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리 사격장 철조망을 걷어내며

매화꽃이 피어 그 향기가 서해안에 고루 퍼진다는 매향리. 그러나 지금은 미군의 폭격이 피워낸 화약냄새가 진동하는 그곳에 지난 6월6일 ‘난리’가 났다. 미군이 쳐 놓은 철조망 앞에 온갖 깃발이 모여든 것이다.

화약냄새를 걷어내고 매화향기를 살려내기 위해 달려온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을 비롯해 전국의 시민.사회단체 회원 2천여명이 투쟁의지를 모아내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경찰과 전경대원 50개 중대병력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이들을 감시하며 연신 상부와 연락을 취했다.

폭격을 당해 지금은 원래 크기의 3분의1밖에 남지 않은 농섬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매향리 주민대책위 사무실 앞에서 집회가 시작됐다. 이곳 주민들이 그동안 뼈에 사무친 울분을 토하자, 모여든 집회참가자들 또한 미군의 ‘만행’과 우리정부의 비호를 강력 규탄했다. 연단에 오른 단병호 위원장은 “50년간 미군의 폭격으로 매향리 주민도, 우리강산도 날로 황폐화 됐다”며 “민족의 수치이자 통일을 가로막는 매향리 사격장을 폐쇄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앞장서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쿠니 사격장 정문까지 행진에 나섰다. 철망 너머에 있는 전투경찰대가 마치 적군이나 되는 것처럼 행진대오를 따라가며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듯 했다.

사격장 앞 집회는 일촉즉발의 살벌함이 감돌았다. 철망 안쪽에 있던 경찰병력이 밖으로 몰려나오는 바람에 한동안 집회가 중단된 채 격한 몸싸움이 벌어져 부상자까지 나왔다. 뒤늦게 학생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뛰어서 도착하자 집회분위기는 더 한층 달아올랐다. 3천여명으로 불어난 집회대오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여서 주최측조차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주민대표로 나선 매향리 부녀회장은 집회 참가자들에 감사를 표한 뒤 “우리의 요구는 주민 이주대책이 아니라 피해보상과 미군사격장 폐쇄”라며 “사격장이 패쇄될 때까지 싸우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미군문제에 대해 늘 앞장서 싸웠던 SOFA개정국민행동 김용환 집행위원장은 “미국은 지난 50여년 동안 이 땅의 민중에게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을 강요해 우리강산을 피멍들게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남북화해의 바람이 불고 있는 지금도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이 존재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매향리 사격장 폐쇄투쟁에 전 민중이 함께하자”고 호소했다.

이윽고 사회자의 제창에 따라 철조망 제거행사가 시작됐다. 그동안 주민들의 통행을 막아왔던 철조망이 군데군데 치워졌다. 2킬로미터쯤 늘어선 참가자들은 절단기로 철조망을 자르기도 하고, 힘으로 기둥을 뽑아내기도 했다. 기둥이 넘어갈 때마다 모두가 박수를 치며 투쟁의지를 모아나가는 모습이었다. 여기저기 넝마처럼 구겨진 철조망을 보면서 ‘이리 보잘것없는 것을 어찌 50여년 동안 말도 못하고 지내왔던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마무리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참가자 모두가 ‘오늘처럼 모여 싸운다면 매향리 사격장 폐쇄 뿐만아니라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 개정, 우리민족의 자주성 확립과 민족통일 또한 크게 앞당길 수 있으리라’는 것을 새삼 확신하는 듯 했다. 다만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전민중이 연대해 완강하게 투쟁한다면 말이다.

김한수/경기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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