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대회에 참가하면서

새내기노조 큰 힘을 얻었다

우리 서울지역인쇄노조 임창문화사 분회는 지금 전면파업을 벌이고 있다. 4월29일 공장에서 간단한 기념집회를 마친 우리는 원효로1가에서 서울역까지 행진해 갔다. 12시 30분경 우리가 도착했을 때만 해도 모인 사람이 많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계속 밀려드는 인파에 20명이 채 안 되는 조합원들만으로 집회를 해온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난생처음 이렇게 많은 인파를 접해본 조합원들은 그 동안 쌓여온 울분을 토해내듯이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쳤다.

우리 임창분회는 3월18일 노조를 결성하고 한 달이 조금 넘은 4월25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IMF가 터진 뒤 회사는 구조조정을 한다며 임금을 30% 이상 깎고, 상여금 전액을 반납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려온 우리에게 노조결성은 마지막 탈출구와 같은 것이었다.

우리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근로기준법’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자본가에게 얼마나 많은 권리를 빼앗기고 살았는가를 알았을 때 사장의 얼굴이 마치 양의 탈을 쓴 늑대로 보였다.

이런 서러움과 분노는 4월25일 전면파업으로 폭발했으며, 우리는 지금까지 파업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회사는 우리의 파업을 그냥 지켜보지 않고, 용역깡패까지 동원해 파업을 깨려고 했지만 조합원의 단결된 힘으로 이를 물리치고 사무실을 점거하는 등 힘찬 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우리 투쟁이 두 달 남짓 계속되자 몇몇 조합원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하는 등 벗어나려는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오트론 동지들의 원직복직 투쟁을 보면서 민주노조 사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4월29일 서울역광장에 모인 수많은 민주노총 조합원과 빈민, 청년학생들을 보면서 한때 나약했던 내 생각이 정말 부끄러워졌다.

서울역에서 종로까지 행진대열은 그 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인파로 물결쳤지만, 투쟁의 대열이 종묘에서 마무리되는 게 못내 아쉬웠다. 우리는 이렇게 많이 모인 인파가 제대로 된 성과 없이 헤어지는 게 아쉬웠지만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행진대열이 경찰에 폭력적으로 진압될 때에는 우리가 회사 용역깡패와 싸우는 심정과 같아 분노가 투쟁의 의지로 되새겨졌다. 자본가 집단은 우리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악랄한지는 예전에 미쳐 몰랐었다.

김혁수(서울지역인쇄노조 임창문화사 분회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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