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현장

⑥한통계약직들이 살아남는 법

역시 길은 노조에 있었다

월급 83만원·’석 달 인생’으론 도저히 못 살아

6월말이 고비…고용유지 내걸고 총력투쟁 별러

헐벗은 노동조건과 극단적인 고용불안. 요즘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이 하나 둘 드러나면서 이 사회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리고 있다. 올해 들어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제도를 고치는데 힘을 쏟는 한편으로 조직사업에 발벗고 나서면서 이들도 마침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속에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이 있다.

전국에 8천5백여명 일해

한국통신에는 서울지역에만 2천4백여명, 전국적으로는 8천5백여명에 이르는 계약직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IMF의 ‘미친 바람’은 이들이라고 가만두지 않았다. 많으면 1백45만원에 이르던 계약직 월급은 98년 들어 93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1년 뒤에는 다시 10만원 더 깎이면서 83만원 수준으로 굳어졌고, 이는 새로 들어온 사람이나 10년 일한 사람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됐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계약직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이렇게는 못살겠다”는 불만이 터져나왔고 “며칠 일을 제껴서라도 방향을 바꿔보자”는데 의기가 투합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게 됐다. 우선 성북을 비롯한 4∼5개 전화국의 계약직들이 모였는데 “힘도 없는 우리가 며칠 일을 제낀다 해도 뾰족한 수가 없으니 노조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대응하자”고 방향을 틀었다. 이렇게 해서 37명이 2월29일 한국통신계약직노동자협의회를 만들고, 3월31일 한국통신서울지역계약직노조로 전환했다. 그러던 중 5월31일 대전지역에서 부당한 계약해지가 발생하면서 대전, 충남, 충북, 대구, 경북까지 조직이 확대돼 지금은 조합원이 5백여명에 이른다. 6월10일에는 한국통신계약직노조(위원장 구강회)로 이름을 바꿨다. 구강회 위원장은 “곧 전국총회를 열어 8천5백여명 모두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노조로 거듭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역시 ‘계약직’이라는 게 문제다.

지난 5월31일 계약이 만료된 충남지역 계약직들의 재계약이 승인되지 않아 결국 해고됐고, 6월30일로 계약이 만료되는 1천여명도 마찬가지 결과가 예상된다. 계약직이라는 이유 때문에 임금과 노동조건의 차별은 물론이고, 고용마저 늘 불안한 것이다.

예전에는 보통 1년 단위로 재계약을 맺었는데, IMF 이후 계약기간이 6개월로 줄었고, 최근에는 다시 3개월로 줄었다. 지난해만 해도 3월말 계약이 만료되는 경우 4월1일에 재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그냥 일을 계속하면서 4월중순에 가서야 형식적으로 서류를 작성했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바뀌었다. 계약직노조 결성 움직임을 감지한 회사는 3월말 곧바로 계약해지 통보서를 보낸 뒤 예외적으로 1개월 계약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성북전화국 계약직들이 서명을 하지 않고 버티자 회사쪽은 결국 3개월 짜리 계약에 응하기도 했다.

한편 “말이 계약직이지 업무는 사실상 정규직과 차이가 없다”는 게 구 위원장의 설명이다. 계약직원은 한국통신 각 전화국과 계약을 맺고 주로 선로보수, 유지, 가설, 실험실 등에서 근무하는데, 3개월에서 1년 단위로 재계약을 반복해왔다고 한다. 심지어 명예퇴직 뒤 계약직으로 재입사하는 경우도 있다.

노조가 설립되자 회사는 계약직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을 시작했다. 계약직 대부분이 정규직 인맥을 통해 들어오다 보니 본인은 물론 소개한 사람까지 시달린다고 한다. 회사 관리자들은 노조에 참여한 계약직들에게 “이제 통신밥 다 먹은 줄 알라”며 대놓고 협박하고 있다. 한국통신 뿐 아니라 관련업계에 다시는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겠다는 엄포다. 구 위원장을 비롯한 몇몇 노조 임원에 대해서는 현장에 일을 내보내지 않고 사무실에 대기시키고 있다. 지난 6월10일에는 대전지역 총회에 참석하려던 노조 임원들을 관리자들이 한 명씩 맡아 북한산 등지로 끌고 다니며 방해했다. 버스를 대절해 동대문운동장에 모여 떠나기로 했지만 관리자들은 여기까지 나타나 참석자를 조사하기도 했다.

탄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전까지 자유롭게 쓸 수 있던 사무실의 컴퓨터마저 비밀번호를 걸어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노조가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workingvoice.net/)를 만들어 소식과 의견을 올리고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다.

탄압 거셀수록 대응도 치밀

그러나 탄압이 거셀수록 노조의 대응 또한 치밀해지고 있다.

회사쪽의 방해로 조직활동이 어려워지자 노조는 지역별로 전담부위원장을 두는 한편 주말에는 집행부가 직접 내려가 조직사업을 챙기고 있다. 특히 조직대상이 가장 많은 서울지역은 4개 권역으로 나눠 역시 전담부위원장을 두고, 권역별 회의를 갖는다. 노조 임원이 포진해 있어 탄압도 거센 성북, 홍제, 동대문전화국 역시 집중적으로 역량을 투여하는 곳이다.

노조는 6월말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2년 이상 근무한 사람 대부분이 대거 계약이 해지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노조는 현재 한국통신 사장에게 △5월말 계약해지자 복직 △6월말 해지통보 철회 △반복되는 계약갱신은 계속근로로 인정 등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놓은 상태다. 6월20일까지 답변이 없으면 분당에 있는 한국통신 본사 앞에서 집회를 갖고, 26일부터는 총력투쟁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구 위원장은 “우리가 이렇게 뭉쳐 있으니 쉽게 해고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6월말 투쟁을 통해 우리 힘을 확실하게 보여주겠다”고 결의를 내보였다.

이황미 leehm@kct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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