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담당자들한테서 터져나온 ‘근본적’ 문제제기
‘현실과 동떨어진 사업결정과 집행’에 따가운 질책
“민주노총의 사업과 투쟁, 전반적으로 문제 많습니다.”
최근 민주노총 중앙위가 잇따라 유회됨에 따라 조직운영의 난맥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선에서 조직과 투쟁을 맡고 있는 연맹과 지역본부의 조직담당자들이 조직전반에 대한 총체적 문제제기를 하고 나서 주목된다. 지난 9월27~28일 이틀 동안 열린 민주노총 조직쟁의담당자 수련회에서 조직운영과 사업방식 등에 대한 ‘쓴소리’가 쏟아져 나온 것.
민주노총 조직쟁의실은 애초 이번 수련회를 통해 ‘하반기투쟁’에 대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의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최근 회의유회 사태가 터지고, 사업집행력이 떨어지면서 여러 갈래로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조직을 둘러싼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툭 터놓고’ 얘기하기로 방향을 바꿨다. 이날 수련회 참가자 40여명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느껴온 문제의식을 쏟아냈다.
공공연맹 김철운 조직실장은 “지적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있어도 누구 하나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며 ‘술자리토론’은 익숙하지만 공식석상에서 책임 있는 논의가 없는 현실을 개탄했다. 김실장은 이어 의결과 집행이 따로 노는데다 ‘대충’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 결과가 부실해도 ‘대충’ 넘어간다고 지적했다.
부산지역본부 이정영 조직2국장은 “총연맹은 기조와 방향만 설정하고 구체적인 사항은 지역본부나 단위노조에 넘겨 운신의 폭을 넓혀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국장은 “올해 하반기에는 상경투쟁을 네 차례나 잡고 있는 등 너무 빡빡하다”며 “그러니 ‘일당 주고 사람 사서 집회하자’거나 ‘파업하기 어려우니 서울로 끌어올려 집회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있다”고 덧붙였다.
그 뒤에도 따가운 질책은 그칠 줄 몰랐다. 이같은 문제제기는 일선에서 실제로 조직을 추스르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표출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민주노총 신언직 조직국장은 이에 대해 “사실 치열하게 토론하고 책임 있게 집행하던 기풍이 희미해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회의만 하더라도 논의가 실천과 떨어져 형식으로 흐르고, ‘나의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숨길 수 없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근원 조직쟁의실장은 “이런 자리가 처음이었음에도 참가자들 사이에 공감대가 이루어진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며 “이날 나온 문제제기는 사업집행에 적극 반영하는 한편 앞으로도 대안모색을 중심으로 이런 자리를 자주 가질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조직쟁의실이 정리한 수련회 발언록을 간추린 내용.
-회의도 제대로 안 되는데 어떻게 총파업을 하겠다는 건가. 투쟁수위와 계획은 현실을 감안해서 대폭 낮춰야 한다.
-싸워야 한다는 당위성도 좋지만 노조에서는 왜 싸워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 조합원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투쟁수위를 결정할 때 현장상황을 반영하는지 의문이다. ‘누가 더 센 주장을 하는지’ 경쟁하는 느낌이다. 현장의 구체적인 현실을 정확히 반영해 계획을 짜야 한다.
-한 연맹의 지역회의에 참석해 보니 “하반기 총력투쟁은 결정한 사람끼리 하라”는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애정이나 관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금같은 사업방식에 대해 심각한 문제제기라고 본다.
-현실을 점검할 여유도 없이 일정만 따라가선 곤란하고 구조적인 정밀분석이 필요하다.
-천막농성을 중간에 그만두자는 의견이 있어 어렵게 설득해 계속하기로 했는데, 그 다음날 민주노총 회의에서 농성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투쟁지침이 갑자기 바뀌면 조직에 대한 신뢰도 의욕도 크게 떨어진다.
-현장 실태를 잘 아는 우리(조직담당자)가 정확하고 냉정하게 점검하면 적어도 엉뚱한 계획이 통과되지는 않을 것이다. 목소리 큰 사람이 투쟁하자고 하면 그대로 결정하는 풍토를 바꿔야 한다. 국고보조금 받는 문제를 대의원대회로 넘긴 건 중앙집행위의 책임회피다.
-민주노총의 대정부 교섭력이 너무 떨어진다. 정보전달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주요노조 중심으로 사업이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서로 설득하는 과정에서 크게 부딪히더라도 꼭 확인하고 점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 가지 사업이라도 집중해서 투쟁해야 한다. 부당노동행위 사업주 처벌이 그것이다.
-투쟁수위를 높이거나 낮추는 게 문제가 아니라 책임 있는 결정과 집행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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