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실업자 죽이기

[레드페퍼] 9월 봅 홀만

정부는 노동을 찬미하며 실업자를 죽이고 있다. 그러나 일자리는 없으며, 이것은 개인적, 사회적 재앙을 알리는 처방일 뿐이라고 봅 홀만은 말한다.

노동당은 노동에 집착하고 있다. 유급 노동이야말로 개인에든, 사회에든 최선의 것이라는 ‘노동 윤리’를 주창하지만, 그것은 오직 국가 급부에 의지하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될 뿐이다. 정부의 프로그램은 젊은이들과 노인들, 환자와 장애인들에게 일자리 시장에 뛰어들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노동은 모두에게 최선일까?

나는 글라스고우 이스터하우스의 가난한 지역에 살고 있다. 거기서 나는 많은 저소득 여성들에게 그들의 경험에 관해 쓰도록({가난한 자들에 대한 믿음}) 격려했다. 그들은 아이들과 함께 집에 있고 싶어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족 부양과 가족의 화합은 일자리보다 더 중요했다. 이들 여성들 중 몇몇은 지역 주민들이 운영하는 우리의 이웃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주고 있는 실직 상태의 자원자들에 의지하고 있다. 그들이 베푸는 것은 숙련된 것이었으며, 임시적인 미화원일이나 경비 업무보다 더 사회에 값진 것이었다.

노동당은 노동을 빈곤에 대한 해결책으로 간주한다. 1999년 사회복지국과 재무부에서 나온 두 가지 공식 문서에서 고든 브라운 장관은 ‘노동은 빈곤 탈출의 최선의 경로’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은 항상 빈곤층을 가난에서 구해주는 것은 아니다. 2년동안 직업을 구한 끝에 한 친구가 일자리를 찾았다. 그의 임금은 1년에 6,550 파운드, 최저선이다. 저축할 수도, 이사할 수도 없으며, 여전히 가난하다. 허울좋은 노동계층 가족 과세표에 따르면 부모 한사람이 정규직으로 취업하고 있는 가구는 주당 207 파운드의 수입을 갖는다. 그러나, 런던대학에서 수행한 상세한 가계 연구에 따르면, 이것은 어지간한 생활을 하기에도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을 일자리 시장으로 내모는데 혈안이 된 노동당의 집착은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수익을 내는데 필요한 노동력을 기업에 공급하기 위한 시도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즉 빈곤과 싸우려는 진정한 시도라기보다는 적당한 수준의 기술과 노동 의향을 가진 싼 노동력을 공급하는 것이다. 빈곤층은 일자리로 내몰리는 상황을 잘 버텨내지 못하고 있다. ‘뉴딜’ 계획의 끝자락에서 노동에 뛰어들게 된 젊은이들의 일자리 중에서 25%는 13주 이상 지속되지 못한다. 대부분의 일자리는 매우 낮은 임금만을 제공할 뿐이다. 내 주위에서도 네 명의 10대가 이 계획을 통해 일자리를 얻었다. 한 사람은 시간제 수작업을 하고 있으며, 나머지 세 사람은 실직 상태로 비참함 속에서 마약에 빠져들고 있다. 이들은 뉴딜의 패자들이다. 승자는 값싼 노동을 고용하기 위해 공적 자금을 얻고있는 사고용주들이다.

노동당의 노동 고무 정책에 있어서 동전의 또 다른 면은 실업자들에게 낙인을 찍고 단죄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로 복지 혜택을 줄이거나, 여전히 그 권리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관료적 압박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마도 노동당은 실업의 고통이 고용된 사람들로 하여금 일자리를 유지하는데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는 유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노동당은 또한 우파 사회학 흐름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바로 빈곤층이라고 하는 사회의 질곡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빈곤층은 노동을 회피하며, 범죄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하층계급’은 우리 거리를 위험스럽게 하고, 자기들의 자식들을 타락시키며, 사회 전체의 노동 윤리에 악영향을 미친다. 찰스 머레이같은 하층계급에 관한 이론가들이 내놓는 정책 처방은 실제로 하층계급을 격리 혹은 고립시킬 필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수감 등으로 이들을 고립시키거나, 값싼 공영주택 같은 곳에 효과적으로 가둬놓을 수도 있으며, 공식적인 기록에서 빼버릴 수도 있다. 현 정부가 채택해 실천에 옮겨지고 있는 단죄와 고립의 정책은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젊은 층 단죄하기

일하지 않는 18-24세의 젊은이들은 복지 혜택을 잃을 수 있다. 자신들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서 고용을 거부한 뉴딜 참여자들은 수입이 중단될 수도 있다. 이것은 작년 상반기에만 7천 명에게 벌어진 일이다. 젊은이들을 노동으로 몰아넣기는커녕 이 전략은 이들을 사회 밖으로 몰아내고 있다. 데모스 연구소의 한 보고서는 62만 4천 명의 젊은이들이 공식 기록에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도시 구 시가지의 과밀 슬럼지구 주민들과 교외 단지의 주민들은 이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젊은이들은 이미 부족한 부모의 수입에 의존해야 하거나 아니면 친구들의 집을 전전해야 한다. 이들은 마약 판매상과 범죄에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다.

범죄자 단죄하기

더 많은 젊은이들을 감호 속에 몰아넣는 것이 잭 스트로 내무장관의 정책이다. 모든 사회학적 지표가 보여주듯이 감시는 범죄성만을 증가시킨다. 가장 최근의 미친 짓은 지역사회의 서비스 질서를 깨뜨린 것으로 ‘주장’되는 실업자들의 소득 지원을 40% 삭감하거나, 일자리를 찾는 모든 사람들의 수입을 그에 관련한 재판이 있을 때까지 법원에 귀속되게 한 것이다. 예상되는 결과라고는 돈없는 젊은이들이 먹기 위해 범죄로 빠져들게 될 것이라는 점이 다. 그리고 나면 그들은 거의 틀림없이 감호를 받게 된다. 통계청이 피하고자 했던 바로 그 결과이다.

가난한 어머니들 단죄하기

가난한 어머니들에게 보조되는 모성지원금은 200 파운드로 인상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아이를 하나 낳아 키우는 비용은 거의 1,300 파운드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어머니들은 이제 ‘새로 태어난 아이의 보건 및 복지 필요 사항에 관해 보건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받고 있다는 증거를 제출’해야 하게 되었다. 이것을 지키지 못한 이들은 돈을 받지 못하게 된다. 재정적인 불안 때문에 몹시 고민하는 대부분의 빈곤층 부모들이야말로 공무원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따라서, 최하층 가족들은 심지어 돈을 덜 받게 되는 것이다.

빈곤층 단죄하기

1988년 보수당 정부는 수명이 다된 가정용품을 교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지원금을 폐지했다. 그리고 그것을 상환가능한 ‘사회 기금’ 대부로 바꿨다. 1998년에서 1999년 사이 186만건의 대부가 이뤄졌다. 만약 소득 지원이 최저선에 설정된다면, 주당 5에서 35 파운드까지 공제되게 되는 가족들은 절대 빈곤선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은 명백하다. 두 아이를 키우는 독신 부모 가족의 경우를 보자. 공제의 결과로 독신모는 하루 한 사람 당 4.58 파운드가 주어진다. 별로 놀라운 사실도 아니지만, 보수당 정부가 주도해서, 그 다음엔 무시되어버린 연구에 따르면, 대부 기금을 상환하는 이들 중 70%가 음식과 피복 등의 조달에 곤란을 겪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돈이 부족한 처지이다. 모든 지원자들이 대부를 받는 것도 아니다. 1998년에서 1999년 사이 68만 9천명이 거부당했다. 대부해줄 만한 지방 재원이 부족했거나, 공무원들이 일부 사람들을 너무 가난해서 상환하기도 힘들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부된 사람들이 이제 의지할 곳은 민간 대부회사나, 분할지불 판매인, 카탈로그 회사, 혹은 요리기구 등을 구입하면서도 법적으로 55%의 이자를 물리는 가게들, 심지어 최악의 경우엔 불법 대부업자들일지도 모른다. 한 부부는 불법 대부업자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550 파운드를 빌렸다. 그들은 상환하는데 곤란을 겪었고, 대부업자는 그들의 공제 조합 수

당을 빼앗아 갔다. 이 부부는 결국 450 파운드나 더 지불한 셈이 되었다. 보수당이 이 새로운 체제를 도입했을 때, 야당이었던 노동당은 이를 격렬히 비난했다. 하지만 권좌에 오르자, 노동당은 이 단죄 체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람들

을 시장이 주지 않는 일자리로 몰아부칠 수는 없다. 그것은 채무와 영양 결핍, 그리고 절망만을 낳을 뿐이다.

■봅 홀만은 {다시 방문한 집의 아이들}(러셀 하우스,2000)의 저자이며, {가난한 자들에 대한 믿음}(라이온,1999)을 편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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