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반대 운동의 전망

[네이션(The Nation)] 6/25 나오미 클라인

“이번 회의는 다른 회의들과는 달랐다.”

이것이 우리가 뉴욕의 리버사이드 교회에 도착하기 전 “정치와 사회에 대한 재상상”이라

는 회의에 참석했던 모든 화자들이 들었던 말이다. 거기 모인 대표자들(5월달 3일 동안 약

천여 명이 참석했다)에게 연설하면서 우리는 매우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

해 노력해야 했다. 그것은 바로 지구적 기업주의에 맞선 운동을 이끄는 “일치된 전망과 전

술”의 부재라는 문제이다.

우리가 들었던 충고는 이것이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각료회의를 무산시키고,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의 회의에 대

한 항의 시위를 전개하기 위해 시애틀과 워싱턴에 갔던 젊은 활동가들은 언론에서 나무를

뒤집어쓰고, 양모습의 분장을 한 채 드럼을 두들겨대는 허황한 자들로 공박당해 왔다. [윤

리와 의미 재단]측의 회의 조직자들에 따르면 우리의 임무는 거리의 혼란을 어느 정도 틀을

갖추고 언론 친화적일 수 있는 형태로 다듬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또 한번의

말잔치가 아니었다. 우리는 “사회, 경제, 정치 상의 전면적인 변화를 향한 일치된 운동을

탄생시키려” 했던 것이다.

나는 아리아나 허핑턴과 마이클 러너, 데이비드 코튼, 코넬 웨스트 등의 풍부한 전망을

섭렵하면서 강연장을 드나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풍성한 의미를 지닌 전체 제의의 공허함

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우리가 명쾌하고 뛰어난, 또한 일관되고 격조높은, 그리고 일

치된 전망을 가진 열 개 항의 계획을 제출하게 된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우리는 이러한 계

율을 제시할 것인가?

작년 11월 시애틀의 거리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반기업 항의 운동은 단일한 정치 정

당이나 중앙본부와 지부, 지역 회원을 갖고 연례 회의를 여는 그런 전국적 네트워크에 의해

단일한 대오로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개별적인 조직가들과 지식인들의 아이디어로

모양을 갖추게 되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지도자로 추앙받은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무정형의 맥락 속에서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도출된 아이디어나 계획들은 전적으로

부적절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희망처럼 명료한 그런 중요성을 갖는 것은 아니었을 뿐이다.

이것들은 세계를 변화시킨다기 보다는 엄청난 정보로 가득찬 일지나 NGO 선언들, 학술 논문

들과 가정용 비디오 (cris de coeur) 등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닐 운명이었다. 지구적인 반기

업 네트워크는 매일같이 이러한 것들을 생산하고 소비한다.

이것은 거리의 젊은이들에게 명확한 지도력이 결여-물론 추종자도 없다-되어 있다는 끈덕

진 비판의 다른 면일 뿐이다. 60년대의 모사물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결여는 반

기업 운동을 놀라울 정도로 무감각한 것으로 보이도록 만든다. 분명 이들은 전혀 조직적이

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조직하기 위해 완벽하게 잘 조직된 시도에 다함께 대응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MTV로부터 태어난 행동이며, 실제로 보수파들이 이들을 산개되고 비일관적

이며, 초점도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비판이 설득력있는 것은 사실이다. 만약 좌파와 우파가 동의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명확하고 잘 조직된 이데올로기적 주장에 대한 가치 부여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

은 그리 간단치 않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시애틀과 워싱턴의 시위가 초점없는 것처럼 보인

이유는 한 가지 운동이 아니라 많은 소규모 운동들의 집합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각자

자신의 시각을 가지고 특정 다국적 기업(나이키 같은)이나, 특정 산업(기업 농업 같은), 혹

은 새로운 무역 구도(미주자유무역지대 같은) 등에 대한 반대 운동을 벌였던 것이다. 이렇

게 특정 목표를 가진 작은 운동들은 분명 공통적인 대의의 한 부분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씨름하고 있는 서로 다른 문제들이 모두 하나의 의제, 즉 힘과 부를 점점 더 적은 수의 손

에 집중시키는 지구적 탈규제화로부터 파생한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

물론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국가의 역할이나 자본주의의 구제 가능성에 대해서, 혹

은 변화의 속도 등에 대해서 그렇다. 하지만 이런 많은 소규모 운동들 내부에서는 어느 정

도의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노조이든, 이웃 공동체이든, 농장이든, 마을이든, 무정부주

의자 집단이든, 혹은 원주민들의 자치정부이든, 공동체에 기반한 의사결정력을 구축하는 것

이야말로 다국적 기업의 권력에 맞서는데 필수적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공통 기반에도 불구하고 이 캠페인들은 하나의 단일한 운동으로 결합되지 않고 있

다. 다만 이들은 인터넷 상에서 자신들의 웹사이트를 연결시키는 “핫링크” 만큼 그렇게 서

로에게 복잡하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유비는 그저 우연한 일치 이상이며 사실 정

치적 조직화의 성격 변화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요소이다.

많은 사람들이 최근의 대규모 항의가 인터넷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

기는 하지만, 캠페인을 용이하게 해주었던 통신 기술이 어떻게 운동을 자신의 구미대로 다

듬고 있는가는 간과되어 왔었다. 네트 덕분에 관료적 구조나 위계질서의 영향을 최소화하면

서 동원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강제되는 합의나 공들인 선언문은 뒷면으로 물러났으

며, 대신 지속적이지만 헐거운 구조를 가진 그리고 때로는 강박적인 정보 교환의 문화가 등

장했다.

시애틀과 워싱턴의 거리에서 등장했던 것은 유기적이고 탈중심적으로 서로 연결되는 인터

넷 경로를 그대로 반영한 행동 모델이었다. 인터넷이 생활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텔레지오그라피라는 워싱턴의 연구센터는 인터넷이라는 구조물을 태양계나 되는 것처럼

면밀히 검토해 왔다. 최근 텔레지오그라피는 인터넷이 하나의 거대한 거미줄이 아니라 “중

심부들과 주변부들(hubs and spokes)”의 연결망이라고 발표했다.

중심부는 행동의 중심지이며, 주변부는 다른 중심부로의 연결지로서 자율적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야말로 시애틀과 워싱턴에서 있었던 시위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다.

이런 대규모적인 집결들은 행동주의의 중심부였으며, 수백, 수천의 자율적인 주변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시위 동안 주변부들은 다섯 명에서 스무 명 정도의 “친화 그룹들”의 형태

로 편재되었다. 각각의 그룹들은 정기적인 “주변부위원회(spokescoucil)” 회의에서 자신들

을 대표할 대변인(spokesperson)을 선출했다. 이 친화 그룹들이 일련의 비폭력 원칙들을 지

키는데 동의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또한 자체적인 전술적 결정을 내릴 힘을 가진 분절 단위

로 기능했다. 몇몇 집회에서 활동가들은 그들의 운동을 상징화하는 실제 거미줄 모양의 옷

을 입기도 했다. 회의를 할때면 그들은 그 거미줄을 땅에 내려놓고 “거미줄 상의 모든 주변

부”를 불러모았다. 이런 구조를 통해 바로 거리 회의가 되는 것이다.

시애틀과 워싱턴의 시위가 있기 전 4년 동안에도 비슷한 중심부적 상황들이 연출되었다.

오클랜드, 밴쿠버, 마닐라, 버밍햄, 런던, 제네바, 콸라룸푸르, 쾰른 등에서 WTO와 G-7, 아

시아·태평양 경제협력정상회의(APEC) 등에 맞서는 집결이 있었던 것이다.

이 대규모 시위 각각은 탈중심적인 조정의 원칙들에 따라 조직되었다. 응집된 전선이 아

니라 소규모의 활동가 집단들이 모든 방향에서 목표물을 포위했던 것이다. 또한 전국적이거

나 국제적인 정교한 관료틀 혹은 일시적 구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뒤엎어 버렸던

것이다. 빈 건물은 “집결 중심지”가 되었고, 독립 미디어 연출자들은 즉석에서 행동 뉴스

센터를 조립해냈다.

이런 시위들 배후의 임시적 연합은 계획된 행동들을 종종 날짜에 맞춰 불렀다. J18, N30,

A16 등, 그리고 9월 26일 프라하에서 열리는 IMF 회의에 맞춘 행동은 S26으로 불린다. 행동

이 끝나면, 그 뒤에는 정보가 집적된 웹사이트 말고는 사실상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다.

물론 급진적인 탈중심화에 대한 이 모든 이야기들은 활동가들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컴퓨

터 네트워크를 누가 소유하고 이해하며 통제하고 있는가에 기반한 매우 실제적인 위계질서

가 존재함을 일깨워준다. 무정부주의 컴퓨터 네트워크인 타오 커뮤니케이션의 창립자 중의

한 사람인 제시 허쉬는 이 현상을 “임시적 상황에 의한 기묘한 위계질서”라고 부른다.

중심부와 주변부는 시위때 사용되는 전술 이상의 것이다. 글로벌 익스체인지의 케빈 대내

허의 말을 빌면 시위 자체가 “연합들의 연합들”로 이뤄져 있는 것이다. 각 반기업 캠페인들

은 대부분이 비정부기구(NGO)와 노조, 학생들, 무정부주의자들인 많은 그룹들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은행이 저지른 최근래 범죄들의 일람부터 석유회사 셸에 대한 팩스와 전자우편 폭격

까지, 그리고 나이키 공장에서의 시위를 위한 노동착취공장 반대 유인물(인터넷에서 다운로

드만 하면 된다) 배포까지, 그들은 이 모든 것을 하는데 있어서 보다 전통적인 조직화 수단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그룹들은 여전히 자율적이지만 이들의 국제적 연락은 꽤나 능숙하다. 이들의 목표물들

은 이것을 종종 위협적으로 느낀다. 이런 캠페인들의 맥락 속에서 바라볼 때, 반기업 운동

이 “전망”을 결여하고 있다는 혐의는 쉽게 물리쳐진다.

시애틀과 워싱턴의 대규모 시위가 구호와 주장들의 뒤범벅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보통

의 관찰자로서는 무미아의 투옥와 바다 거북의 운명 사이의 연관을 해독하는데 어려움을 느

낀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이 대규모 무력 시위에서 어떤 통일성을 찾으려는 시도

속에서 비판자들은 시위 자체의 외관을 혼란스럽게 덧칠하고 있다. 나무처럼 분장한 사람들

은 숲이 사라지고 있음을 알리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 운동은 전체의 한 주변부이며 이 주

변부에는 전망의 결여란 없다.

예를 들어 노동착취공장 반대 학생운동의 경우 단순히 기업과 대학 당국을 비판하는 것으

로부터 이제는 대안적인 기업윤리강령을 제출하고 그 스스로 준규제기구인 노동자권리협회

(WRC)를 건설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유전적으로 변형, 조작된 식품에 대한 반대 운동의 경우 하나의 정책적 승리로부터 다음

단계들로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영국 슈퍼마켓들의 진열장에서 많은 유전자조작식품을

몰아냈으며, 그 다음에는 유럽에서 내용물의 유전자 조작 여부 확인 표시 법률을 통과시켰

으며, 그리고 나서는 생물다양성에 관한 몬트리올 의정서라는 엄청난 진전을 이뤄내고 있

다.

한편 세계은행과 IMF의 수출주도형 개발 모델에 대한 반대자들은 공동체에 기반한 개발

모델이나 채무 탕감, 자치정부의 원칙 등에 관한 엄청난 양의 자료를 생산해냈다. 비슷하게

석유산업과 광산업의 비판자들 역시 지속가능한 에너지나 책임성있는 자원 추출 등에 관한

아이디어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들의 전망이 실천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기는

하다.

이런 캠페인이 꽤나 탈중심화되어있다는 사실이 지리멸렬함이나 파편화를 나타내주는 것

은 아니다. 오히려 진보적 네트워크 내에 이미 존재하던 파편화와 보다 폭넓은 문화상의 변

화, 양측면의 합리적이고 독창적인 개조이다.

이것은 또한 1992년 리오 정상회의 이래 힘과 지명도를 얻어온 NGO들의 폭발적 증가에 따

른 부산물이다. 수많은 NGO들이 반기업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것은 중심부와 주변부

라는 모델이 이들의 모든 양식과 전술, 목표의 차이를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에 다름 아니다.

인터넷 그 자체처럼 NGO와 친화 그룹 네트워크 모두 무한한 확산의 여지를 갖는 체계이

다. 만약 누군가 거기 모인 3만여 개나 되는 NGO들이나 수천 개의 친화 그룹들과 자신들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그들은 바로 자신들의 그룹과 연결망을 시작하면 된다.

일단 참여하면 아무도 자신들의 개별성을 더 큰 구조에 맞춰 포기할 필요가 없다. 온라인

상의 그 모든 것들처럼 우리는 언제고 들어오거나 빠져나갈 수 있으며, 자유롭게 우리가 원

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취하거나 버릴 수 있다. 이것이 외적 연결을 격렬히 욕망하는

극도의 자기 중심주의로서 인터넷의 역설적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행동주의에 접근하는 방

식인 것이다.

이런 자유방임적 조직화 모델이 갖는 강점 중의 하나는 통제하기가 극도로 어렵다는 것이

다. 이것은 주로 타겟으로 삼고 있는 기구나 기업들의 조직 원칙이 상당히 다르다는 데에

기인한다. 기업의 집중에는 미로같은 분절화로, 지구화에는 자신들의 고유한 지역화로, 권

력의 강화에는 급진적인 권력 분산으로 대응한다.

초국적 자료·행동 센터의 죠슈아 칼리너는 이 체계가 “지구화에 대한 의도되지 않은 명

쾌한 대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의도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그것을 표현

할 수 있는 어휘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그 격차를 메우기 위해 다소 우스꽝스런 은

유적 표현들이 성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표현에 한 표를 던질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 시민협회의 모드

발로우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정표에 마주쳐 있다. 제거할 수 없는 어떤 것이기 때문

에 우리는 그 밑으로 파고들거나, 그 주위로 돌려고 하고, 그 위로 올라타려 하는 것이다.”

거리되찾기운동의 창립자 중의 한 사람인 영국의 존 조던은 초국적기업들은 “거대한 유조선

과 같아서 재빨리 대응할 수 없지만, 우리는 한 떼의 고기처럼 유연하게 헤쳐 나갈 수 있

다”고 말한다. 미국의 자유버마연합은 가장 강력한 다국적기업들을 옭아맬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튼튼한 거미줄을 엮고 있는 “거미들”의 네트워크란 표현을 사용한다.

치아파스의 사파티스타 봉기에 관한 미국의 군사보고서조차 이 게임에 끼어들고 있다.

RAND가 발간한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사파티스타가 인터넷과 지구적인 NGO 네트워크들

덕택으로 “떼거리 전쟁”으로 전화하는 “벼룩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떼거리 전쟁에 대한 군사적 난관은 그 어떤 “중심적인 지도부나 지휘 체계”도 없다는 것

이며, 그래서 “다중적 지휘체계이고 무력화시키기 불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이런 다중적인 체계 역시 약점은 있다. 그 약점들은 세계은행/IMF 반대 시위 당시

워싱턴 거리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최대의 시위가 있었던 4월 16일 정오경 친화 그룹들이

참여한 주변부위원회 회의가 있었다. 이들은 세계은행과 IMF 건물로 통하는 모든 교차로를

막고 있는 중이었다. 오전 여섯 시부터 교차로들을 막고 있었지만, 대표단은 다섯 시 이전

에 경찰 봉쇄선 안쪽으로 들어가버렸다는 소식을 방금 전해들은 것이다. 새로운 정보에 접

한 대부분의 주변부대변인들(spokespeople)은 교차로를 포기하고 엘립스 공원에서 열리는

공식 행진에 참여해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모두가 이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

다는 것이다. 몇몇 친화 그룹들은 회의장에서 나오는 대표단을 막을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

어했다.

위원회가 도출해낸 합의는 다음과 같았다. 케빈 대내허는 확성기를 들고 이렇게 외쳤다.

“알겠습니다. 각 교차로를 막고 있는 집단은 자율성을 갖습니다. 만약 어떤 교차로를 계속

봉쇄하기를 원한다면, 그대로 괜찮습니다. 엘립스 공원의 집회에 결합하고자 한다면 그것

역시 좋습니다. 결정은 전적으로 여러분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나무랄 데 없이 공정하고 민주적인 결정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

다. 전혀 무의미한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애초 행동 조정을 통해 접근망을 봉쇄했었다. 그

런데 여타 시위대의 봉쇄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제 몇몇 교차로의 봉쇄가 풀린다면, 회의장

을 빠져 나오는 대표단은 간단히 왼쪽 대신 오른쪽 길을 택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 별 무

리 없이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꼭 그런 식으로 사태는 진행되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연좌한 채 대담하지만 무의미하게 지키고 있는 동안 일군의 시위대가 일어

서서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것이야말로 이 새로운 행동 네트워크의 강점과 약점을

나타내주는 적절한 비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네트를 지배하고 있는 소통의 문화가 종합보

다는 스피드와 양적인 면에서 더 강점을 갖는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현수막을 든

수만의 사람들을 한 장소에 모을 수는 있었지만, 바리케이드에 도달하기 전이든 떠난 후이

든 이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으로 요구하는 바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동의를 이끌어내기에는

전혀 적당치 않았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각각의 시위 후 기묘한 종류의 우려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거

였나? 이 다음은 언제지? 그것도 큼지막하고 괜찮게 될까? 이런 기세를 유지하기 위한 연속

적인 시위 문화가 급속히 확립되고 있다.

내 전자우편함은 틀림없이 “다음 차례의 시애틀”이 될 것이라는 행동에 참여해달라는 요

청으로 온통 어지럽혀지고 있다. 6월 4일 미주기구(OAS) 회의를 “무산”시키기 위한 윈저와

디트로이트의 행동이 있었고, 일주일 후에는 세계 석유회의에 맞춘 캘거리 행동이, 7월 필

라델피아와 8월 로스엔젤레스에서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전당대회를 겨냥한 행동이, 9월 11

일 멜버른에서는 세계경제포럼 아태지역 경제정상회의에 맞춘 행동이, 바로 뒤이어 9월 26

일에는 프라하에서 IMF 반대 시위가, 그리고 2001년 4월에는 퀘벡에서 미주 정상회의를 겨

냥한 행동이 있을 것이다. 워싱턴 시위를 조직하는 이메일 리스트에 누군가 이런 메시지를

올렸다.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우리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 다음, 프라하에서 만납시

다!”

그러나 광신적인 추종자 팬이나 되는 것처럼 무역 관료들을 따라 다니는 회의추적자들의

운동같은 이런 것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인가?

몇 가지 이유에서 이런 기대는 위험하다. 이런 시위들에 너무 많은 기대치를 부여하고 있

다. 예를 들어 워싱턴 시위의 조직자들은 300억 달러에 달하는 두 초국적기구의 회의를 문

자 그대로 “무산”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동시에 그들은 주식의 환상에 젖어있는 대중에게 신

자유주의 경제의 오류에 관한 정교한 아이디어들을 전달하려 했다. 그들은 결코 그러지 못

했다. 그 어떤 시위에서도 가능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더 힘들어질 뿐일 것이다.

시애틀의 직접행동 전술은 경찰을 경악시켰기 때문에 먹혀들었지만 이것은 다시 되풀이되

지는 않을 것이다. 경찰은 이제 모든 이메일 리스트를 점검하고 있다. 로스엔젤레스는 활동

가 떼거리로부터 시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보안 장비와 인력 비용으로 4백만 달러를 요청

해놓고 있다.

시위들 사이를 잇는 운동을 강화시킬 안정적인 정치 구조를 건설하기 위한 시도로 대내허

는 워싱턴에 “항구적 집결센터”를 만들기 위한 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한편 국제지구화포럼

(IFG)은 연말까지 200페이지 정도의 정책보고서를 만들기 위한 회합을 3월부터 갖고 있다.

IFG의 이사인 제리 맨더는 이것은 선언이 아니라 일련의 원칙과 우선 사항에 관한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지구적 경제에 대한 “새로운 구조물을 개념짓는” 초기 시도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리버사이드 교회의 회의 조직자들처럼 이러한 계획은 어려운 전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많은 활동가들이 이제는 자리에 앉아서 능동적인 의제를 논의하기 시작해야할 때라

는데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의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할 것이며, 누가 결정을 내릴 것

인가?

이런 질문들은 5월 말 수면위로 떠올랐다. 체코의 바츨라우 하벨 대통령이 세계은행의 9

월 26일-28일 프라하 회의를 파열시킬 계획을 짜고 있는 시위대와 세계은행의 제임스 울펜

손 총재간의 “중재”를 맡겠다고 밝혔던 것이다.

시위대 사이에서 프라하 성의 협상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그 어떤 합의도 아직 없었다.

좀 더 정확하게는 그런 결정을 내릴만한 절차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활동가 대표로 받

아들여질 만한 사람을 뽑는 기제도 없으며(인터넷 투표를 제안하는 이들도 있었다) 참여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제시해줄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는데 대한 동의도 가능하지 않았다.

만약 하벨이 ‘주빌리 2000’이나 ’50년으로 충분하다’같은 채무와 구조조정을 다루는 특정

한 그룹들과 접촉했었다면, 그 제안은 곧 바로 처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마치 하나

의 단일한 단위가 존재하는 것처럼 전체 운동을 상대했기 때문에 시위조직자들은 수 주에

걸친 내부 논쟁에 휩싸이게 된 것이며, 이 문제는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부분적으로 문제는 구조적인 것이다. 기층 조직화에 상당한 힘을 쏟아 온 많은 무정부주

의자들(이들은 또한 여러 기존 좌파들보다 먼저 온라인에 진입했다)에게 있어서 직접 민주

주의나 투명성, 공동체 자결 등은 어떤 고결한 정치적 목표가 아니라 이들의 조직 자체를

관통하고 있는 근본적 신념인 것이다.

하지만 많은 핵심적인 NGO들은 민주주의에 관한 무정부주의자들의 견해를 이론적으로는

공유할 지 모르지만 사실상 전통적인 위계 구조로 조직화되어 있다. 이들을 이끌어 가는 것

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들과 집행이사회이며, 회원들은 돈을 보내고 곁에서 환호할 뿐이다.

그렇다면 무정부주의자들로 가득 찬 운동으로부터 어떻게 일관성을 추출해 낼 것인가? 지

금까지 이들의 전술적인 최대 강점은 모기떼와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인터넷 그 자체에 대해서는 선험적 구조틀을 부과하지 않고 거기에 존재하는 구조

들을 능숙하게 헤쳐나가는 것을 통해 일관성을 추출하려들지도 모른다. 아마 필요한 것은

단일한 정치정당이 아니라 친화 그룹들 간의 더 효율적인 연결일 것이다. 또한 중앙집중화

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급진적인 탈중심화가 필요할 것이다.

전망을 결여하고 있다고 시위대를 비판할 때, 그들이 진실로 말하고 있는 것은 전체를 관

통하는 혁명적 철학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맑스주의나 민주 사회주의, 혹은 근본적인 생태

주의나 사회적 무정부주의 같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다.

틀림없는 사실이며,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크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현재 거리의 반기

업 활동가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이들을 자신들의 특정한 목적을 위해 동원하고 싶어 혈

안이 되어있는 장래의 지도자들이다.

한편에는 시애틀과 워싱턴에서 에너지를 분출하기 시작한 모든 것을 기꺼이 자신들의 “의

미의 정치”라는 틀 속으로 집어넣고 싶어하는 마이클 러너나 리버사이드 교회 회의를 추진

한 세력이 있다. 반대편에는 오리건주 유진의 존 쎄잔이 있다. “상처를 어루만지자”는 러너

의 요청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폭동과 기물 파괴야말로 산업화의 붕괴와 “무정부주의적

원시주의”-농경 이전의 사냥과 채집의 유토피아-로의 복귀를 향한 첫 단계라고 생각하는 것

이다. 이 양편 사이에 다른 전망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머레이 부크친의 원칙과 그

의 사회생태주의 이론에서, 혁명이 바로 내일 시작할 것이라 믿는 여러 맑스주의 분파까지,

그리고 [애드버스터스]의 편집장인 칼리 라슨의 추종자들처럼 “문화 포화”를 통한 탈색된

혁명이라는 생각을 가진 이들도 있다. 또한 몇몇 노조 지도자들의 경우처럼 상상력이 결여

된 실용주의도 있다. 이들은 시애틀 이전에는 기존의 무역 협정에 기꺼이 사회적 조항을 덧

붙임으로써 사태를 끝낼 준비가 되어있던 사람들이었다.

앞으로야 어쨌든 간에 지금까지는 이런 모든 의제들을 뿌리쳤던 것이 이 젊은 운동이 갖

는 신뢰성이다. 또한 다음 단계로 저항을 가져가기 위해, 납득할 만큼 민주적인 대표 절차

를 이끌어낼 수 있게끔 합의를 기피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의견을 보태는 선언문을

거부한 것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이 운동의 진정한 과제는 전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빨리 어느 한 전망을 취하기 위해 서두르는데 대한 저항일 것이다.

만약 이 운동이 전망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비껴갈 수 있다면, 단기적인 선전에 관한 몇

가지 문제가 돌출할 것이다. 연속적인 시위를 통해 몇몇 사람들은 떨어져 나갈 것이다. 거

리의 교차로 봉쇄는 각기 자율성을 선언할 것이다. 그리고 물론, 젊은 활동가들은 여전히

양처럼 분장을 할 것이다. 어쩌면 꽤나 종종 실제 양가죽을 뒤집어 쓸 지도 모른다. 그리고

[뉴욕 타임스]의 의견과 사설 페이지에 조롱거리로 실릴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말인가? 이미 이 탈중심화되고 다중적인 일련의 운동은 세계적으

로 한 세대의 활동가들을 교육시키고 급진화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 누구의 열 개 항

계획에 찬동하게 되기 전에, 중심부와 주변부의 이 혼란스런 네트워크로부터 뭔가 새롭고,

전적으로 독창적인 어떤 것이 나타나는 것이 가능할 지 지켜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네이션 연구소 연구기금의 지원을 받은 책인 {No Logo: Taking Aim at

the Brand Bullies}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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