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헤어지면 살아 생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남북 적십자 회담의 합의에 따라 다음달초 북송되는 비전향 장기수들과 남녘에 남게 되는 장기수들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금의 순간들을 아쉬워하며 지리산으로 3박4일간의 ‘이별여행’을 떠났다. 처절한 동족상쟁의 비극이 스며 있는 이곳에 와서 떠나는 이와 보내는 이 모두의 가슴 속에 쌓여 있는 회한을 털어놓으며 새삼 민족분단의 아픔을 되새겨보기 위해서였다.
지난 28일 밤 9시 서울 명동성당 앞. 지리산으로 떠나는 버스 2대에 장기수 70여명이 몸을 나눠 실었다. 백발이 성성한 이들은 창밖을 바라보며 감회가 벅차 오르는 듯 아무 말이 없었다.
밤길을 달려 새벽녘에 먼저 들른 곳은 경남 하동. 이들은 이번 행사를 도와준 비전향 장기수 송환추진위원회가 마련한 집에서 하루를 묵고 29일 오후 지리산 자락인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여시골을 찾았다.
여시골에서는 2달 전 120여구의 유골이 발견돼 이것이 국군에게 사살된 빨치산의 것인지, 빨치산에 의해 살해된 양민의 것인지를 규명해달라고 시민단체들이 정부측에 요청한 바 있다. 여시골은 시천면 유평리·거림리 등과 더불어 빨치산들의 주요 이동경로였다.
북송 장기수들은 “수많은 생명이 스러져 간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고 싶어 이곳을 찾았다”며 “이번 송환이 우리 세대가 가기 전에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는 단초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해질 무렵 경남 하동의 한 농원으로 돌아와 농악·마당놀이 등을 가진 이들은 30일 오전 7시 지리산 노고단까지 산행길에 올랐다. 장기수들이 버스로 노고단 아래 성삼재 휴게소까지 이동한 것은 오후 1시.
지리산 국립공원관리공단측은 노령에다 오랜 수감생활로 인한 지병까지 겹쳐 고생하는 이들의 산행을 만류했지만 장기수들은 어쩌면 생애 최후가 될지도 모를 노고단 산행을 한결같이 고집했다.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에 의지하는 일부 장기수들은 관리공단측이 제공한 봉고차를 타고 산행에 나섰다.
설상가상으로 폭우까지 겹쳐 젊은이들에게도 힘든 산행길이었지만 이들은 눈빛만 주고 받으며 묵묵히 산을 올랐다. 민족의 아픔이 온몸에 느껴져 오는 데다 곧 다가올 이별의 슬픔까지 겹쳐서였다.
북으로 떠나는 윤용기씨(78)는 산행 중간중간 남쪽에 남는 임방규씨에게 젊은 날부터의 인생역정을 들려줬고 임씨는 윤씨의 육성은 녹음기에, 산행 장면은 비디오카메라에 일일이 담았다.
지난 1월 31살 연하의 약사와 결혼한 양희철씨(65)는 아내와 누나 등 가족을 두고 생사조차 모르는 형을 만나기 위해 북한으로 간다는 것이 내키지 않아 북송을 포기했다.
양씨는 그러나 “서울 관악구 봉천동 우리탕제원에서 수년간 고락을 같이 해 온 신인영씨(71)와 조창손씨(72)를 생각하면 늘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암 투병중인 신씨는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이 보고 싶어 북송을 희망했지만 31년간 옥바라지를 했던 어머니 고봉희씨(93)와의 생이별이 기다리고 있다.
조씨 역시 두 자녀와 두 동생, 형님 등을 만나기 위해 북송 의사를 밝혔지만 이들의 생사도 모른다.
이런 애달픈 사연과 한을 가슴에 담으며 이들은 지리산 노고단에 올랐다. 쏟아지는 비 속에서 남녘 산하를 마지막으로 둘러본 뒤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 윤씨는 “이제는 홀가분하게 북으로 향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김석 권재현 나영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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