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행동, 기총사격 중지를 얻어내다.
[노동자세계」 8/31 베르타 후버트-제시
8월 18일, 한국 민중은 부분적인 승리를 얻어냈다. 미군측이 남한의 매향리 쿠니 사
격장에서의 실탄 기총사격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던 것이다.
45년 동안 펜타곤은 기총사격장 근처 마을들의 주민들에 대한 전쟁을 수행해왔던 것
이다.
오산과 군산 근처의 기지들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전투기들은 매향리로 날아와서 기
총 사격 연습을 한다. 이들은 마을에서 일 마일도 채 떨어지지 않은 해안가의 네 개
회전 목표물들에 사격을 한다.
쿠니 사격장은 서울 남쪽에서 자동 화기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허가된 유일한 곳이다.
미군기들은 대부분 네 대가 편대를 이루어 동일 목표물에 사격을 하며, 소음 측정 장
치의 측정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소음을 내고 있다.
조종사들은 민간인 지역의 상공을 비행하는 동안부터 이미 사격을 시작하곤 한다.
폭격장 폐쇄를 위한 매향리 대책위의 전만규 위원장은 이 소음을 “보이지 않는 무기”
라고 부른다. 그는 이것이 미군이 사격장에 투하하는 폭탄보다 심지어 더한 심리적인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소음 공해는 억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고, 아이와 어른을 막론하고 공격적
인 행동을 보이는 문제를 야기했다. 이 지역의 매우 높은 자살률은 또 다른 결과물이
다.
45년이 지나서야, 미군은 왜 마을 주민들의 요구에 마침내 응답하게 되었을까?
5월 8일 미군 A-10기 한 대가 매향리 해변에 500파운드 실탄 여섯 발을 투하했다. 폭
발은 마을까지 덜컹거리게 했고, 170여 가옥에 손상을 입혔다. 일곱명의 주민이 병원
에 실려갔다.
이 사건은 매향리에서 미군의 존재에 대한 점증하는 반감을 다시금 소생시켰다. 많은
격렬한 시위가 마을 안팎에서 벌어졌다.
주민들은 반공적인 국가보안법에 공공연히 도전했다. 이 법은 사회주의적 북한을 돕
는 것으로 간주되는 그 어떤 행위도 금지하고 있다. 통일과 3만 8천 모든 미군의 철
수를 요구하는 노동자와 학생의 집회들은 이 투쟁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종교, 문화, 농민 단체들을 비롯한 여러 조직들이 매향리의 싸움을 최우선 과제로 상
정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대표단이 이 마을을 방문, 지지를 확인했다. 이 대표단에
는 오키나와와 푸에르토리코 비에케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군 주둔 반대 투쟁의 대
표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국과 독일에서 온 지지자들도 있었다.
지지 시위는 또한 워싱턴을 포함, 세계 각지에서 열려 왔다.
매향리에서의 미군의 추악한 비밀은 더 이상 숨겨질 수 없었다. 특히 작년 한국전 참
전 미군 병사들이 노근리에서 저지른 학생을 폭로한 이후에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것은 부분적인 승리일 뿐이다. 5월 8일의 비극은 기총사격 때문이 아니라
폭격 때문이었다. 펜타곤은 농섬에서의 폭격 연습은 지속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 섬
은 기총사격장 바로 정면에 있는 섬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미군의 이런 결정은 자신들이 바라는 바에 훨씬 못미치는 것이라
고 말하고 있다. 그들의 요구는 매향리로부터 미군이 완전 철수하는 것이며, 그리고
폭격연습장은 폐쇄되는 것이다. 그들은 승리할 때까지 투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다짐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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