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위’의 정체를 밝힌다

사용자에 유리한 건 ‘냉큼’, 노동자에 유리한 건 ‘나몰라’

“2000년부터 업종·규모별 법정근로시간을 주40시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함께 논의, 필요할 경우 고용보험의 ‘근로시간 조정 지원금’ 등 지원방안과 재원규모 확충문제를 적극 추진한다. 노사정위원회에 근로시간위원회를 설치하여 법정근로시간 및 실근로시간 단축, 이와 관련된 임금 조정 등 근로시간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마련한다.”

이것은 지난 5월26일 최선정 노동부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내용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98년 6월5일 민주노총과 정부 사이의 합의사항이다. 그러나 토씨만 몇 개 바꾸면 최장관의 이번 발표와 엇비슷해진다. 문제는 정부가 이 합의사항을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정이 이럴 진데 “노사정위에서 합의해 올해 안에 법안을 올리도록 노력하겠다”는 노동부장관의 이번 발표를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정부가 노사정위 합의사항을 ‘확실히’ 지킨 적이 딱 한 번 있긴 하다. 정리해고·근로자파견제에 대한 98년 2월 노사정위 잠정합의는 일주일만에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고, 번개불에 콩구워 먹듯 처리됐다. 그러나 노사정위는 그때 이후 사실상 기능이 정지됐다.

탁상공론이나 벌이는 노사정위에 진력이 났던지 경총(회장 김창성)조차 지난 5월8일 민주노총과 만난 자리에서 노사정위의 무기력함에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노사정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용자에게 유리한 합의는 반드시 지켜진 반면 노동계에 유리한 합의는 지켜지지 않거나 지지부진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실업자의 초기업 단위노조 가입자격 문제는 98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키로 합의됐지만 국회가 이를 백지화시켰고 이후 2기 노사정위에서 다시 합의됐지만 공안세력과 박상천 법무부장관의 반대로 결국 입법화되지 못했다. 1기 합의사항 중 부패방지법 제정문제는 끊임없이 터지고 있는 권력자들의 부패비리에도 불구하고 법무부 등의 반대로 방치되고 있다. 공공·금융부문 구조조정과 관련 노조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추진키로 했지만 해고회피노력이나 경영구조개선 없이 일방적인 인원감축 위주로 추진됐다.

이처럼 노사정위는 근본적으로 자문기구에 지나지 않아 합의된 사항도 다른 정부부처가 반대하면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었다. 또 대량실업, 정리해고를 일으키는 구조조정정책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해오는 과정에서 노사정위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들러리 기구로 변질됐다. 한마디로 그동안 노사정위는 대화와 교섭의 장이 아니라 노동계를 합법적으로 ‘왕따’시키는 곳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5월2일 ‘모든 것을 노사정위에서 논의하라’고 정부 각 부처에 지시하는 등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민주노총의 면담요구를 끝내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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