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극물인 포름알데히드를 한강물에 흘려보내 국민을 분노시킨 주한미군이 20일 서울시쪽에 사과를 하려다 실패했다. 5시간 넘게 협의를 했으나 얼떨결에 사과를 받게 된 서울시쪽에서 난색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시로서는 왜 자신이 사과를 받아야 하는 지 모르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날 주한미군의 조처는 한국과 한국민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보여줬다. 미군은 대국민 사과가 아니라 고건 서울시장에게 사과문을 전달하려고 했다. 독극물 방류 사건의 피해자가 한강물을 여과해 먹는 서울 시민 뿐이라는 식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었다. 몰라도 한참 모르는 조처였다.

서울시쪽에서도 난감했다고 한다. 국민이 피해자이고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을 상대로 저질러진 일인데 사과를 덥썩 받았다가는 어떤 비난여론이 쏟아질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미군이 흘린 포름알데히드는 한강에 흘러들어 1천만 서울시민의 건강을 위협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에 그쳤을까. 나머지 지역의 주민들도 그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기지에서 생명권을 침해하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불안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과의 주체도 문제였다. 주한미군은 대니엘 페트로스키 미8군 사령관이 나서서 사과를 하려고 했다. 이는 주한미군이 이번 사건을 국가적 문제로 인식하고 않고 단위 부대의 잘못으로 돌리려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 한명의 범죄행위도 결국 주한미군의 문제로 환원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안이했다. 지난 96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주일미군 병사 3명이 여중생을 성추행한 일이 알려지고 난 뒤 클린턴 대통령은 일본 국민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한 일이 있다. 이번 사건은 이 나라 인구의 4분의 1이 직접적인 피해 대상일 수 있는 보다 심각한 범죄였다. 미군을 대표하는 사람이 나서야 했다.

전종휘 기자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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