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현장
⑦ ‘특1급’ 호텔3사는 파업중
스위스그랜드 투쟁현장
“지난 2년 쌓일대로 쌓였다” 유례없는 장기전
회사쪽 강경탄압에 체포영장 ‘봇물’…”올해는 유니온샵 꼭 쟁취”
서울 홍은동 북악산 자락에 자리한 특1급 스위스그랜드호텔. 호텔 입구에는 깔끔한 제복차람의 도어맨 대신 수염이 덥수룩한 노동자 대여섯명이 모여 손뼉을 치며 노동가요를 부르고 있다.
지난 6월29일 새벽 호텔롯데에 경찰력이 투입된 뒤 매일이다시피 열리는 뙤약볕 집회로 이들의 얼굴은 거뭇거뭇하고, 팔뚝은 여느 제조업 노동자 못잖게 까맣게 탔다. 이들의 머리 위에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봉사료 잉여금 쟁취’ 등 노조의 투쟁요구가 벽에 붙어 있으며, 잘 손질된 정원수 사이로는 ‘단결’, ‘투쟁’이라 적힌 깃발이 날리고 있다. 스위스그랜드호텔노조(위원장 이성종) 조합원들이 파업에 들어간지 7월15일 현재 36일째다. 88년에 노조가 설립된 이래 이같은 장기투쟁은 처음 있는 일이다.
회사쪽의 고소고발로 체포영장 떨어진 사람이 10명에 이른다. 이는 6월28일까지 ‘업무방해’를 했다는 이유고, 이날 이후 업무방해 건은 회사쪽에서 별도로 준비하고 있어 영장발부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 역시 과거에 없던 일이다.
노조의 핵심적인 요구는 ‘유니온샵 쟁취’다. 이성종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IMF 이후 조합원이 1백여명이나 줄어든 반면 계약직 등 비정규직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면서 “이들까지 노조 조합원으로 포괄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대등한 노사관계란 기대할 수 없다는 절체절명의 위기감에 쌓여있다”고 밝혔다. 회사(회장 이우영)쪽은 몇 차례 열린 교섭 자리에서 이같은 노조요구에 대해 “회장의 경영철학과 맞지 않다”며 “절대 안된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회사쪽은 노조의 교섭 요청을 여섯 차례 외면한 지금까지 세 차례 참석했다. 노조는 회사쪽이 초기교섭에 불참으로 일관한 이유를 “민주노총과 민주관광연맹의 공동투쟁을 교란시키고 다른 호텔의 진행상황을 지켜보려는 속셈”이었다고 보고 있다. 이회장은 교섭석상에서 “다른 데 보고 하자”는 말을 여러 차례 꺼내 교섭 진전을 가로막더니 지금은 “회사쪽이 최종안을 내더라도 외부세력과 공동으로 움직이는 노조가 스스로 타결할 리 없다”면서 극단적인 노조혐오증세를 보이고 있다.
노조는 5월8일부터 천막농성에 들어간 뒤 6월8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이틀 뒤인 10일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 뒤 6월16일 또 한 차례 교섭이 열렸으나 “불법파업이니 파업부터 풀라”는 회사쪽의 요구로 교섭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뒤이은 6월20일, 회사쪽은 노조 주요간부들을 업무방해로 고소고발했다. 7월18일 오전 보름만에 다시 열린 교섭도 별다른 내용 없이 1시간만에 끝나고 말았다.
한편 파업 효과를 높이기 위해 반드시 막아야 할 게 회사쪽의 불법적인 대체근로다. 회사쪽은 롯데·힐튼과 함께 지난 6월1일부터 ‘산학실습’을 진행했다. 각 대학 관광학과 재학생들이 산학실습을 나오는 것은 해마다 있어온 일이지만 회사쪽은 예년보다 한 달 앞당겨 이를 실시한 것이다. 회사쪽은 이들을 주요업무에 투입시켰고, 아르바이트를 통해 노조의 파업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노조쪽은 이에 따라 각 대학 학과장에 편지를 보내 “학생들이 불법 대체근로에 악용되고 있으니 즉시 철수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학생들과 아르바이트생들에게도 이같은 상황을 설명하고 “취업한 선배들의 고충과 후배들의 미래를 위한 것”임을 알렸다. 조합원들은 7월중순 회사쪽의 대체근로를 막느라 돌아가며 밤을 새워야 했다. 노동부는 이와 관련해 지난 6월25일 “불법대체근로가 명확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노조의 고소고발이 들어간지 15일만이다. 회사쪽의 업무방해 고소고발에 대해서는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대답하더니 말이다. 노조의 항의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업무가 산적해 있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노조쪽은 7월14일 고소고발된 간부 가운데 비교적 사안이 가볍다고 여겨지는 5명을 경찰에 출두시켰으나 이 가운데 김성래 부위원장이 영장실질심사조차 없이 판사직권으로 구속됐다. 경찰은 7월17일 오후 2시30분께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윤재성 부위원장, 한만수 대외협력부장, 김동국 쟁의부장을 긴급체포해 연행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성종 위원장은 곧바로 명동성당으로 들어와 연행을 모면했다.
현재 호텔업계는 IMF이후로도 환차익을 톡톡히 올려 경영상태가 대부분 좋았으며 그 결과 대부분의 호텔이 새 건물을 짓기에 바쁘다고 한다. 스위스그랜드도 본관 아래쪽에 국제회의 장소로 쓸 건물을 세우느라 포크레인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일은 끝없이 늘고 있지만 회사쪽은 계약직, 파트타이머로 비정규직 채용만 늘릴 뿐이다. 2년간 전체직원수는 6백80여명에서 2000년 5월말 현재 5백32명으로 줄었으며, 4백10명이던 조합원도 3백여명으로 줄었다. 파업을 해도 객실이 돌아갈 정도니 유니온샵 쟁취여부는 노조가 살아남느냐 사라지느냐를 좌우할 전망이다.
“2년 동안 회사쪽에 쌓일 대로 쌓였다. 노조가 약화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올해 유니온샵을 얻지 못하면 내년은 더욱 힘들어 질 것이다.” 파업에 참가한 한 조합원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정경은 joungke@kct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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