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 영국군 개입 움직임
[세계사회주의웹사이트] 5/1 크리스 탤보트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의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동맹(이하 ZANU-PF) 지지자들에 의한 백인소유 토지의 점거를 종식시키기 위한 일련의 회담이 시작되면서 영국과 짐바브웨 사이의 긴장이 계속 심화되고 있다.
회담이 시작된 4월 27일자「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영국이 영국여권을 소지한 백인과 다른 유럽인들을 철수시키기 위한 군사작전을 세우고 신속한 대응을 위해 인접한 모잠비크에 군을 주둔시켰다고 보도하였다. 로빈 쿡 외무장관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이를 부인했지만 국방장관 조프 훈은 이 보도를 확인하면서 군사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될 경우 영국 여권 소지자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는 비상계획이 분명히 준비되어 있다.”
짐바브웨와 영국 정부 각료들 사이의 회담은 양편이 끊임없이 다투면서 끝났다. 전에 쿡 장관은 자국의 식민지였던 짐바브웨의 토지개혁 재정조달을 위해 3천 6백만 파운드의 원조자금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원조의 조건은 “법치”의 회복을 통해 농장점거를 중단할 것과 해외 참관인의 참여 아래 예정된 총선을 개최하는 것이었다.
1998년에 영국과 다른 서방 정부들이 (이러한 부가 조건 없이) 이와 유사한 원조를 제공한 바 있다. 쿡 장관은 당시 짐바브웨가 엄격한 “투명성” 기준을 준수하고 시장가격에 토지를 구입하는 데 동의했다고 불평하였다. 짐바브웨 대표단은 당시 약속된 재정원조가 제때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거래를 거부한다고 주장하였다.
지난 며칠간 천여 개의 백인소유 농장을 점거하고 있던 무가베의 ZANU-PF 정권 지지자들은 농장주와 그들의 가족을 공격하는 데서 농장의 흑인노동자들을 습격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현재 35만 명 이상의 농장 노동자들이 있으며, 이들에 대한 위협은 다가오는 총선에서 이들과 그 가족들이 야당인 민주변혁운동(MDC)에 표를 던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구타당하고 그들의 집이 불태워졌다. 정치 집회와 행진을 금지시키기 위해 법질서유지법 아래 경찰에 의해 특별권한이 발동되었다. 정치 집회와 행진 금지는 MDC의 선거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ZANU-PF 정부가 지지한 것이었다.
이번 토지점거는 신헌법(이는 대통령직 임기를 추가로 2회 연장하는 내용이었다)에 관한 최근 국민투표가 부결된 것에 대한 무가베의 대응이었다. 토지점거는 영국을 선두로 한 서방 정부와 IMF가 무가베의 권력 장악을 붕괴시키기 위해 추구해온 분쟁에서 일종의 내기였다. 백인 토지소유주 계층과 결연관계로 IMF 경제정책을 지지하는 야당인 MDC는 영국과 미국 등의 서방 정부의 지지를 받고 있다.
짐바브웨가 영국 식민지 로데시아에서 독립국으로 등장한 이래 지난 20년간 무가베와 ZANU-PF는 토지 문제를 선거에서의 말장난으로 이용해왔을 뿐 농장 소유 문제에 관해 아무런 중대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짐바브웨 토지의 절반 이상, 그리고 가장 좋은 농장 토지 전체가 대부분이 백인인 인구의 3%가 소유하고 있다. 이러한 극심한 불평등은 식민시기의 유산이다. 당시 세실 로즈 휘하의 백인 정착민들은 국토를 장악하고 가장 좋은 토지를 차지해버렸다.
점거된 토지 가운데 일부가 땅없는 빈민들에게 넘겨지긴 했지만 이번 작전의 주요 목적은 야당을 위협하고 백인 농장주들이 조장하고 있는 농촌 지역의 MDC 지지를 저지하려는 것이다. ZANU-PF는 한때 농촌 빈민 사이에 최대의 지지기반을 갖고 있었으며, (백인 토지소유주들이 보유한 최고의 농지를 몰수하도록 하는 조항을 개정헌법 초안에 삽입했음에도) 이들 지역에서 개헌 국민투표에 패배한 것은 무가베에게 있어 특별한 패배였다.
랭카스터 의회 협정
무가베는 1980년 영국 정부와 맺은 랭카스터 의회 협정의 결과 권좌에 올랐다. 영국이 지원하는 이안 스미스의 백인 인종주의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무가베의 ZANU와 조슈아 응코모의 ZAPU가 벌인 15년간의 내전 이후 짐바브웨는 독립을 인정받았다. 독립 결정은 무가베가 광산과 산업에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보존하는 데 동의하고 담배 및 기타 주요 농산 수출품에 대한 백인 농장주들의 경제적 독점을 보장하는 것에 근거한 것이었다.
당시 마가렛 새처의 보수당 정부 아래 외무장관을 역임한 캐링턴 경의 최근 인터뷰는 1980년 협정이 영국에 갖는 중요성을 설명해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짐바브웨의 농장에는 단 한 명의 백인 농장주도 있어선 안됐습니다. 아니 짐바브웨에 백인이 한 명도 없어야 했습니다. 1979년에 사람들이 흑백을 막론하고 계속 살해당했습니다. 그 곳은 붕괴 상태였어요.”
1980년에 무가베를 권좌에 앉히는 것 말고 어떤 대안이 있었는가를 묻는 질문에 그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아니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아주 운좋게도 양측간에 협정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그게 유일한 해결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처음에는 좋게 출발했어요. 10년 동안 무가베는 협정의 조항들을 준수했습니다.”
무가베는 과거에 맑스주의자라고 자칭했음에도 지난 20년간 사기업을 옹호해왔다. 거대한 백인소유 농장들은 번창을 용인받으면서 짐바브웨 수출 소득의 상당부분을 담당해왔다. 1980년대에 시행된 토지 개혁은 “유상몰수 유상분배” 협정에 의거하여 진행되었다. 당시 짐바브웨를 떠나기를 원한 농부들은 영국이 제공하는 보상금을 받았다. 이러한 계획 하에 6만 5천개의 농장이 참전군인들에 제공되었는데 이는 약속된 수에 턱없이 못미치는 것이었다.
영국과 서방 정부들이 무가베에 불만을 갖게 된 것은 지난 몇 년에 불과하다. 이들은 짐바브웨가 IMF 감독 아래 자유시장 경제정책을 무차별적으로 채택하는 데 있어 그가 장애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ZANU-PF 정권이 1990년대 전체에 걸친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 아래 서방의 지원을 등에 업고 통치하는 동안, 1997년부터 계속된 수출 소득의 하락은 현정부를 더욱 심화된 외채로 떼밀었다. IMF는 정부지출의 급격한 삭감 요구를 신규 차관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IMF는 또한 무가베가 콩고 전쟁에 대한 개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짐바브웨는 로랑 카빌라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하루에 백만 파운드를 쏟아부으며 만 명의 군대를 파견하고 있다.
무가베는 이러한 조건을 따를 경우 공공부문 종사자들과 군대(짐바브웨의 장성들은 콩고민주공화국의 광물 자원을 놓고 수익성 좋은 이권 거래를 하고 있었다) 모두에서 ZANU-PF의 지지기반이 하락할 것을 우려하였다.
그후 짐바브웨는 수많은 대외 채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에 대응하여 남아공과 영국, 유럽의 은행들은 신용라인들을 철회하였다. 지난 1월 영국의 수출신용보증부(ECGD)는, 영국 기업들이 짐바브웨 국영기업, 특히 짐바브웨국영석유(NOCZ)와의 거래에서 입은 손실로 짐바브웨 정부가 자신에 대해 170만 파운드의 채무를 갖게 되었다고 공개하였다. 짐바브웨의 대외 채무는 40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으며 현재도 급상승하고 있다. 짐바브웨의 인플레이션은 현재 60%이며 실업은 50%인 상태이다.
지난 몇 달간 영국은 무가베를 뒤흔들기 위한 노력의 최전선에 서있었다. 정부 각료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가베 정권이 부패했다고 비난했으며 모든 재정원조가 삭감되었고 야당인 MDC의 성장을 고무하였다. 모건 츠방기라이와 노동조합들이 이끄는 MDC의 주요 재정 후원자는 백인 농장주와 흑백을 망라한 기업인들이다. 츠방기라이는 최근 인터뷰에서 MDC의 우선과제가 외채 협상이라고 주장하면서 “우리는 짐바브웨의 경제를 민영화하고 신용도를 복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MDC는 노동자와 농촌빈민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기 위해 제시한, 일자리와 복지지출을 위한 친(親)시장 프로그램이 가지는 함의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MDC는 무가베 정권에 대한 적대의 증가로부터 이득을 얻었으며 경제가 사실상 붕괴된 상황의 반작용으로 지지를 얻고 있다.
무가베는 영국으로부터의 이러한 압력에 대해 ZANU-PF의 전통적 기반인 농촌지역에 호소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토지점거는 계산된 도박이며, 무가베는 이를 통해 농촌빈민들의 사회적 분노를 이용하고자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토지점거 운동을 관리하고 있다고 믿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운동은 내전 참전군인협회와 ZANU-PF 당원들에 의존하고 있으며 정부가 재정을 마련해주고 있다. 무가베가 노리는 최종 목적은 농촌 대중과 도시 노동계급의 진정한 대규모 운동이다. 두 달 전까지 토지점거자들은 경찰과 확고한 관계를 갖고 있었으며, 최근 분배된 토지는 정부 각료와 고위 공직자들에게만 주어졌다.
공포에 떠는 제국주의
그러나 제국주의 강대국들, 특히 영국에 있어서 토지점거는 그들이 항상 가장 두려워했던 유령(사적 소유에 도전하는 아프리카의 대중적 사회운동의 등장)이 되고 있다. 두 명의 백인 농장주의 사망은 영국 언론의 분노의 아우성을 불러왔다. 언론에게 있어 블레어 정부는 비난과 대화 재개 호소 사이에서 오락가락해왔다.
짐바브웨만이 아니라 훨씬 많은 문제가 걸려 있다. 서방의 이해를 보전하기 위해 이루어진 남부아프리카 전역의 정치적 협정이 현재 위협에 처해 있다. 남아공의 경우 인구의 13%가 토지의 80%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이미 북부도시인 바커스트룸에서 온 시위대가 정부청사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면서 토지침입을 위협한 바 있고 다른 지역들에서도 분노가 커지고 있다는 보도들이 들려오고 있다.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권좌에 오른 이래 토지 권리 주장의 6%만이 해결되었고 재분배된 토지는 1%에도 못 미쳤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남아공 국민의 54%가 짐바브웨의 토지점거를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짐바브웨 현지 지지율의 거의 두 배에 이른다.
남아공의 통화인 랜드화는 짐바브웨의 분쟁이 주원인이 되어 10% 하락하였다. 영국의「파이낸셜 타임즈」는 “짐바브웨 전염병”의 위험을 언급하면서 한 남아공 경제학자의 말을 인용했다. “이의 결과는 해외직접투자를 고려했던 이들 앞에 커다란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영국의 딜레마는 자신이 개입하거나 MDC를 원조하고자 하면 할수록 상황이 악화되기만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결과에 대한 경고는 넬슨 만델라가 최근 영국을 방문하는 동안「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만델라는 영국과 미국이 코소보와 이라크를 폭격한 사실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토니 블레어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젊은이입니다.” 만델라는 말을 이었다. “그러나 나는 미국과 영국이 현재 벌이는 식의 일들에 관해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현재 세계경찰이 되고자 하고 있지만 나는 영국이 이러한 점에서 미국과 함께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는 특히 아프리카에 대한 개입에 분노했다. “그건 완전히 그릇된 태도입니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무가베를 비난해야 한다는 영국의 호소는 남아공, 짐바브웨, 나미비아, 모잠비크로 구성된 남부아프리카발전공동체(SADC)의 빅토리아폭포 회담에서 쌀쌀맞게 퇴짜를 맞았다. 이 자리에 모인 국가수반들은 무가베에 대한 지지를 공표하면서 그가 “법치의 옹호자”이자 “폭력 종식에 헌신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요아킴 알베르토 치사노 모잠비크 대통령은 국제 원조자들이 짐바브웨의 토지개혁에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영국을 비롯한 원조자들이 이를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아공 대통령 타보 음베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무가베는 남부아프리카발전공동체 지도자들이 자신을 대신해서 IMF와 여타 국제 대부자들에게 로비를 하는 대가로 수사적 정치놀음의 수위를 낮추고 선거를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러한 반응은 영국과 서방에서 향후 대응을 둘러싸고 여론을 훨씬 더 양극화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유럽연합은 무가베의 행동에 대한 공식 비난을 자제하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인 코피 아난은 무가베와 통화한 후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느끼기에는 무가베가 상황을 처리하고 있고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가 그렇게 하도록 격려했습니다.”
(뉴질랜드인으로 영국의 지원 아래 최근 임명된) 영연방 사무총장 돈 맥키넌은 백인 농장주들을 “짐바브웨의 적”이라고 무가베가 비난한 사실에 관한 언급을 거절하였다. “어떤 나라든 선거운동은 긴장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가디언」의 칼럼니스트인 이사벨 힐튼은 짐바브웨에서 자제를 촉구하는 이들에 대한 정치적 고려를 표명하였다. “무가베식 민족주의는 20년전의, 아니 30년전의 반식민주의 수사(修辭)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러한 수사는 아직도 아프리카 일부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 과거 식민 강대국과의 신랄한 대화와 백인 농장주들로 남아있는 두드러진 유산 또는 과거의 불법행위를 결합시키기 때문이다.”
“최근 국민투표에서 자신들의 견해를 표명할 기회를 얻은 짐바브웨 국민들은 무가베의 수사에 놀아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었다…현재 중요한 것은 짐바브웨 국민들이 이러한 자각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무가베의 폭발성 주장에 기름을 붓거나 그에게 총선 취소를 위한 최후의 변명을 더해주지 않고 영국이 행하거나 말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없다.”
미국은 강경노선을 취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백인 농장주를 짐바브웨 국민의 “적”으로 규정하는 무가베를 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성명은 짐바브웨의 폭력과 법치 훼손만을 증대시킬 뿐”이라고 제임스 루빈 대변인은 말했다.
「파이낸셜 타임즈」또한 보다 대결적 태도를 취하면서 사설에서 아프리카 지도자들에 대한 불만을 표명하였다. “위험에 빠진 남부아프리카”라는 사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짐바브웨의 위기는 제한될 수 없다…음베키 대통령과 다른 남부아프리카 지도자들은 무가베의 편인 것처럼 하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무가베의 전술과 법치의 남용을 용서해주는 듯이 행동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 만약 민주적 가치를 솔직히 방어하지 않을 경우 그들은 재앙의 칼날 위에서 무가베와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츠방기라이가 적어도 다섯 명의 MDC 당원의 죽음을 가져온 ZANU-PF의 폭력에 대해 이제 더 이상 다른 쪽 뺨을 내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지난 며칠간 긴장이 한층 고조되었다. “우리는 폭력에 가담한 모든 이들, 부통령, 정부 각료, 국회의원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고 그는 경고했다.
토지 문제
무가베나 MDC나 농촌 빈민이나 도시의 노동자와 실업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 경제적 문제에 대해 어떠한 진정한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다. 무가베가 또 한번 영국과 협정을 맺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가 대규모 농장의 일부를 분할하려 할지라도 이것이 빈곤과 후진성, 저발전이라는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반을 낳지는 못할 것이다.
무가베와 MDC 양자의 정책은 소상업 농민이라는 보수적 사회계층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며, “토지 개혁” 정책은 세계은행과 서구의 정책 두뇌집단이 오랫동안 지지하고 발전시켜온 것이다. 물리력으로건 떠나기를 원하는 백인 농장주들에 대한 보상을 통해서건 소규모 농장 사업의 창출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퇴행적인 정책이다. 이러한 소농장은 경제적 자생력이 없다. 이는 무가베 정부가 1980년과 90년 사이에 설립한 6만 5천개의 농장이 그 이후 몰락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빈곤과 실업의 문제는 남부 아프리카 전역에 걸친 노동계급과 빈민대중에 기반한 사회주의 운동의 발전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짐바브웨의 천 2백만 인구 가운데 7백만 가량이 농촌에 거주하고 있지만 점점 더 많은 수가 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현재 1960년대에 비해 도시 거주자의 비율이 2배 가량 높아졌다. 백인 농장의 임금 노동자인 35만 명의 농촌 인구는 가족을 포함할 경우 백만을 훨씬 넘어선다. 게다가 백만 가량의 흑인 소유 농장 대다수는 최악의 토지에 위치해있으며 소도시나 백인 소유 토지에서 일하는 가족 성원들에 의존하고 있다.
남부 아프리카의 노동계급과 빈민대중들이 직면한 문제 가운데 어떤 것도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제가 계속되는 한 해결될 수 없다. 현재 무가베가 영국과 충돌하는 상황은 현정부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가 이끄는 정부는 지난 20년간 서구 자본에 종속되어 있음을 몸소 보여주었다.
교육을 비롯한 제한된 복지 쟁책을 발전시키고 있기는 하지만 핵심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무가베의 관점은 이제 실패했다. 현재 영국은 랭카스터 의회 협정으로 수립된 체제를 MDC를 통해 보다 온순한 행정부로 바꾸려 하고 있다. 짐바브웨와 남부 아프리카 노동대중이 직면하고 있는 핵심 문제는 제국주의와 현지 대리인 모두에 맞서 독립적인 사회주의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