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런 수련회가 다 있어?”

노동문화일꾼 여름캠프, ‘일상의 모든 것과 싸워라’

2박3일, 4백여 ‘동지’들은 한 줌의 짚을 거대한 ‘영산줄’로 만들어냈다. 전국의 노동문화 일꾼들은 8월28일 새벽 덕유산자락 위로 영산줄을 태워 올리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26일 밤 노동문화 일꾼들이 폭우를 맞으며 전국에서 덕유산으로 모였다. 빗속에서 진행된 입소식은 노동운동에 숨어있는 반노동자적 일상을 고발하는 짧은 연극 한편으로 노동문화일꾼 여름캠프의 주제를 표현했다. “여성동지에게 커피 심부름시키는 위원장, 부부싸움만 하면 아내를 두들겨 패는 활동가…”

캠프를 준비한 민주노총과 노동자문화정책정보센터(대표 신재걸)는 주제를 “일상의 모든 것과 싸워라”로 정했다. 우리 일상에 파고든 ‘반노동 친자본’의 뿌리를 없애는 일상투쟁이 시급하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캠프 참가자들은 해방마을과 저항마을로 나눠 각각 두레를 꾸렸다. 이튿날 아침 두레별로 주제를 담은 깃발을 야영천막 앞에 내걸고 두 마을이 모여 터다지기를 시작으로 영산줄다리기를 진행했다. 일년의 노동을 마무리하고 남은 짚으로 두 마을 사람들은 온종일 새끼 꼬는 고된 작업속에 단결의 참뜻을 새겼다. 풍물패의 쉼 없는 독려 속에 한나절만에 짚더미는 새끼를 거쳐 거대한 영산줄로 탄생했다. 저항마을은 해방마을의 새끼 도둑질을 막으려 온 몸으로 싸웠고, 해방마을은 마을 깃발을 뺏으러 온 저항마을 사람들과 몸싸움도 벌였다.

해가 지자 풍물패와 횃불을 치켜든 두 마을 ‘동지’들은 서로의 노동이 깃든 영산줄을 들고 집회장으로 모였다. 두 마을의 단결을 다지는 공연은 즉석에서 만들어졌다. 저항마을의 몸짓패는 부산의 일신기독병원지부 문화부장이, 해방마을의 몸짓패는 서울지역 ‘두더지’가 맡았다.

정해진 주제를 놓고 몸짓패, 풍물패, 영상패로 나눠 각 부문별로 나름의 고민을 토로하던 교육과 토론 중심의 행사였던 예년의 진행방식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2박3일 내내 영산줄다리기를 재현하는 고된 노동의 일상 속에서 단결의 소중함과 노동문화운동의 진로를 고민하도록 진행됐다. 무대와 객석도 없었다. 모두가 무대 위에 올라선 광대였다.

줄다리기의 승자는 암줄을 잡은 해방마을로 돌아갔지만 자신의 줄로 상대를 당겨 동화시키는 영산줄의 의미처럼 승자는 패자를 아우르고 패자는 승자에게 동화돼 하나가 됐다. 두 마을의 동지들은 남은 줄을 모두 모아 불덩이로 태워 올리며 강강술래로 밤을 지샜다.

민주노총과 노문센터가 교육과 토론을 중심에 둔 기존 수련회와 달리 함께 천막을 치고 같이 밥을 해 먹으며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하고 하나의 노동을 진행하면서 노동문화의 대중성 회복을 꾀한 이번 캠프의 진행방식은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처음 여름캠프에 참가한 부산지하철노조 정재훈씨(34)는 “여느 수련회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교육 받고 토론하는 게 아니라 새끼를 꼬는 힘든 노동을 통해 일상에서 고쳐야 할 점들을 찾아내는 자연스런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정호/ 부산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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