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현장> ⑨현대중공업노조의 어제와 오늘

‘회사임금안 동의서명’으로 단체교섭권 강탈

집행부·해고자 항의투쟁에 집단폭행 세례

“빠아앙~.”

10월10일 아침 현대중공업 중전기 출입문. 오토바이 수백 대가 울려대는 요란한 경적소리가 주위를 가득 메웠다. “조합원 여러분의 분노를 담아 출발할 때 경적을 힘차게 울려주십시오”라는 이 회사노조 김종철 위원장의 외침에 대해 조합원들이 힘차게 호응한 것이다. 회사의 파행교섭과 폭력만행을 규탄하는 이번 주 투쟁은 노조간부들과 현장활동가들이 출근길을 2~3분 동안 가로막은 뒤 조합원에게 직접 선동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지난 9월5일 노조가 단체협상 결렬을 선언하자 회사는 관리자들을 동원해 ‘회사임금안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받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9월9일 서명 조합원에게 일방적으로 임금을 입금했다. 단체교섭권을 부정하는 회사에 맞서 노조가 9월19일 천막을 하고 철야농성을 시작한 지 벌써 20여일이 지났다. 김종철위원장은 “지금 상황을 쉽게 풀어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지금 인간이하의 짓을 감행하고 있다”며 “이번 투쟁은 우리의 미래를 제대로 세우는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노조는 △회사의 공개사과 △불법부당노동행위 책임자 처벌 △경영진 사퇴 △정씨일가 퇴진 등의 요구를 내걸고 끝까지 투쟁한다는 방침이다.

9월21일 현대중공업 해고자 15명은 정문앞에 천막을 치려했지만 회사가 천막을 칼로 찢고 조합원을 집단폭행하자 철야노숙투쟁에 돌입했다.

9월19일 노조가 천막을 친 때를 시작으로 회사의 집단폭력은 끊이질 않았다. 이날 회사는 경비대 1백50명과 관리자 3백여명을 동원해 폭력진압을 시도했지만 노조가 휘발유와 신너를 뒤집어쓰고 저항하자 겨우 물러났다. 9월20일 회사는 또 노조 업무용 차량을 검색한다는 빌미로 출입을 저지하고 경비대를 동원해 노조간부들을 무차별 폭행했다. 노조 중전기사업부 분소장 전명환(35)씨는 9월24일 회사 경비대의 집단폭행으로 3주진단을 받고 입원했다. 전씨는 “회사 경비대 30여명이 나를 쫓아와 두 번에 걸쳐 지근지근 밟았다”며 “노조 김병조 선전차장이 112에 신고해 순찰차를 타고 울산대병원으로 후송됐다”고 말했다. 다음날 출근투쟁을 위해 24일 밤 정문옆에 차를 대던 전씨를 회사 경비대가 ‘찍어서’ 집단구타한 것이다. 더욱 기가 찰 노릇은 회사 경비대가 이날 밤 전씨를 음주·뺑소니 살인미수혐의로 신고까지 했다. 회사의 음주와 뺑소니신고는 음주측정과 112순찰차로 후송했던 경찰의 증언으로 허무맹랑한 주장임이 금방 드러났다. 전씨는 “노사 단협사항에 쟁점이 생기면 조합원에 대한 폭행으로 쟁점을 흐리는 게 회사의 전통적인 수법”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10월6일까지 계속된 회사의 폭력으로 노조 박근태 수석부위원장과 해고자 김인철씨 등 노조간부 10여명과 조합원 3명이 늑골이 골절되고 손가락 인대가 찢겨지는 등 큰 부상을 입은 상태다.

그러나 회사는 10월6일 현장에서 선출된 교섭위원 15인에 대해 ‘현장으로 복귀하라’고 발표하는 등 여전히 안하무인격으로 나오고 있는가 하면 ‘무쟁의를 약속하면 전임자, 해고자 문제를 보장하겠다’, ‘올해 임단협은 끝난 거다’ 따위의 노조를 흔들기 위한 이데올로기 공세를 퍼붓고 있다. 게다가 얼마 전 현대사태에서 드러난 정씨일가의 경영권 대립을 가리기 위해 노조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었다.

9월28일 해고자들과 집행부에 대한 폭행에 분노한 1천여명의 조합원은 중앙집회에 참석해 ‘2000년 투쟁을 반드시 승리하자’고 결의했다. 노조집행부 역시 천막농성을 이어가며 조합원 출근선동투쟁과 퇴근중앙집회, 서울상경투쟁 등 조합원 투쟁동력을 모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집행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장은 쉽게 달궈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무쟁의 6년이 말해주듯이 90년대 조선사업부 ‘리폼 90s’으로 시작된 뒤 최근 ‘비전 2010’으로 이어지고 있는 회사의 벽은 두터웠다. 조합원이 노조활동에 참여하려는 눈치만 보여도 반장, 팀장, 운영과장, 부서장, 중역에 이르는 5단계 면담을 동원하는 회사에 대해 현장조합원은 깊은 패배의식을 갖고 있었다. 또한 노조집행부가 제출한 쟁의예산이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되거나 대의원대회 자체가 유회돼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노조를 짓누르고 있는 대목이다. 곽진호 노조기획부장은 “비젼 2010으로 인해 내부구조조정문제가 예상되는 등 조합원들에게 이미 그 실체가 드러났다”며 “지금 현장은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이라고 전했다. 10월11일 노조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이세화 조합원은 “내 시급 3천9백원으로 계산할 때 조기출근·체조를 통해 회사가 임금 한푼 안주고 버는 돈은 1년에 93억6천만원”이라며 “올해 12월에 있을 대의원 선거, 제발 잘 뽑읍시다”고 호소했다.

지금 현대중공업 현장에 ‘골리앗’은 없었다. 뭔가 있다면 ‘실천’과 만나기 위한 밑바닥의 ‘분노’뿐이었다.

이재철 leecc@nodong.org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