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진단> 남북정상회담 이후
(1) 한반도 주변정세변화와 민족통일 전망
(2) 남북경제협력과 노동자의 삶
(3) 노동운동의 대응방향
경협, 자본지배력 키울 것
독일경험 반면교사로…’노동해방’에 기여하는 통일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성격이 변하고 있다.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노동진영이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향후 정세의 지형도가 달라질 예정이다. 정상회담 이전의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한 국제정세를 ‘적대적 대결’ 국면이라고 한다면, 정상회담 이후 질서는 ‘적대적 공존’ 국면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질적으로, 구조적으로 변화된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두루 아는 것처럼 ‘적대적 대결’ 국면의 국제정세는 남과 북이 각각 그 후견인을 등에 업고 대리전을 치루는 것이었고, 이 상황에서 민족문제는 곧바로 국제문제였다. 반면 ‘적대적 공존’ 국면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간의 오래된 대결과 모순 그 자체가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확정되지 않은 한반도 주변 힘관계의 틈속에서 가능했던 정상회담으로 남과 북은 어느 정도의 운신의 공간을 확보한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아주 오래전 고 장준하선생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모든 통일은 선(善)인가. 그렇다.” 그러나 과연 ‘아직도’ 그런지 다시 고쳐 묻자. 첫째 적대적 공존국면에서, 둘째 노동자의 입장에서 ‘모든 통일은 선인가?’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크고 넓게 긴 안목에서 본다면 통일은 그 자체가 목적가치는 아니다. 노동자에게 지고의 목적가치는 노동의 해방, 나아가 인간의 해방이며, 통일 역시 여기에 견준다면 차선일 뿐이다. 따라서 운동의 목표는 통일이 노동의 해방, 인간의 해방에 보탬이 되고 기여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게끔 힘을 가하는 것이 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에 따라 남북간 경제협력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경협의 의미는 대단히 복합적이면서 또 다차원적이다.
첫째 남북 지배엘리트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정치협상보다는 서로가 필요하고 또 합의가능한 부분인 경제부터 풀어보자는 것으로, 그 자체로 실용주의적이며 기능주의적인 접근이다. 즉 북이 필요한 자본과 남이 필요한 대내외 정치적 명분의 교환이라는 측면이다.
둘째, 시장의 관점이다. 특정 재벌이 독점하고 있는 금강산관광사업에서 보듯 남북경협은 아무나 원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시장성과 수익성의 관점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90년대 이후 남한 사회를 주름잡는 신자유주의적 시장물신주의 논리의 연장으로 파악된다. ‘시장앞에 장사 없다’는 식의 남한 자본주의의 오만과 편견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말이다. 같은 민족이라서라기 보다 북한의 우수한 노동력에 더 관심이 많은 남한 자본의 입장이 대부분 이러하다.
셋째, 이른바 ‘햇볕정책’의 그늘에 도사리고 있는 ‘음침한’ 가설이다. 햇볕이 뜨거워 지다보면 ‘언젠가는’ 다 벗고 굴복할 것이라는 숨겨진 체제대결의 논리다. 어떻게 보면 이는 남의 대북전략이 이전 시기의 정면 대결에서 장기적 우회 침식전략으로 선회한 결과이기도 하다. 넷째, 미국의 소위 대북한 포용전략이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남의 햇볕정책은 이것의 종속변수에 지나지 않는다. 유명한 ‘페리보고서’가 여실히 보여주듯, 핵과 미사일만 포기한다면 미국으로서는 북미 국교정상화와 무역관계 회복 정도는 사실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마침내 저 거대한 제국 소련마저 붕괴시킨 것은 다름 아닌 돈의 힘이 아니던가.
문제는 모든 통일이 아니라, ‘어떤’ 통일인가에 있다. 자주 언급되는 독일의 사례를 볼 때, 독일 통일의 최대의 패자는 노동자, 그 중 구동독의 노동자들이었다. 분명 그들은 정치적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그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내놓아야만 했다. 그래서 10년, 생계 자체가 막연한 자들에게 정치적 자유는 사치에 불과했고, 그나마 그 자유를 누릴 여유도 없게 되었다. 반면교사라고 하는가. 어떤 경우에도 독일의 경험이 한반도에서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적대적 공존 국면은 설사 여전히 불완전할지라도, 그 자체로 노동진영에게 유익하다. 되돌려져서는 안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저 ‘적대성’의 소멸에까지 가기에는 너무나 먼길이다. 그래서 노동진영의 ‘국제전략’이 어느 때보다 긴요한 시점이다.
이해영(한신대교수, 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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