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김대중정부는 애당초 ‘세상을 바꿀’ 정부는 아니었지만 제한적인 개혁을 추진할 세력으로 기대를 모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집권 2년을 넘기면서 ‘준비된 대통령’이 준비한 것은 대통령 취임식과 평양방문밖에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현정부의 개혁이 역사의 후퇴로 귀결된 것은 개혁의 파트너와 개혁대상을 혼동한 것으로부터 출발한 예정된 결과이기도 하다.

김대중정부가 자신의 계급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나마의 개혁이라도 추진하기 위해선 개혁으로 생활과 처지가 나아질 사람들, 개혁부진으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을 개혁의 파트너로 삼아야 했다. 그것이 바로 노동자, 농민, 빈민, 영세자영업자, 중소상공인들이었다. 그러나 현정부는 이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김대중정부의 IMF체제 극복방안은 바로 이들의 희생을 대가로 위기를 탈출하자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노선은 조세법개정, 의료보험료 인상 등으로 계속되고 있다. 특히 1998년의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사태로부터 출발하여 만도기계 파업진압, 조폐공사노조 파업유도, 롯데호텔 파업폭력진압, 사회보험노조 파괴공작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는 현정부가 노동자들을 개혁의 대상을 넘어 ‘개혁의 적’으로까지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김대중정부는 개혁의 동반자를 개혁의 대상으로 짓밟는 대신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세력을 개혁의 동반자로 삼아왔다. 집권 초기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제16대 총선이 역대 최대의 금권선거가 되고 옷로비사건, 한빛은행 부정대출사건 등이 연이어 터지는 것은 정치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세력을 개혁주체로 둔갑시켰기 때문이다. 재벌개혁 역시 술을 끊겠다는 사람이 소주를 끊고 맥주를 마시는 꼴에 다름 아니었다. 더욱이 대우사태에서 보이듯 대표적으로 손 볼 재벌을 처리한다면서 수십조원의 국민부담을 지우는 무능력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의사폐업사태에 속수무책인 것도 개혁대상의 혼동과 개혁구호가 모순관계를 이루면서 발생하는 일이다.

오늘의 총체적 난국은 원유가인상 등 국제적 요인보다 국내적 요인, 그 중에서도 김대중정부의 ‘거꾸로 가는 개혁’이 초래한 현실이다. 김대중정부는 지난 2년 동안 개혁주체에서 개혁대상으로 전락하였다. 국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국회의 장기간 공전사태가 총체적 난국의 한 예로 지적되고 있지만 국회가 다시 정상화되면 난국이 수습되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총선연대가 스스로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했던 낙선운동은 정치인을 몇 사람 교체했을 뿐, 정치개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게 이미 증명되었다. 일을 안 해도 문제지만, 한국의 정치인들이 바삐 움직일수록 부정과 부패가 커지고, 추태가 빈발하며, 서민들에겐 손해를 끼치는 일이 더 많다는 피해의식과 배신감이 날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새천년 민주당, 한나라당, 자민련, 민국당이 구성하고 있는 제16대 국회는 여전히 ‘우려스러운 집단’일뿐이다.

총체적 난국은 총체적 개혁을 요구한다. 또 총체적 개혁은 진정한 개혁세력의 연대와 투쟁으로만 가능하다. 정부와 국회가 개혁대상으로 전락했다면 개혁의 깃발은 민중이 들어야 하고 노동자가 앞장서야 한다. 기다려선 아무 것도 오지 않는다. 난세가 영웅을 낳는다면 오늘의 영웅은 투쟁하는 민중이 되어야 한다.

노 회 찬 (민주노동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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