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짱돌

아바타, 가상공간의 또 다른 나

이원재 / 대안문화·미디어운동 모임 R.exe

야심한 새벽, 미혼 여성만이 들어 올 수 있도록 임의로 개설한 채팅방에서 네 명의 여성이 수다(?)를 떨고 있다. 남성에 대한 각자의 취향을 설파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지만 문제가 발생한다. 여성만이 이해할 수 있는 농담에 그 중 한 명이 걸려든 것이다. 남자임이 발각된 가짜 여성은 곧 퇴장 당한다. 다시 이야기가 시작될 무렵, 의심스런 질문이 계속된다. 좀 더 농도 짙은 질문 공세에 여지없이 또 한 명의 남성이 발각되고 이제 남은 사람은 두 명. “야! 오늘도 공쳤어. 도대체 왜 기다리는 여자는 안 들어오고 허구헌날 남자들만 기웃거리는 거야!” “사기를 치려면 우리처럼 여자에 대해서 해박하든지. 바보들….”

가상공간과 정체성

가상공간(Cyberspace)이 현실을 바꾸고 있다. 물론 SF 영화나 판타지 소설 속에 등장하는 것처럼 완벽하게 탈물질화된 공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하루가 다르게 현실화되고 있는 가상공간은 이제 단순히 허구라고 치부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모든 광고의 대부분이 “무슨무슨 닷컴”이고,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기호가 더하기(+)나 빼기(-)가 아니라 골뱅이(@)인 것처럼 말이다. 더 이상 가상공간은 현실과 괴리된 영화나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더욱이 우리의 일상은 가상공간의 현실화가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전화나 라디오, 그리고 TV가 인류의 일상을 바꾸었듯이 인터넷이 구현하는 가상공간이 이제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단순하게 우편엽서 대신에 전자메일을 보내는 것, 백화점에 가는 것 대신에 인터넷쇼핑을 즐기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상공간은 ‘탈물질화’라는 질적인 변화를 제기하고 있으며, 이는 모든 존재 및 인간의 정체성(identity) 자체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미디어가 단순히 정보전달의 범위와 그 형태를 확장하는 것이었다면, 가상공간은 시간을 초월한 다양한 형태의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육체를 떠나 곳곳에 자신을 현존시키도록 만들고, 물리적인 어느 위치가 아닌 전체 네트워크에 자신을 현존시킨다. 다시 말해 과거의 정보상황이 물리적 상황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것이었다면, 가상공간은 그 물리적 ‘흔적’을 지움으로써 정보상황이 우선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흔적’ 중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던 우리의 신체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네트워크에서 마주치는 사람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신체라는 물리적 근거가 아니라 모니터에 명시된 아이디(ID)일 뿐이다. 그리고 그 아이디를 통해 발현될 수 있는 정보상황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그(녀)는 이제 머리가 길고 눈이 큰 여성이거나, 얼굴에 깊은 상처가 있는 범죄형 남성이 아니라 ‘쌈장’, 혹은 ‘대박’일 뿐이다.

아바타 문화의 이중성

이제 가상공간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은 ‘아바타'(avatar)이다. 시각적인 그래픽 위주의 가상공간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그래픽 개체를 아바타라고 부르는데, 어떠한 형태이든지 가상공간에서 부여된 육체의 신원을 아바타라고 부르는 셈이다. 아바타의 가장 단순한 형태는 문자로 명시된 아이디이다. 그리고 최근 아바타를 표현하는 방식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게시판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선택하는 경우나 각종 사이트에서 움직이는 동영상 캐릭터를 선택하는 것 등이 모두 아바타의 변화를 보여주는 현상이다. 최근에는 사이버캐릭터를 이용하여 가상토론회에 자신을 대신한 아바타를 등장시키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따라서 아바타 역시 인간의 모습을 가상공간에서 완벽하게 재현 할 수 있도록 발전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이 극대화된다면 영화 속에서 등장하듯이 현실과 똑같이 재현된 도심 속에서 나와 동일하게 느껴지는 개체가 웃고, 마시고, 사랑을 속삭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현재를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가상공간에서 아바타 문화가 보여주는 현상은 매우 이중적이다. 먼저, 아바타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은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아날로그 세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규정했던 외형으로부터 어떠한 구속도 당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얼굴, 지문, 목소리 등 신원 파악에 사용되는 모든 것이 가상공간에서는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모든 선입견과 위계가 가상공간에서 해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가상공간의 아바타 간에는 사회적 위계서열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

든 관계는 수평하고 대등한 관계로 재구성된다. 여성, 인종, 나이, 직책에 대한 모든 편견이 물리적인 흔적을 상실함으로써 오히려 평등하고 수평적인 관계 자체로 대체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직장이나 가정에서는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친구가 가상공간이나 동호회에서는 전혀 다른 리더가 되어 활동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또한 장난 삼아 가상공간에서 여성 행세를 했다가 여성이 사회에서 당하는 억압과 폭력에 대해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는 참회도 간간이 듣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가상공간의 정체성을 둘러싼 문제가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바타는 물리적 근거가 상실된 만큼 그 신용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가상공간에서는 신원을 쉽게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신원 파악 자체가 어렵고, 반면에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그 신원에 대한 파악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가상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근거는 정보의 신용도와 그 정보제공자의 신용에 비례한다. 따라서 가상공간에서의 아바타는 자신의 인격과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리고 기업의 브랜드가 오랜 기간의 활동과 선전을 통해 사회구성원들에게 인정받는 것처럼, 아바타는 가상공간의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인격적 가치를 평가받게 되는 무형 자산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원의 신용과 도용의 문제는 신체 중심의 현실공간에서보다 그래픽 위주의 가상공간에서 더욱 크게 발생한다. 더욱이 도용은 쉽게 이루어지는 반면 그 여파는 매우 치명적이며, 신용이 높은 아바타일수록 그 타격도 크다. 왜냐하면 아바타의 특성상 가상공간에서 이러한 오해를 받게 되면 물리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인의 아이디를 해킹하여 사용하는 경우, 이는 현실공간에서보다도 더욱 더 당사자의 정체성 자체를 뒤흔드는 폭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상공간의 취약점을 이용한 사이버범죄는 최근 더욱 더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아바타 문화는 신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놀라운 가능성이지만, 나의 정체성이 그 존재부터 흔들린다는 점에서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닌 셈이다.

가끔 TV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영화배우에게 직업을 선택한 이유나 직업상의 장점에 대해 묻는 장면을 목격한다. 엄청 식상하지만 열에 아홉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살 수 있어서 좋아요.” “남들은 한 가지 삶을 살지만 전 영화를 찍을 때마다 다른 삶을 경험할 수 있잖아요.” 이제 아바타 덕분에 누구나 이런 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바타는 가상공간을 통해 우리에게 복수의 자아를 경험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한 아이디나 그래픽 개체를 통해 자신의 신체나 역사성이라는 흔적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내’가 될 수 있다. 물리적인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측면에서, 짜여진 시나리오가 아니라 하나의 현실에서 활동한다는 측면에서 가상공간의 아바타는 더욱 더 흥미로운 경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의 무책임한 아바타가 타인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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