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MIT의 저명한 경제사학자 찰스 P. 킨들버거(Charles P. Kindleberger)는 《대공황의 세계 1929~1939》(The World in Depression 1929~1939)를 출간했다. 이 책은 대공황을 폭넓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대공황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역사서로 평가받는다. 2022년,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회복하던 시기에 페리 멀링(Perry Mehrling, 1959~2026)은 킨들버거의 사상과 학문적 생애를 다룬 전기를 출간했다. 나는 영광스럽게도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뉴 스테이츠먼〉(New Statesman)에 기고할 기회를 얻었다.

멀링이 탁월하게 설명했듯이, 킨들버거는 하이먼 민스키(Hyman P. Minsky, 1919~1996)와 마찬가지로 화폐가 중요하다는 명백한 사실을 확고하게 믿었다. 그리고 화폐의 중요성은 개별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세계 자본주의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화폐는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멀링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킨들버거가 단순히 국제금융, 국제수지와 통화, 금본위제와 브레턴우즈 체제를 분석하는 학자에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킨들버거는 그보다 훨씬 흥미로운 사상가였다. 그는 화폐와 은행업이 본질적으로 국경을 초월하고 세계적인 성격을 지니며, 제국과 국민국가의 권력뿐 아니라 민간 부문의 복잡하게 얽힌 대차대조표를 기반으로 작동한다고 이해한 이론가였다.

멀링의 통찰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화폐를 국가 간 관계의 관점에서 이해할 때 방법론적 국가주의(methodological nationalism)의 함정에 빠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방법론적 국가주의는 국민국가를 분석의 기본 단위로 설정하고, 마치 섬과 섬을 연결하듯 개별 국가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접근법이다. 그러나 실제로 세계의 화폐는 국경과 관계없이 수많은 경제 주체의 대차대조표를 넘나들며 유통된다. 소유권과 회계 처리, 통제 권한 역시 세계 여러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따라서 세계 GDP에서 각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같은 국민경제의 총량 지표를 국제금융의 흐름과 비교하는 아래와 같은 차트를 만들어 달러의 세계적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측정하려 한다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를 비교하는 셈이다. 이는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출처: 옵스트펠드와 저우(Obstfeld and Zhou)

물론 과일 샐러드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서로 다른 대상을 비교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다만 두 대상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과 그러한 차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신현송(Hyun Song Shin)은 이 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시각화한 자료를 탁월한 발표 자료에서 제시했다. 국가 간 경제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국제경제학은 세계경제를 각각의 섬으로 이루어진 구조로 바라본다. 반면 킨들버거와 멀링은 달러 체제를 국경을 초월하는 세계적 관점에서 이해하며, 세계경제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네트워크와 행렬 구조로 파악한다.

멀링이 지적했듯이, 킨들버거가 학계에 미친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타깝게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킨들버거가 은퇴한 뒤 MIT에서 그의 자리를 이어받은 인물이 루디거 돈부시(Rudiger Dornbusch)였다는 점이다. 돈부시는 당대 가장 저명한 국제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그는 학계 안팎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상가였지만, 국제거시경제학자로서 세계경제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관점, 즉 세계를 개별 국가라는 섬들의 집합으로 이해하는 관점은 킨들버거의 시각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멀링은 자신의 책에서 정교하고 흥미로운 지성사 연구와 개념의 역사를 결합했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통찰은 대단히 크다. 멀링에 따르면, 킨들버거가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 화폐를 분석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가르친 미국의 통화경제학자 세대가 독립적인 미국의 국가 통화체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이 하나의 통합된 국가 금융체제를 갖추게 된 것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였다. 더욱이 미국의 국가 금융체제는 국제적 요인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충격은 연방준비제도의 감독 아래 미국의 금융체제를 하나로 통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자체도 불과 1913년에 설립되었다.

요컨대 미국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세계 금융 네트워크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동했다. 이러한 재편 과정에서 미국은 통합된 국가 금융체제를 형성했지만, 그 체제 자체도 세계 금융질서의 전면적인 재편과 맞물려 탄생한 산물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신용이 어떻게 창출되는지 이해하고 싶다면, 저축하는 가계와 돈을 빌리는 가계가 등장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우화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 현대 금융체제를 이해하려면 국제결제은행(BIS) 연구진이 최근 작성한 이와 같은 도표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달러가 세계적인 통화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기반이 되는 시장 중심의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다. 달러 네트워크가 얼마나 복잡하고 광범위하게 뻗어 있는지 이해하고 싶다면 BIS가 작성한 다음 도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도표는 달러 네트워크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BIS의 이 보고서에서 상당히 긴 부분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보고서는 달러 체제가 계속해서 역동성을 유지하는 원동력을 매우 명확하게 설명할 뿐 아니라, 킨들버거와 멀링이 바라본 세계의 모습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금융세계는 킨들버거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세계와는 크게 달라졌다. 그러나 킨들버거가 국제금융을 개별 국가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국경을 초월하는 세계적 체계로 이해했다는 점에서, 그의 관점은 오늘날의 금융세계를 분석하는 데 매우 적합하다. 멀링이 주장하듯이, 이는 화폐가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촉수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는 킨들버거의 오랜 주장이 옳았음을 뒤늦게 입증하는 사례다.

킨들버거는 최근 등장한 새로운 세대의 시장 중심 금융을 분석할 만큼 오래 살지는 못했다. 그러나 1980년대만 해도 그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MIT에서 수많은 거시경제학자를 가르쳤는데, 그중에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연방준비제도 의장으로 명성을 떨친 벤 버냉키(Ben Bernanke)도 있었다.

젊은 경제학자였던 버냉키가 학계에서 널리 주목받는 계기가 된 최초의 논문은 1983년에 발표한 ‘대공황의 확산 과정에서 금융위기가 미친 비통화적 영향’(Non-Monetary Effects of the Financial Crisis in the Propagation of the Great Depression)이었다. 버냉키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논문을 킨들버거에게 보내 의견을 구했다. 놀랍게도 페리 멀링은 기록보관소에서 킨들버거가 보낸 답장을 찾아냈고, 이를 신경제사고연구소(INET)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 그리고 킨들버거의 답장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진다.

킨들버거가 말하고자 한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의 관점을 개념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페리 멀링의 탁월한 명석함과 섬세한 통찰력 덕분이었다. 편협한 기존의 통념에 맞서 ‘화폐의 관점’을 가장 앞장서서 옹호하는 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멀링의 독립적인 사고와 끈기, 용기, 그리고 자부심 덕분이었다. 그는 살아생전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한 인물로 남을 것이다.

[출처] Chartbook 478 Money and Empire – for Perry Mehrling
[번역] 이꽃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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