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에게 강제로 부여되는 주민등록번호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반
드시 폐기되어야 할 대단히 위험한 개인식별번호 제도이다. 이는 부여대
상자 중에 중복되는 것이 없으며 (유일독자성), 일생동안 변하지 않고 (
영구성), 개인을 특정하는 데사용(전속성)되기에 데이터베일런스, 즉 데
이터베이스에 기반한 감시체제에 악용될 위험성이 있다.
데이터베일런스는 국가기관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용
카드회사, 이동통신회사, 병원, 기업, 학교 등 여러 사적(私的) 기관들
역시 의도했든 안 했든 여러 종류의 방대한 개인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축
적, 보관, 관리하고 있다.
◇감시체제에 악용될 우려◇
주민등록번호는 이러한 모든 데이터베이스에 포함된 공통분모로서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한 개인에 대한 자료를 한데 묶어 내는 데이터베이스
머징 (merging)의 열쇠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는 국민고유번호를 제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예컨대 독일은 주거등록제도와 국가신분증제도를 두고 있지만 각 제도
는서로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으며 국민에 대한 고유식별번호도 두고 있
지 않다. 프랑스의 경우 1979년에 컴퓨터로 읽을 수 있는 형태의 개인신
분확인카드 (이름과 출생일만 포함되고 개인고유번호는 사용하지 않음)의
발급을 계획하였으나 그마저 시민 단체의 엄청난 반발에 부닥쳐 무산되
고 말았다. 일본 역시 신분등록제도로 호적제도를, 주거등록제도로 주민
기본대장제를 두고 있으나, 국민에 대한 개인식별번호제와 국가신분증제
도는 채택하지 않고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 이른바 영미법계 국가 대부분은 주
거등록제도는 물론이고 국가신분증제도와 개인식별번호조차 두고 있지 않
다.
◇선진국에선 대부분 금지◇
특히 독일의 신분증명법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선 신분증
을 발급할때 부여하는 일련번호는 ‘사람’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신분‘증’에 부여되는 것이어서, 새 신분증을 발급할 때마다 새 번호가
부여된다. 또 일련번호에도 생년월일이나 성별 등의 인적 사항 등을 추정
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을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또 공적 기관은 물론
이고 사적 기관도 일련번호를 데이터베이스에서 인적 사항을 추출하는 것
(프로파일링)이나 여러 데이터베이스 자료의 결부(머징)를 위해서 사용할
수 없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나 자주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주민등
록번호를 요구했고 또 그 요구에 응해왔다. 그러나 이제 주민등록번호 하
나면 수 많은 데이터베이스에 담겨있는 당신의 신상과 행적에 관한 모든
정보가 한데 묶여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주민등록번호가 폐지
되기 전까지는 주민등록번호를 함부로 요구하지도 말고 알려주지도 말아
야 한다.
◇허위번호 사용 징역이라니◇
특별한 이유 없이 주민등록번호를 요구 당하는 경우에는 허위주민등록
번호를 사용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정자치부는 가짜 주민등록
번호를 생성하거나 행사(주민등록번호의 ‘행사’란 얼마나 어불성설인가
! 주민번호가 무슨 권리란 말인가?)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주민등록법개정안을 지난 9월 1일 마련했다
. 만약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우리는 디지털 데이터베일런스의
어두운 그늘을 한동안 벗어나기 힘들게 될 것이다.
김주환(연세대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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