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중앙일보 5월1일
´안티조선´에 대한 소신, 변함없다
21일 ´황석영 작가 ´안티조선´ 운동에 합류하나´ 기사를 작성하면서 수 차례 황씨와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음성 메시지´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4일에 그와의 전화통화가 이뤄졌습니다.
황씨는 자신의 입장과 관련해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자신이 기고를 하게 된 계기, 동인문학상 심사거부를 하게 된 사연과 조선일보에 대한 평소 생각을 털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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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조선 운동엔 동의, 방식은 비판
황씨는 먼저 안티조선 활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면서 “기고를 쓰는 것으로 내 역할은 끝났다”며 “젊은 후배들이 앞으로 나서야 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후배들은 자신의 기고를 보고 안티조선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 주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그는 더 이상의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글로 80년대 이후 사회 각계의 진보적인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끈 떨어진 연처럼 각계 약진´하는 모습에 뭔가 변화를 줄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물꼬´는 자신이 텄지만 실천에 옮기는 것은 후배들의 역할이라는 것이죠. 동인문학상 심사거부에 대해서는 조선일보가 앞으로 어떤 입장을 발표하더라도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당초 한겨레 기고문이 황씨의 ´안티조선´ 활동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저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그는 오히려 안티조선 운동에는 동의하지만, 운동의 방식에는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황씨는 안티조선 운동이 내부 권력화되어 있어, 진보진영 내부를 비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안티조선 운동이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이나 류근일 논설주간 등에게 정확한 타겟을 삼아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황씨는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때로는 격앙된 어조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먼저 조선일보와 주간조선에 인터뷰하게 된 계기를 물었습니다. 조선일보 기자와 처음으로 조우하게 된 것은 ´오래된 정원´ 출판기념회. 황씨는 당초 ´창작과비평사´ 관계자에게 기자간담회에 조선일보 기자를 부르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하기야 조선일보의 보도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던 그가 조선일보에 반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조선일보는 황씨가 남북한 공동으로 장길산을 출간하기로 계약하고, 계약금을 받았을 때 그를 간첩으로 몰아세우면서, ´공작금´을 회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이밖에도 그를 친북 인사 등으로 분류하면서 비판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죠.
“조선일보가 내 말을 왜곡했다”
그러나 황씨도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한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창작과비평사´ 영업관계자들이 “조선일보 독자들의 구매력이 타지보다 크고, 그렇기 때문에 기사가 나갈 수 있도록 조선일보 기자를 부르자”고 그를 설득했고, 그는 “글쓰는 문제와 책쓰는 문제는 별개라고 생각했다”고 생각해 조선일보 기자의 간담회 참석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황씨는 이후 조선일보에 기고는 안 하지만, 인터뷰와 광고를 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자간담회 이후 조선일보 김광일 기자가 심층취재를 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고, 주간조선과 조선일보의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 기사가 언제 보도되는 지는 몰랐다고 합니다. 황씨는 이 부분에서 조선일보가 의도를 가지지 않았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또 조선일보가 자신의 말을 왜곡해 “´5·18’이 전국화되지 못한 이유가 부마항쟁과 함께 거론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지만, 실제로 자신은 “부마항쟁이 있었기 때문에 5·18이 있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황씨는 이 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도 조선일보가 인터뷰 요청을 해와 서면으로 답변을 하면서 조선일보 내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더라도 절대 손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응했지만, 자신의 글이 껄끄러웠는지 결국 보도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조선일보에서 신경숙씨의 외딴방과 관련 문학동네에서 했던 대담 내용을 발췌해 사용할 수 없겠느냐고 해서 허락했다가 자신의 의도와 달리 ´노동문학이 싫다´고 제목이 나가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논란이 예상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조선일보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하면서도 그동안 조선일보의 인터뷰와 발췌의 요구에 응해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겨레 기고와 전화취재 내용과 같은 이유가 있었지만….
조선일보는 파시즘이다
어쨌든 황씨는 그동안 조선일보의 보도와 태도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바깥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가 기고를 쓰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조선일보가 보여준 남북정상회담 관련한 보수적인 보도태도와 동인문학상 문제였습니다.
그는 조선일보를 ´파시즘´에 비유했습니다. 황씨는 “조선일보는 진정한 보수우익 신문이 아니다. 보수진영 내부에서 보수를 비판할 수 있어야 진정한 보수다. 조선일보를 파시즘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말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관련 보도에서 조선일보가 보수우익과 냉전적인 사고를 확대·재생산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자신의 생각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같습니다.
황씨는 그러나 조선일보가 문화면을 통해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한다고 전했습니다. 자신이 동인문학상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도 ´파시즘´이 ´다양성´으로 포장돼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황씨는 이 대목에서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언론사의 경영권과 편집권을 독립하는 것이 언론개혁의 요체라는 말을 잊지 않더군요. 조선일보의 경우도 “임금테이블을 알고 있다. 설령 개혁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기자가 있어도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기 때문에 표출이 되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나름의 논리를 펴기도 했습니다.
언론개혁의 요체는 경영권과 편집권의 독립
동인문학상 심사 거부를 한 이유에 대해서는 한겨레 기고문 내용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조선일보 7월 14일자에 보도된 2차 심사결과 기사가 그의 감정을 크게 자극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는 이발소에 갔다가 조선일보를 보고 자신이 동인문학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마침 그가 본 기사는 동인문학상 2차 심사결과와 그 이유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황씨는 이 기사를 보고 더 이상 조선일보에 대해서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조선일보의 보수성이 정치·사회영역의 영역을 뛰어넘어 이제는 문화영역으로까지 확대돼, 동인문학상을 통해 문학계를 ´서열화´ ´권력화´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죠. 그는 평소에도 조선일보가 문화계 인사들에게 7∼8매에 50만원 가량의 원고료 등을 주면서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황씨는 “심사위원을 종신고용해서 ´줄세우기´를 하고도 안되니까 이제는 상금을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리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까지 들린다”고 얘기했습니다.
황씨는 심사위원들이 자신보다 문학계 후배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소설을 ´탈락´과 ´잔류´로 분류하고 전망이 없다는 등으로 함부로 평가할 수 있느냐”면서 대노했습니다. 그는 “동인문학상은 미국식 민주주의에 뿌리를 두고 4·19과 5·16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굳혀온 안티코뮤니즘을 표방하는 상이었다”면서 “자신에게 상을 주지도 않을 것이고, 줘도 받지도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 조선일보가 심사거부에 대해 어떤 입장을 발표해도 자신의 소신은 변함이 없다”면서도 “더 이상의 입장을 밝히지는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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