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대미 무역협정이 촉발한 논쟁

[주간녹색좌파] 7/26 제니 프랜시스

하노이 – “주권은 침공해 오는 적기에 총을 겨누는 것이다. 무역자유화는 주권과 아무

관계가 없다.” 이것은 최근 하노이에서 있었던 경제 통합에 관한 회의에서 베트남 관료의

질문에 대한 캐나다인 “전문가”의 확신에 찬 답변이다.

미군기의 침공이 끝난지 25년, 워싱턴과의 외교관계가 재개된지 5년, 그리고 거의 4년에

걸친 험난한 협상 끝에, 지난 6월 13일 베트남과 미국은 두 나라 사이에 “정상적 무역 관

계”가 수립됐음을 알리는 무역협정에 서명했다.

이 역사적인 서명까지 이르는 길은 순탄과는 거리가 멀었다. 최대의 관심사는 베트남 공

산당(VCP) 내에 불확실성과 분란을 초래한 이슈로서 바로 베트남의 주권에 대한 위협이었

다.

베트남 정부의 통상 장관 부 콴이 서명 직후 베트남 언론에 내놓은 첫 논평은 이 문제가

얼마나 민감한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저는 이 협정이 평등과 호혜, 서로의 자주성과 주권

에 대한 존중이라는 원칙 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1975년 4월 30일 미국 대사와 잔류 미군 부대가 치욕스럽게 사이공을 떠난 후, 워싱턴의

시각에서 베트남은 즉시 “부랑”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미국 전쟁”이라 불렀던

전쟁에서 승리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베트남은 “범주 Z”에 속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 의미인 즉 미국의 원조 기관은 베트남에서 활동할 수 없으며, 그 어떤 인도주의적 원조

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국의 지지아래, 워싱턴은 다른 서방 국가들에게 베트남에

대한 경제 봉쇄에 동참할 것을 “설득”했다. 이 봉쇄는 역사상 가장 가혹한 무역 금지 조치

중의 하나였다.

도이 모이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에 걸친 심각한 결핍과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전쟁의

후유증 속에 베트남 공산당은 전례없는 비판에 직면했다. 1986년 12월 엄청난 압력 속에 베

트남 공산당 정치국의 “구전사”들은 일괄적으로 사퇴했다. “베트남의 고르바쵸프”, 응구옌

반 린이 이끄는 새 지도부는 봉쇄 조치가 야기한 경제 위기를 타개하는 방책으로 자유 시장

을 끌어안게 된다. 이 변화가 도이 모이(혁신)라 알려진 것이다.

도이 모이가 시작된 지 2년이 못되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그리고 국제 투자

가들이 돌아왔다. 1994년 2월 워싱턴은 무역 금지 조치를 해제했으며, 1997년 5월 대사가

교환되었다. 1997년 4월에 워싱턴은 하노이에 무역 협정 초안을 내밀었다.

2년에 걸친 복잡한 협상 후, 베트남 공산당의 서기장 레 카 퓨는 작년 6월 중순 정치국

연설을 통해 최종 협상안을 도출하기 위해서 양보할 때가 되었다며 다수파를 설득했다.

9월 초에는 최종 문안이 작성되어 그 달 말 뉴질랜드에서 있을 APEC 정상회담에서 판 반

카이 총리와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서명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은 아직

서명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11월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제시된 협정안을

검토한 후, 협정이 “불평등”하며, “여전히 손볼 곳이 남아 있다”고 공표했다.

서명에 앞서 몇 주 동안 협정 문서는 베트남어로 번역되어 정치국과 각 부처로 광범위하

게 회람되었다. 당 고위직의 한 인사에 따르면, “협정의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층이 중심

이 된 격렬한 항의가 전개되었으며, 이들은 베트남 공산당의 전 서기장이며 현재는 정치국

의 자문역을 맡고 있는 도 무오이에게 개입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변수는 그 당시 있었던 미 국무장관 매들린 울브라이트의 하노이 방문이었다.

울브라이트는 베트남이 다당제 정치를 도입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지만, 그것은 제대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양보

미-베트남 무역협정상의 핵심적인 양보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미국 기업

들의 서비스산업 진출 보장 확대, 미국 기업을 베트남 국내 기업과 차별없이 대우할 것, 미

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와 쿼터 제한을 축소시킬 것, 미국 지적 재산권의 보호 등이다. 이에

대한 대가로 미국은 베트남 수출품에 대한 관세를 약 40%에서 3%로 낮추게 된다. 세계은행

에 따르면 이것은 베트남의 수출이 첫 해에만 8억 달러가 증가하게 됨을 의미한다. 현재 수

준의 거의 두 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관료들은 협정에 서명하기를 망설이고 있다. “협정을 통해 무

역이 증진된다면 증진되는 것이다. 하지만 협정은 또한 개혁을 추동할 것이다. 이 점이 우

리가 망설이는 이유이다. 우리는 개혁의 단계를 결정해야 한다.” 한 관료의 말이다.

베트남 지도층은 이념적인 이유와 실용적인 이유, 두 가지 모두 때문에 미국과의 보다

진전된 무역 자유화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최소한 베트남 공산당 지도부의 일부

에게는 그렇다. 협정은 “자본주의에 좀 더 굴복하는 것이기도 하며, 또한 보다 그럴 듯하게

는 특권의 손실”을 뜻하는 것이다.

협정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반대하는 정부측 인사들은 가장 중요한 과제는 베트남

이 시장 경제에 합류하기 전에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한 이 지역의 경제 위기가 더 큰 경제 개방이 더 큰 불안정성을 불러온다는 것을 보여주

고 있다고 지적한다.

무역 자유화가 국영기업들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정부의 걱정거리 중 첫 머리를 차

지하고 있다. 1980년대 말 이래 국영기업의 수는 약 12,000개에서 약 5,300개로 감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영기업은 국내총생산의 약 40%와 수출의 40%를 차지하며, 160만 명을 고용

하고 있다.

사실 베트남의 1992년 헌법은 국영기업 부문이 “강화, 발전되어야 하며, 국가 경제에 있

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국영기업의 수를 5

년 내에 약 2,000개로 줄일 계획을 갖고 있으며, 그 결과 7만 5천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으로 추산한다. 세계은행의 산출에 따르면, 사라지는 일자리는 거의 60만 개에 이를 것으

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민영화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국영기업에 관한 베트남 법률은 미-베트남 무역협정

상의 요구조건들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현재, 법률적으로 미국 기업들의 민간 회사 소유

지분은 30%로 제한되고 있다. 협정 문안은 이렇게 되어 있다. “협정이 발효된 후 7년 내에

미국 기업들은 모든 생산물의 교역에 참여할 수 있는 100% 미국계 기업을 설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WTO 조항들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국영기업은 “경쟁력이 있든지”, 아니면 사라져야 하

는 것이다. 엄청난 실업을 뒤에 남긴 채 말이다. 베트남 공산당의 정치적, 경제적 관심사는

국영기업들에 특히 집중되어 있다. 정부는 민영화와 실업이 야기할 사회 불안정에 대해 사

실 정당한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에트 블록의 붕괴 이후, 그리고 커져만 가는 대중의 저항에 대한 대응책으로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정부에게 있어 정치적 우선 순위를 갖는 일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경

제 성장보다 더 선차성을 가질 지도 모른다. 그 한 예로, 쾅 닌 주 소재의 국영 석탄 광산

은 최근 5만 명 이상의 해고 광부들을 재고용하기로 결정했다. 4백만 톤의 석탄이 비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 주에는 다른 일자리가 별로 없으며, 모든 사람들이 폭력

과 사회 불안을 피하고 싶어한다.” 광산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영기업 부문에 대한 이러한

“지원”은 무역협정 하에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서비스 부문

베트남의 서비스 부문 역시 협정때문에 엄청난 변화에 직면해 있다. WTO의 무역과 서비

스에 관한 일반 협정(GATS)은 미-베트남 협정의 일부분으로 포함되어 있으며, 이에 따르면

서비스는 무역협정이 규정하는 교역가능한 “상품”으로 취급된다. 따라서 쌀, 설탕 등과 같

은 상품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금지되며, 미국 자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국내 서비스

제공자와 “같은 수준의 경기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노엄 촘스키가 고찰했다시피, “같은 수

준의 경기장을 지배하는데 가장 적합한” 미국 기업들이 그 수혜자가 될 것이다.

통신사업 부문은 서구가 장악하고 싶어하는 핵심 서비스 산업이다. [뉴욕 타임스]는 최

근의 한 기사에서 통신사업에 관한 새로운 WTO 협정이 갖고 있는 “미국적 가치”의 이점을

찬미했다. 그 협정이 “그에 서명한 70여개 국의 국경을 넘어 들어갈 수 있는 힘을 WTO에 부

여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통신사업망은 필수적인 사회 서비스로 취급된다. 그래서 그 국가 소유는 국

가 안보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최근의 한 법률은 특히 다음과 같이 공표하고

있다. “국내적, 국제적 정보망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은 주식회사(민영화)가 될 수 없다.”

미국의 거대 통신 회사들이 들어오게 되면 이 법은 심각한 부담이 될 것이며, 어쩌면 폐기

될 지도 모른다.

현재 베트남에선 문화, 예술, 영화 생산물을 수입하기 위해선 면허가 필요하다. 베트남

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겪게 되는 일로서 엄격한 세관 검색이 있다. 특히 정치적이거나,

에로틱한 문학작품은 엄격히 검색된다. 수입품에 대한 쿼터제, 그리고 그와 똑같은 효력을

갖는 면허제 등은 무역협정 하에서 상당 부분 금지된다.

협정에 따르면, 무역과 연계된 지적재산권 보호 조항(TRIPS)에 따라 “문화적 생산물”에

대한 소유는 “보호”된다. WTO 작업반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베트남은 “사회적, 경제적 발전”

과 “사회적 필요”라는 기반 위에서 이러한 조항들로부터 면제를 주장했다. 하지만 유럽연합

의 보고서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개별적 권리들에 대한 이러한 일국화는 TRIPS 체제 하에

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나이키의 베트남 지사 사장인 랠리트 몬테이로는 이번 협정 서명에 특히나 기뻐했다.

“다른 기업들처럼 나이키 역시 이번 협정 서명으로부터 않은 이점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이 협정으로 우리의 지적재산권은 보호될 것이며, 모조품과 가짜 문제도 대부분 해결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는 베트남 국내 시장에 더 잘 접근할 수 있으며, 지역

소매업자들에 대한 의존도 끝낼 수 있게 된다.”

만약 미국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모조품과 가짜”가 베트남에서 사라진

다면, 베트남 경제는 엄청난 피해를 볼 것이다.

맥도널드와 KFC는 아직 베트남에 진출하지 않고 있다. 거리에서 펜트하우스를 살 수도

없다. 아이들은 포케몬이나 겜보이 혹은 최신 디즈니 흥행영화를 알지도 못한 채 행복스럽

게 거리에서 뛰논다. 의류 패션, 음식, 소비재 등은 여전히 거의 대부분 베트남제이다. 얼

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자원

무역협정의 부정적인 면에 대한 우려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지만, 베트남 공산당 내에서

이 협정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양보해야할 필요성을 지적한다.

정전협정의 일부로서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은 배상금으로 32억 5천만 달러를 지불하겠

다고 약속했다. 전혀 지켜지지 못한 약속이었다. 그 당시에도 베트남인들은 복구비 지불을

대중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면 자기네 나라의 독립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가난한 나라들처럼 베트남 역시 개발을 위한 자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

의 나라들과는 다르게 네트남은 전쟁과 경제 봉쇄를 50년이나 견뎌 냈다.

많은 기부자들이 이 나라의 긴급한 요구를 인정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개발 원조는 친숙

한 조건이 붙어 들어온다. 1993년 베트남은 “파리 클럽”으로부터 약 30억 달러의 유무상 원

조를 제공받았다. 조건은 “자유 시장”에 경제를 “개방”한다는 것이다. 세계은행과 IMF, 그

리고 아시아개발은행이 낸 모든 최근 보고서는 이런 조건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 현재,

IMF와 세계은행은 하노이가 “좀 더 포괄적으로 개혁에 접근하는 것”에 동의할 때까지 5억

달러의 대부를 보류하고 있다.

[베트남 비즈니스 저널]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미-베트남 무역협정상의) 많은 부

분이 암시하는 것처럼, 협정은 좀 더 개방적이고, 자유화된 베트남 경제로의 임박한 전환을

나타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협정이 세계은행과 IMF가 요구하는 개혁과 폭넓게 일치하

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개발도상국의 시민들은 무역 자유화가 국가의 독립과 주권에 연계된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독립을 지키기 위해 수백만의 생명을 희생했던 베트남인들은

서구의 이야기에 유념하고 있으며, 외국의 지배라는 생각에 소름끼쳐 한다.

총이 여전히 그들의 머리를 겨누고 있는 한, 베트남 사람들과 그 지도자들은 “세계 경

제”의 지상명령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들이 힘들게 쟁취한 독립을 얼마 만큼 타협 대상으

로 내놓아야 할 것인 지 결정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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