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남북정상회담 관련 논의에 부쳐

‘계급적 이해가 관철되는’ 민족통일을

지금 우리는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그럴 것이 분단 이래로 55년만에 처음으로 합의되었고, 지난번 6년 전에 불발된 것과 달리 다른 나라나 개인의 중재나 권유에 의한 것이 아니고 남.북 당국의 직접 교섭으로 이루어졌다는 점 등 때문이다. 그러나 그 차별성이 곧 이번 정상회담의 성공에 바로 연결되리라는 희망의 근거는 될 수 없다.

‘험산준령’ 가로놓여 있어

마치 이산가족의 만남이 실제로 이루어지게 된 것처럼, 이미 정상회담이 성공한 것처럼 밝은 전망들이 한국 언론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은 그것이 국민 일반의 생각을 반영하느냐의 문제를 떠나서 좀 일방적인 낙관 내지 희망 사항이 아닐까? 그야말로 험산준령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고 본다.

이번 정상회담과 관련하여 논란이 분분하다. 대표적인 것은 강정구 교수의 “‘눈앞 이익’ 집착말고 통일터전 닦기 힘써야” 한다는 ‘민족해방 우선적 입장’과 이에 대한 반론으로 “노동자.민중적 통일만이 선이다”라는 채만수 부소장의 ‘계급 해방 우선적 입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은 이 양자 중 어느 한쪽의 입장보다도 ‘계급적 이해가 관철된 민족통일’이 가능한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제기하여야 한다고 본다.

이번 정상회담은 남.북의 통치자나 기득권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민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관철되는 회담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는 양측이 비상한 노력을 해야겠지만, 우선 남한 당국이 정상회담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도 어떤 사전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본다.

비전향 장기수들을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려보내는 것, 북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고 남.북 정상회담 자체를 가로막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 것, 남북기본합의서의 국회 비준 절차를 시작하는 것, 범민련 남측본부와 한총련 학생들에 대한 이적단체 규정의 철회,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비료를 즉시 북에 보낼 것 등이 그 예일 것이다. 이것들은 대체로 국내적인 문제이고 김대중 정권이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는 문제로 생각된다.

국제적인 문제 내지 미국이나 일본과 타결할 문제도 있다. 불평등하기 짝이 없는 한.미행정협정의 전면적인 개정, 근본적으로는 미군의 철수에 대한 표명, 소위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를 위해 체결되어 있는 한.일.미 간의 삼각군사동맹 등의 해체, 한.미.일의 여러 형태의 합동군사연습의 즉시 중단 등의 노력이다.

이번 정상회담이 실효성이 있고 가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기 위하여는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런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

세계 자본주의 세력, 남.북의 권력층, 또는 기득권층의 이익이 아니라 이 땅의 노동자들과 민의 입장이 반영되고 관철되는 통일협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남한의 ‘군사주권’을 미국으로부터 도로 회수하는 방안, 근 반세기동안 이 땅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철수 문제, 미군의 철수 후 또는 전제로 남.북 간의 군축 문제, 등에 대한 협의가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이다. 경제교류는 남.북에 모두 유리한 방향으로 타결되어야 하고,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상대방의 주저를 충분히 이해하고 일방적으로 밀어 부치는 전략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민의 이해를 반영하는 이러한 조치들의 관철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여소야대의 국회나 정권 내부 또는 주변에 진치고 있는 보수-극우세력들의 반대나 저항, 미국이란 큰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러나 이것들은 최소한도의 민족자주적인 문제들과 관련된 문제들로서 관철하려는 노력을 원칙적인 입장임을 천명하고 노력하여야 할 것들이다.

만일 남.북 정상들이 정상회담 합의서에서도 명시했듯이 7.4 공동성명의 정신이나 남.북 기본합의서의 정신으로 민족문제를 민족자주와 민족대단결의 정신과 원칙으로 타결해 나갈 결의가 있다면 그 회담은 동북아와 전체 아시아, 나아가서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할 것은 물론 국내 민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길만이 이번 정상회담이 누구를 위한 것이고 이들이 논의할 민족통일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문제 등을 불식할 수 있을 것이다.

홍근수 목사/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자통협) 상임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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