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화해에 도움이 되었나

[주간녹색좌파] 10/11 피터 보일

원주민화해위원회 의장인 구스타브 노살 경에 따르면 올림픽은 원주민과의 화해를

위해 수개월의 협상보다 많은 일을 단 이주일만에 해냈다고 한다. 한편 -폐막식에

서 미드나이트 오일이 행한 “미안해요” 청원 성명에 아직도 가슴아파하는- 존 하

워드 총리는 올림픽 게임을 통해 오스트레일리아가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

다 훨씬 많은 화해를 이루었음”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며칠 후 현실이 문을 두드렸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의 한 칼럼은 다음과 같은

재치있는 물음을 던졌다. “화해는 얼마나 멀리 와있나? 400미터”.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인가? 올림픽은 원주민과의 화해를 얼마나 진전시켰는가?

하워드 총리와 화해장관인 필립 러독은 여전히 수많은 폴린 핸슨을 만들어내고

있다.

연방정부는 역사적인 북부영토권리법에 대한 새로운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인

종주의적인 강제선고법은 여전히 압도적인 수의 원주민 젊은이들을 감옥에 넘쳐나

게 하고 있다. 원주민은 다른 국민들에 비해 15배 이상의 수감률을 보인다. 또한

원주민의 옥중사망자 수는 1991년 원주민 옥중사에 관한 왕립위원회가 사실인정을

한 이래 147건으로 증가했다. 반면 왕립위원회가 설립되기 전 10년간의 수치는 99

건이었다.

내년에는 연방선거가 있을 예정이지만 원주민의 권리에 대한 지지를 줄여나가기

시작한 노동당은 거의 아무런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다.

올림픽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내의 인종주의적 흐름을 역전시키지 않았다.

폴린 핸슨의 인종주의 정당인 한나라당은 계속해서 내부로부터 붕괴하고 있지

만, 여론 조사와 선거 분석들에 예상에 의하면 98년에 한나라당에 투표한 백만에

가까운 사람들은 여전히 다음 선거에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워드와 러독이 여

전히 인종주의 성향의 국민들에게 장단을 맞추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올림픽 기간

내내 그리고 그 후에 노골적인 인종주의 세력들은 언론의 독자투고란을 통해 자신

의 존재를 알렸다.

올림픽은 화해라는 이슈를 둘러싸고 어느 정도 정치적 문제가 되었다. 개막식과

폐막식에 대한 압도적인 긍정적 여론과 캐시 프리먼에 대한 열광적인 추종은 오스

트레일리아 국민 대다수가 점차 인종주의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세

계에 분명히 보여주었다.

피터 개럿을 비롯한 미드나이트 오일 멤버들이 보여준 상징적인 정치적 선언

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은 하워드의 인종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반대가 여전히 존재

함을 보여주었으며, 하워드의 얼굴은 “과녁!”을 비추는 점수판이 되었다.

올림픽 취재를 위해 시드니에 모인 세계 언론들은 연방 정부가 원주민 문제에

관해 점점 평판을 잃어가고 있다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이를

알고 있었고 지난 5월과 6월의 거대한 코로보리 2000 행진 때부터 기사를 타전하

기 시작했었다.

이러한 행진, 또는 온건파 주최측이 붙인 대로 하자면 “걷기대회”는 정치적 의

도가 없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세대 문제에 비타협적이었던 하워드 정부는 이를

정치 문제로 만들었다.

너무 수동적인

그러나 원주민 문제에 관한 하워드의 처방에 동의하지 않는 많은 오스트레일리

아인들은 프리먼이나 원주민 모티브를 가득 담은 의식에 박수를 보내는 것을 넘어

더 많은 일을 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반응은 (특히 원주민들에게) 고무적인 일이

었지만 진지한 정치적 효과를 이루기에는 너무 수동적이었다.

그들은 거리로 나가 보다 적극적이고 대중적인, 독립적인 정치적 행동을 할 수

도 있었다. 올해 초 화해를 위한 대규모 행진들에서처럼 말이다. 이러한 행동은

올림픽을 혼란시키거나 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진정한 화해를 위한 커다란 발걸음

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 원주민 지도자들이 통일된 목소리로 강력한 요청을 했다면 수만의 사람들

이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청은 없었다. 아마 많은 원주민 지도

자들이 폐막식이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시위보다도 더 낫다”고 말한 원

주민 및 토레스해협 섬주민 위원회(ATSIC) 의장 조프 클라크에 동의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는 이해할 수는 있지만 잘못된 견해이다. 스티븐 페이지와 로다 로버츠의 도

움을 받아 릭 버치가 주관한 개막, 폐막식은 원주민의 문화와 정체성을 보여주었

지만 이는 백인의 오스트레일리아가 지난 수세기 동안 억압하고 부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올림픽 의식에서 인정받는 것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인종주의적 흐름

을 바꾸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도 아니었다.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이 이제 명심해야만 한다”는 클라크의 바램은 그저 희망으로

만 남게 될 것이다.

이들은 “우리의 지도자”가 아니며 아무리 이들에게 탄원하고 외치고 세계 언론

앞에서 당황하게 만들더라도 이러한 사실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 대다수는

현 연정과 정부내 전통적인 대안들이 기본적으로 부유한 기업들의 대표자들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들은 토지권리 비용을 지불하거나 잃어버린 세대들에 대해 보상하

는 것, 또는 대다수 원주민 공동체들의 사회적 조건을 바로잡기를 원하지 않는다

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들 정치인에게 “전망”을 요구하는 것은 완전히 시간낭비이다. 하워드와 비즐

리는 전망을 갖고 있다. 그들이 섬기는 독점기업들을 위해 역사상 최고의 이윤을

보장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알고 있지만 이 나라 자유

주의 인텔리들의 낙서들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화해와 국가 정체성

오스트레일리아의 인종주의에 관한 대중적 논의는 지난 수년간 국가 정체성에

관한 논쟁과 혼동되어 왔다. 기본적으로 이는 인텔리 대부분이 하워드 정부의 사

회적 보수주의에 대해 갖고 있는 커다란 당혹감을 반영한다.

이들 지식인은 하워드와 러독, 핸슨이 외부 세계에 투사하고 있는 인종주의적

이미지로 인해 당황하고 있다. “화해” 논쟁은 그들의 이미지나 정체성에 관한 것

이 아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인종주의의 희생자들이 여전히 직

면하고 있는 거대한 부정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가령 최근 몇 년간 하워드 정부의 인종주의 공세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선두주자

였던 보수파 작가 로버트 만은 올림픽에 관한 평론을 통해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강박관념을 드러내었다.

“올림픽에 관해서라면 나로서는 두 가지 유감스러운 가책만이 있다. 캐시 프리

먼이 성화 점화자로 선택된 점, 그러한 권위와 품격으로 레이스에서 승리한 점,

그녀가 오스트레일리아 깃발과 원주민 깃발 모두를 걸쳤을 때 아무도 이를 트집잡

지 않은 점은 놀라운 일이었다. 브루스 럭스톤과 아서 턴스톨의 시대가 마침내 종

언을 고한 듯이 보였다.”

“그러나 올림픽에서 그녀가 한 중추적 역할이 화해의 행위, 즉 하나의 국가로서

우리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는 원주민들에 대한 사과를 상징화할 수 있었다면 더

욱 아름다웠을 것이다.”

로버트 만은 “창조적인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이 나라를 특징지운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많은 부분을 원주민 문화로부터 빌어온 점”을 놀랍게 생각했다.

우와, “오스트레일리아를 위해” 원주민의 춤과 노래, 달리기와 높이뛰기를 더

많이 수용하자. 그러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대부분의 스포츠 영웅과 가수, 댄서

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수감 인구와 빈곤 통계를 통해 제도화된 인종주의

가 여전히 보여지고 있음을 유념하자.

만은 올림픽 성화 봉송을 “국가적 단결의 강력한 상징”으로 보지 않을 수 없었

다. “성화가 마을이나 소도시에 도착하면서 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정서를 불러일

으켰다. 이러한 정서는 고도로 개인주의적인 우리의 시대에서는 잃어버린 것으로

간주되던 것이었다.”

그는 곧이어 과도한 환상에 빠져든다. “성화 봉송은 또한 -자신의 공동체를 위

해 헌신적으로 봉사한 이들을 예우하고 높이 자란 양귀비를 잘라내는 방식으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행사가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가적 단결은 거짓말이다. 이 사회는 유럽에 의한 식민화 이

래 계급적으로 분할되어 왔으며 지금은 -최고경영자 평균 소득이 종업원의 475배

에 이르는- 미국처럼 그 간극이 거대해지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왈츠를 추

는 마틸다>를 부를 순 있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변화되진 않는다.

인종주의와 “하워드의 핸슨화(化)”의 발흥은 이러한 심화되는 계급 분할의 부수

효과이다. 부유한 기업의 정치인들은 분할통치를 위해 인종주의를 필요로 한다.

분명 사람들은 스포츠에서 우리편을 응원하길 좋아한다. 그러나 캐시 프리먼이

여자 400미터에서 우승함으로써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 우월

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고 소리높여 외친 머독의 사설을 믿는 이들은 얼마나 될

까?

그러나 대중적 영웅으로서의 프리먼의 힘은 1994년 영연방게임에서 저항의 표시

로 원주민 깃발을 들고 경기장을 한바퀴 돈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프리먼이 자

신의 외할머니가 잃어버린 세대의 일원이라고 발표함으로써 잃어버린 세대의 존재

를 부인하는 하워드 정부의 말문을 막아버렸을 때 그녀의 지위가 높아졌다.

그녀의 대중적 인기는 기업 지배계급의 15년에 걸친 공세 이후 새로운 반란의

분위기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새로운 지도부

“화해” 요구는 현대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의 심장부에 존재하는 인종 갈등을 어

떤 식으로든 해결하라는 수십만, 아니 수백만 국민들의 바램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긍정적이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이러한 국민들 대부분은 화해를 위해서는

수십년의 인종주의와 폭력, 강탈의 유산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

나 화해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문제에 관한 진지하고 민주적인 논의를 개시한

것은 조직된 운동이 아니다.

하나의 방해물이 존재한다. “화해 운동”은 너무나도 보수적인 세력들이 주도하

고 있다. 이 운동은 관료화되고 하향식 운동이며 현 사회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커다란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이끌고 있다. 이 “운동”이 수개월간의 결실없

는, 그러나 값비싼 “협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박수 갈채를 보내기

까지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화해 운동은 권력자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설득함으로써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는 자유주의의 환상에 빠져있다. 이 운동은 소규모 집회와 언론을 탈 기회, 미술

가나 연주자, “저명인사”들의 전시나 공연 등을 선호하면서 대중 동원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형형색색의 모형 손들이 전국의 공원을 뒤덮었지만, 집회는 한번도 조직되지 않

았다. 시드니 하버브리지를 가로지른 유명한 화해 행진과 그 뒤를 이어 벌어진 다

른 도시들에서의 행진이 있기까지는.

이 행진들은 “화해 운동”의 몇몇 지도자들의 눈에는 실수로 비춰졌다. 그러나

이는 인종주의의 공세에 맞서는 새로운 대중운동의 가능성을 알린 아름다운 실수

였다.

이 운동은 하나의 단일한 요구로 단결되었다. 잃어버린 세대에 대한 사과가 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를 넘어서 나아가려면 인종주의 반대 요구 모두를 포

괄하는 폭넓은 강령이 필요하다.

하워드는 한나라당이 제기하기 시작한 우익의 도전에만 부분적으로 맞서면서 사

회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으로 정부의 자물쇠를 채워왔다. 그러나 노동당이

이끄는 새로운 연방정부, 또는 심지어 코스텔로가 이끌 미래의 연립정부조차 쉽게

상징적인 사과를 결심하고 이로써 끝맺음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국회는

원주민들에게 이름뿐인 성과를 주면서 이러한 일을 해왔다.

젊은층에 눈길을

올림픽은 화해를 가져오지 않았다. 우리는 화해의 상징을 경축했지만, 클라크도

인정하듯이, 우리는 여전히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실질적 성과를 추구해야 한

다.”

그러나 새로운 인종주의 반대 운동의 지도자들은 어디에서 등장할까? 기본적으

로 흑백을 망라한 젊은층의 새로운 반란 세대들로부터 나올 것이다.

정치적 미래라는 측면에서 보면, 올림픽이 만들어내는 화해의 메시지보다는 9월

멜버른 세계경제포럼 회의장 밖에서 벌어진 3일간의 시위(S11)가 더욱 중요하다.

구세대 “진보주의자들”이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체성이 어떻게 흐려지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비통한 몸짓을 한 반면, 젊은 세대의 인종주의 반대 활동가들은

한나라당이 추한 머리를 내미는 것에 맞서 거리로 나서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이 신세대 활동가들은 S11 시위를 통해 독립적인 정치행동의 힘을 맛보았으며

구세대 활동가들의 이데올로기적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롭다. 젊은 세대들에게 있어

인종과 민족성은 부모 세대만큼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

70년대와 80년대 사회운동의 유산과 오스트레일리아의 다문화화는 한 인종이나

민족이 다른 민족에 비해 우월하다는 관념을 후퇴시켰다. 40년 전만 해도 오스트

레일리아에 이런 관념이 팽배해 있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 신세대들은 또한 문화적 다양성만이 아니라 우리가 계급적으로 분할된 사회

에 살고 있다는 점, 오스트레일리아에 갈등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부유한 기업

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 사회를 경영할 경우 “화해”는 결코 이룰 수

없으리라는 점을 알고 있다. 희망은 바로 이들로부터 나올 것이다.

■ 피터 보일은 민주사회주의당의 전국집행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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