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대선 앞두고 전초전
「세계사회주의 웹사이트」 7/24
폴란드 대선이 10월 8일에 실시될 예정이다. 수많은 우익 민족주의자들과 유명인사들을
포함해, 현재까지 약 10여명의 사람들이 부푼 기대를 안고 입후보를 발표했다.
한 달 전, 폴란드 집권연정인 AWS(연대선거행동당)와 UW(자유연합)이 3년 6개월만에 결
별을 선언했다. 연정의 수장인 AWS의 예르치 부제크는 여전히 소수정부를 이끌고 있다.
연정의 해체는 AWS와 UW 간의 오랜 논쟁의 결과였다. UW는 부제크가 AWS 소속 의원들로
하여금 정부정책에 입각해 Sejm(폴란드 국회) 의정활동을 벌이도록 이끌고 있지 못하다고
비난했다. AWS 소속 의원들은 계속해서 정부가 관철시키려 했던 법제화를 막아서왔다. 사실
상 모두 폴란드 솔리다리노시치(연대노조운동)에서 연원한 약 30개의 극우 정당들의 동맹인
AWS 내에는 (유럽연합 가입 반대 세력과 찬성 세력을 포함해)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한 이해
관계들이 상충하고 있다.
폴란드 정부의 최대 목표는 2003년 유럽연함(EU) 가입을 위해 이에 맞는 조건을 충족하
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 방침은 끊임없이 대중적인 저항을 불러일으켰는데, 의료혜
택, 석탄 및 철강 산업, 그리고 농업 분야에서의 “개혁”이 빈곤과 실업을 악화시키는 것으
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항의로 인해 정부는 EU 가입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시한이
다가옴에 따라 엄청난 압박감을 받으면서도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지난 5월 말, UW 출신의 각료 다섯 명이 사임했고, 이는 연정 붕괴의 시초가 되
었다.
최근 AWS 소수 정부는 키를 쥐고 있는 예르치 부제크의 주도하에 폴란드에 유럽의 규준
을 도입하기 위해 고안된 약 180여개의 잔류 법안들을 올 말까지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신임 외무장관인 블라디스라프 바르토스제프스키는 부제크과 그의 전임자인 게르멕이 구상
한바 있는 “유럽 법 총위원회”를 구성할 생각이라고 발표했다. 이 특별위원회를 통해 필요
한 법안의 통과가 국회에서 재촉될 것이다. 이 때문에 부제크은 각각의 법안을 따로 처리하
는 것이 아니라 몇 개의 특별법을 단일 법안으로 묶어 원하는 법안 개정을 추진하는 소위
“옴니버스” 진행을 실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회복지의 극심한 삭감은 실업, 빈곤, 농촌사회로의 회기로 인해 이미 신음하고 있던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항의를 촉발시켰다. 이러한 분노는 AWS/UW 집권 연정에 대해 우선적인
초점이 맞춰졌다. 이전에 스탈린주의 집권당에서 연원한 민주좌파연합(SLD)은 정부의 위기
로부터 이득을 보고 있으며,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선에서 40% 이상의 지지율을
획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적어도 부제크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 때문이라도 최근 여론조사에서 70% 이상의 국민
적 지지를 받고 있는 SLD 소속의 현 대통령인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는 재선임될 좋
은 기회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통일폴란드노동자당(PVAP)에서 경력을 쌓은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예프스키는 1995년 아주
효과적인 미디어 선거 캠페인 덕분에 레흐 바웬사의 뒤를 이어 폴란드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그당시 자신을 “개혁”에 호의적인 “현대적”이고 “사회적으로 올바른”사람으로 부각시
켰다. 그는 재직 기간동안 나토와 EU 가입을 확실시 하기 위한 자신의 목표를 정력적으로
추진했다. 폴란드는 1999년 3월에 나토의 동맹국이 되었고 EU 가입 문제는 최근 몇 년간 폴
란드 정치의 최대 관심사였다.
SLD의 요란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크바시니예프스키의 이러한 주요 쟁점들에 대한 입장은
정부와 큰 차이가 없다.
집권중인 AWS 당대표이자 1996년 이 당의 창건자인 마리안 크르자클레우스키 또한 대선
에 출마할 예정이다. 민족주의적 카톨릭 세력을 향해 손짓을 하고 있는 그는 솔리다리노시
치 운동에서 정치 활동을 처음 시작했다. 1991년 바웬사의 뒤를 이어 대표에 취임한 이래
오늘날까지 오고 있다. 한달 전 정부의 위기가 고조 되었을 때 그가 부제크를 이어 연정의
수장을 맡게 될 것이라고 예측되었다. 그러나 최근 선거에서 그의 지지율은 단 5%에 불과하
다.
기업부문의 독립적으로 대표하는 안드레이 올레코프스키 또한 대선에 뛰어들 또다른 후
보이다. 그의 지지율은 10% 안팎이다. 대학에서 수련한 경제학자 올레코프스키는 이미 1970
년대에 해외에서의 경제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제네바에 있는
UNCTAD(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 다자간 무역 관계와 관련한 프로젝트를 포함해 일한 바 있
다.
1985년 올레코프스키는 워싱턴으로 건너가 세계은행과 일을 했다. 1987년 그는 다시 바
르샤바로 돌아와 폴란드 국립은행 총재의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세계은행과의 관계를 조종하
는데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89년부터 그는 국립은행의 부총재를 맡았고 이후 역대
정부에서 재정 및 외무 장관을 역임했으며, 1994년 부패 연루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언
제나 바웬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고 한때는 바웬사 자문단에서 일하기도 했다.
바웬사 또한 대선에 나갈것이라고 발표했지만 많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몇 년 전만 해도 폴란드 국민의 절대 다수가 EU 가입에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EU 가입의
준비과정이 가져온 사회적 결과는 이런 분위기를 변화시켰다. EU는 EU로부의 제한적인 재정
보조로는 거의 보상받지 못할 폴란드 국민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요구하고 있다. EU
가입으로 인해 수십만 명의 소농들이 몰락한 농업부문이 가장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
기껏해야 2백만 개의 상업 회사 중 3분이 1만이 서유럽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이다.
과거에 연정을 구성하며 정부에 있었던 폴란드 정당들은 언제나 EU로부터의 보조금을 기
대했었지만 쓸모없는 짓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EU는 폴란드의 EU 가입 시한이 (이미 몇 차
례 연기되었다) 여전히 더 지연될 필요가 있다는 신호를 훨씬 공개적으로 보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해서 민족주의 카드를 내밀고 있는 가장 극우적인 선동 정치가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카톨릭 교회의 고위 대표자들 뿐만 아니라 바웬사 또한 염증나는 연설
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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