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현장(5)/ 경주 금속노동자들의 새로운 선택

공장벽 허물어 산별노조를 꿈꾼다

10여년 걸친 공동투쟁 밑거름 삼아 7개 노조 하나로

집단교섭·공동투쟁 추진…5월말-6월초투쟁이 열쇠

어스름이 퍼지기 시작한 4월28일 저녁 동국대 경주캠퍼스 녹야원. 경주금속노조(위원장 최호준)의 출범을 알리는 축포가 봄 하늘을 수놓는 가운데 경주지역 금속노동자들을 하나로 묶어나갈 깃발이 솟았다.

경주금속노조로 하나가 된 7개 사업장 5백여명의 노동자들은 잔업을 거부한 채 출범식에서 함박웃음을 꽃피웠다. 야간조를 빼면 대다수 조합원이 참석한 셈이어서 새로 출범하는 통합노조에 거는 9백20여 전체조합원의 기대를 짐작케 했다. 지난 4월24일 창립대의원대회에서 50여명의 창립대의원들은 이미 노조규약을 제정하고 최호준 전 일진산업노조위원장을 초대위원장으로 선출한 마당이었다. 노조는 규약 제7조에서 조직대상을 ‘경주시 지역의 금속산업 및 금속관련산업에 종사하는 자로서 조합의 규약에 찬동하는 자’로 밝힘으로써 산별노조 지향을 분명히 했다.

최호준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우리는 IMF를 겪으면서 지난 10년 민주노조운동의 성과를 한순간에 빼앗긴 뒤 계급적 단결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며 “경주금속노조가 금속산별노조 건설의 견인차가 되고 2천년 투쟁의 선봉이 돼야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경주지역 자동차부품업체노조들이 노조통합을 앞장서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우연

이 아니었다. 이들은 경주지역의 유리한 조건을 적극 살려나가는 지혜를 발휘하면서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여기에 금속산업연맹의 적극적인 지지·지원이 어우러졌다.

금속산업연맹 소속 경주지역노조들은 한 지역에 밀집해 있음은 물론 현대자동차와 원-하청관계를 맺고 있는 부품업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조합원규모가 엇비슷한 노조들은 지역공동투쟁의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경주지역 자동차부품업체노조들은 90~94년 시기집중 공동임투를 계속 벌여왔고 95년 최초로 집단교섭을 제기했다. 노조들은 98년 집단교섭을 추진했지만 사용자쪽의 거부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98년 11월 현대가 기아를 인수하면서 사용자쪽은 부품업체 구조조정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냈다. 노조들은 99년 4월부터 ‘경주지역 자동차부품 구조조정 대응준비팀’을 단위노조 임원급으로 구성하고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99년 3월 금속산업연맹 대구경북본부 차원에서 실시한 전 조합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노조통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경주지역 9개노조 1천여명의 조합원가운데 82.1%가 찬성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99년 11월25일 토론회에서 단위노조대표자들과 ‘대응준비팀’ 담당자 전원은 통합노조가 대안이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노조통합을 위한 실질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자동차부품업체 구조조정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산별노조 건설의 모범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노조통합이 최선이라는 것이었다. 안희상 부위원장은 “올해초부터 각 단위노조별로 세 차례의 조합원 간담회, 상집·대의원 간담회, 토론회 등 끊임없는 교육사업을 벌여왔다”며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통합노조에 거는 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올해 4월10~11일 노조통합을 함께 준비해온 자동차부품업체 8개 노조들은 조직형태 변경결의 및 교섭체결권 위임, 임금공동요구안을 동시총회에 부쳤다. 자동차부품업체노조 중 가장 큰 아폴로산업노조(위원장 박장근)는 조직형태 변경결의에 필요한 2/3 찬성에 한 표가 모자라 아쉽게도 통합노조에 합류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인희산업, 동진이공, 광진상공, 일진산업, 한국FCI, 신아전기, 한국펠져 등 7개 노조가 참가한 가운데 4월24일 경주금속노조는 이 지역 금속단일노조시대를 열어 젖혔다.

한편 노조규약 제정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쟁점들, 즉 단위노조 임원진 임기문제, 재정의 집중문제, 분회집행체계 등은 경주금속노조가 앞으로 극복해야할 과제로 남게 됐다. 이 때문에 금속산업연맹 경주지구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2천년 집단교섭·공동투쟁의 중요성이 도드라지고 있다. ‘집단교섭 쟁취’라는 몸벽보를 붙인 이상민 노조대의원(동진이공분회)은 “노조별 차이가 거의 없어 집단교섭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이번에는 강력하게 나가야 한다”고 말해 집단교섭에 거는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현재 금속산업연맹 경주지구는 경주금속노조 소속 분회 가운데 임금협상이 없는 한국펠저와 신아전기를 뺀 5개 사업장과 아폴로산업노조가 공동교섭단을 구성해 2노조 6사 공동교섭·공동투쟁을 추진하고 있다. 오세용 민주노총 경주시협 정책실장은 “4월27일 3차 집단교섭 요구에도 사용자쪽은 응하지 않고 있다”며 “집단교섭을 쟁취하고 임단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조합원과 함께하는 5월말~6월초 투쟁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문성현 금속산업연맹 위원장은 “연맹에서 만도기계와 경주금속노조 2곳이 집단교섭을 추진하고 있는데 반드시 성과가 있을 것”이라며 연맹차원의 연대투쟁을 다짐했다.

이재철 leecc@kct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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