을결의 했고, 다음해 제1회 메이데이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정작 미국의 노동절은 5월1일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1894년 풀만 노동자들의 파업을 무력으로 진압한 직후, 9월 첫 월요일을 노동절로 하여 국가공휴일로 정해버렸고, 미국의 노동조합들도 어영부영 이를 받아 들여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한국의 메이데이 역사도 기구한 것이었다.

한국 노동자들은 이미 식민지 시절인 1923년 조선노동총연맹의 주도로 첫 메이데이 기념식을 가진 이후 일제의 탄압에도 이날을 계속 노동절로기념해 왔으나,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은 어용 대한노총의 창립일인 3월10일을 `근로자의 날’로 정해버렸다.

1987년 이후 민주노조 운동이 발전하면서 다시 메이데이를 독자적으로 기념하기 시작했으나, 정부는 완강하게 이를 인정하지 않다가 1994년에 이르러 서야 3월10일을 포기하고 5월1일을 근로자의 날로 인정했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헤이마킷 사건 이후 108년, 국제 노동절 제정 이후 104년, 1946년 전국노동조합평의회가 주최한 마지막 노동절이 있은 이후 48년만에 비로소 자기 생일을 되찾은 셈이다.

2년 전인 1998년 오늘, 필자는 멀리 멕시코시티의 쏘칼로 광장에서 열린 멕시코 노동자들의 메이데이 행진을 참관할 기회를 가졌다.

멕시코의 어용노조인 세테엠(CTM)은 이날 100만명의 노동자들을 `동원’해 대규모의 호화 행진을 벌였고, 이에 맞서 민주노조 조직인 우엔테(UNT)는 30만명의 노동자·농민·도시빈민이 참여하는 가운데 독자적인 민중대회 행진을 벌였다.

같은날 한국 서울에서는 민주노총이 주관한 메이데이 행사가 마찬가지로 민중대회 형식으로 열리고 있었다.

지구 양쪽에서 노동자들은 모두 같은 요구들을 제기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 반대, 민영화와 구조조정 반대, 아이엠에프 반대의 수많은 현수막이 거리를 메우는 모습은 아이엠에프 후유증에 시달리는 멕시코 노동자 나 아이엠에프 경제위기의 한 가운데 놓인 한국의 노동자나 마찬가지였다.

민영화 이후 대폭 인상된 철도요금 때문에 나흘을 걸어 도착했다는 멕시코 남부인디오 농부들의 찌들고 지친 모습과, 아이엠에프로 거리에 내몰린 한국의 실직자, 노숙자들의 모습도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이날 저녁, 멕시코 국영 텔레비전은 한국의 노동절 행사에서는 시위대와 경찰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고, 흥분한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생생한 화면을 전하고 있었다.

지구화한 자본주의의 시대에 메이데이의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상품과 자본은 이미 국경없이 전지구를 누비고 있지만, 노동의 국제연대는 아직도 완강한 국경의 장벽에 막혀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 구조조정과 민영화, 해외매각의 삭풍에 맞서 몸부림치는,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 대신에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고 늘리기를 요구하는 한국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이미 전세계 노동자들의 공통적인 목소리이다.

노동의 국제연대는 세계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나라, 지방, 일터에서 완강하게 스스로를 지키고 방어하는 힘찬 운동 속에서 이뤄진다.

한국 노동자들이 쟁취한 성과가 전세계 노동자들의 성과의 일부이고, 그 실패는 곧 전세계 노동자들의 실패의 일부이다.

멕시코의 노동자들이 바라는 것은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자신들의 패배의 경험이 한국에서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이기기를 그들이 바라고, 그들도 이기기를 우리가 바라는 것, 이것이 노동의 국제연대의 참모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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