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위급한 때 대회유회라니…

“불참·중도이탈자 명단 공개하라”

분노·지탄 빗발쳐…안일한 준비와 조직 지적도

“불참한 대의원과 서명만 하고 가버린 대의원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

지난 7월12일, 의장의 유회선언 뒤 술렁거리는 대회장 입구에서 가장 많이 터져나온 이야기다. 보이지 않는 대의원에 대한 불신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날 저녁 민주노총 홈페이지 ‘열린마당’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당신들이 정말 민주노조를 하겠다는 사람들인지 의심스럽다…호텔롯데에서 우리의 조합원들이 어떻게 깡패 경찰새끼들에게 폭행을 당했는지 보고도 대회장을 빠져나갈 생각이 들더냐”(조직), “대회에 불참한 동지들 중에 투쟁을 진정으로 조직하고 있지 않은 동지들은 반성하는 입장을 표명하라”(저혈압), “대회가 성원 미달로 유회된다는 것은 민주노총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금속조합원), “끝없는 배신감을 느끼지만 한편으론 이완될 대로 이완된 우리 민주노조운동진영이 새롭게 탈바꿈 할 수 있는 계기라고도 생각이 든다…목숨걸고 민주노조를 지킨 열사를 기억하며 오늘의 투쟁에도 다시 한번 목숨을 걸고 싸워보자”(분노).

공공연맹의 한 대의원은 의장이 유회를 선언하자 허탈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중요한 시기에 사람이 모자라서 안건을 하나도 처리 못했다는 사실을 정부나 사용자들이 어떻게 보겠는가. 힘을 모아도 안될 판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서울지역 한 인쇄노조 조합원은 “엄중한 시기에 중요한 투쟁전술을 논의하고 결의해야 할 회의를 무산시킨 것에 대해 대의원들은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현장에서는 해당 대의원을 소환해 엄중 추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구에서 올라온 대의원은 “당면투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반기 평가, 하반기투쟁 등이 안건으로 올라와 있어 성원이 됐다는 게 이상했다”며 이번 대회는 총력투쟁을 결의하는 장으로 소집했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 다른 대의원은 “대의원대회는 1년에 두세번 하는 큰 행사인만큼 안건이 방대하다면 지도부가 권역·지역별로 순회하며 안건에 대한 논의를 모으고 참가를 독려해야 하는데 지도부가 너무 형식적이고 안일하게 준비했다”고 지적했다.

유덕상 부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점은 총연맹에서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 뒤 “유회 뒤에 보니 사회보험과 호텔롯데노조 동지들의 실망이 매우 크다”며 “이번 유회를 거울삼아 하루빨리 대의원대회를 다시 열어 하반기투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으론 대회 유회사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98년 이후 이번까지 모두 5번의 대의원대회가 정족수 미달로 회의도중 중단됐다. 98년 11월에는 성원이 되지 않아 개회 자체가 무산된 적도 있다. 그나마 참가율 98%, 74%를 기록한 대의원대회는 ‘선거’가 있던 때다. 정족수 채우기는 중앙위원회 등 각급회의에서 늘 고민거리고, 산별연맹들도 최근 한 두번씩은 ‘정족수 미달’이라는 열병을 앓은 경험이 있다.

이수호 사무총장은 “근본적인 문제도 있지만, 대의원들의 성실성과 의무감에만 의존해 온 것이 한계에 이른 것 같고, 예전처럼 대의원대회를 여는 것 자체가 투쟁이라는 문제의식도 약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대의원들이 실제 자기 생각을 토론하고 결정하고, 또 책임있게 집행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총연맹의 한 간부는 “선거나 중요한 관심사가 상정된 경우에는 참석률이 높은 것을 보면 구조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며 구조 자체의 문제보다는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민주노총의 조직체계상 총연맹에서 단위노조를 직접 조직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연맹에서도 원하지도 않는다”며 “그런 점에서 물론 중앙의 책임도 있지만, 대의원 조직의 1차적 책임은 연맹에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소속그룹 사업장의 파업집회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한 대의원은 “참석하지 못했으니 할말은 없지만, 민주노총의 모든 회의가 정시에 시작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매번 한 두시간은 대책 없이 기다려야 한다”며 “회의가 정시에만 시작해도 많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무금융노련의 고영창 사무처장은 “총연맹이나 연맹의 지도력이 부족해 현안의 중요성을 알려내지 못하고, 중앙사업에 대한 결합도도 떨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롯데호텔의 일은 롯데호텔만의 일로, 사회보험노조의 일은 사회보험노조만의 일로 인식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며 기업별체제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황미 leehm@kct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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