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9일 발생한 군산 매매춘 업소 화재참사는 한국 사회 성매매의 현주소를 짚어낼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피해여성의 일기장을 통해 매매춘 여성 인권유린의 실태가 낱낱이 보고되고, 경찰과 시청 공무원들의 직무유기 및 업주와의 유착관계가 하나둘 드러나고 있어 국가는 성매매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한편 이번 사건은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한 여성인권운동이 한동안 침체됐던 성인 매매춘 문제를 다시 수면위로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공무원 직무유기 ‘섬뜩’
이번 사건에서 특히 공대위와 민변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성매매에 대한 관련 공무원들의 직무유기 실태다. 사건 발생지는 유명한 윤락가로, 서울 ‘청량리588’처럼 군산에선 ‘감뚝’하면 근방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관할지역 경찰공무원들이 이 지역에서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더욱이 화재가 난 건물은 군산역 앞 파출소에서 1백 미터 정도의 거리였다.
“왜 단속을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경찰들은 한결같이 “음성적이라 단속하기 어렵다”고 답한다. 이에 대해 매매춘 현장활동가들은 “누가 범죄를 양성적으로 저지르는가”라고 반문한다. 활동가들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매매춘에 대해선 쉬쉬 해주는 이해관계가 업주와 경찰공무원 간에 이미 형성돼 있어 단속을 한다 해도 형식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주요 단서 중 하나는 화재가 난 건물 벽에 걸린 ‘청소년 통행금지구역’ 팻말이다. 팻말은 군산시장과 경찰청장 명의로 돼있다. 사건발생 직후 공대위 측에서 시청에 책임소재를 물었을 때 시에서는 “우리가 무슨 책임이 있는가. 우린 알지도 못했다”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시장명의로 된 팻말에 대해선 변명이 궁색하다. 공대위는 팻말이 걸린 것은 시에서 이 지역이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특별한 곳이라고 이미 파악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보고 있다.
또 많은 매매춘 업소가 그러하듯 화재가 난 건물 역시 불법 개조된 건물로, 밀폐된 형태에 중앙으로 연결된 쪽방이 이어져 화재가 났을 때 대형 참사를 피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군산시 건축과 공무원은 “건축구조 변경이 내부변경이기 때문에 개인의 책임이다”라고 말하고, 화재 예방을 위한 단속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무허가 영업을 하는 건물은 점검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등 책임회피에 급급한 모습이다.
한편 요보호여성에 대한 상담과 선도를 담당하고 있는 군산시 여성복지관에선 매매춘 지역에 대한 파악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성명서를 통해 “업주들이 매매춘 여성들을 감시·감금·폭행하며 장기간 불법영업을 해 온 것은 다른 실무적 배후실세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포주와 건물 임대주 뿐만 아니라 관련자 모두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또 민변은 시청과 경찰청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 국가가 책임을 지고 매매춘 방지를 위한 구체적 정책을 마련하도록 할 계획이다.
윤락행위방지법 효력 없어
96년 1월 윤락행위방지법 개정안이 시행에 들어간 이후 4년이 지난 지금 법의 개정으로 한국 사회에서 성매매의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결되었다는 보고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성매매 방식의 다양화, 십대 매매춘 성행 등 성매매는 더더욱 확장되고 있을 따름이다.
일각에선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법의 명칭에 ‘윤락’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부터 문제라고 지적한다. 매매춘 여성을 도덕적으로 문제삼는 ‘윤락’이라는 용어는 ‘성매매’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범죄자들을 처벌하기엔 처벌 규정이 너무 단순하다는 지적과 매매춘 여성을 선도하는 데 대한 실질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 전부터 제기돼왔다. 최근에는 매매춘 여성을 범죄자가 아닌 피해자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 있다.
그러나 법 개정보다 중요한 것은 법 집행자의 의지라는 것이 매매춘 현장활동가들의 의견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윤락행위방지법이 실효성을 거둘 수 없는 이유로 ‘공무원들의 안일한 태도’와 ‘매매춘 여성에 대한 편견’을 꼽는다. 개정법에서 쌍벌규정이 강화됐지만 실질적으로 이용자가 처벌된 사례는 거의 없다. 심지어 매매춘 여성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착취구조에 대해서도 조사된 바 없으며 사회복귀 프로그램에 대한 제도적 장치도 미흡하다. 실태파악은커녕 단속조차 하지 않는 실정에 업주와 공무원의 유대관계가 공고한 상황이니 우리 사회에서 성매매 근절이란 요원한 일로 보인다.
또 90년대 활발하게 진행됐던 성매매 반대 논의와 운동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매매춘 여성에 대한 편견 또한 여전하다. 성매매에 대한 국가적 방임도, 매매춘 여성에 대해서는 수많은 편견으로 죄악시하고 이용자 남성에 대해서는 ‘필요악’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성불균형 사회분위기가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성매매의 구조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있는 공대위 실무자들은 “관련 공무원에 대한 처벌과 더불어 매매춘 여성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이용자 남성과 국가에게 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매매춘 여성 선도보호시설에 대한 비용보조 의무화, 현실적인 직업기술교육프로그램 실시, 매춘밀집지역 내 전문상담기관 설립 및 전문상담원 배치 등 정부의 구체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한편 조순경(이화여대 여성학) 교수는 “매매춘 문제는 한국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지적, “여성운동은 성매매의 뿌리를 뽑기 위해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파헤쳐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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