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반전사상으로 노벨평화상 탄생
노벨평화상이 제정된 데에는 일찍이 평화운동을 벌여온 서구여성들의 영향이 컸으며 특히 오스트리아의 여성평화운동가인 베르타 폰 슈트너(Berta von Suttner)의 반전사상이 직접적인 계기를 부여했다. 서구여성들의 평화운동은 19세기 초에 시작된다. 이 시기는 나폴레옹전쟁(1797∼1815, 나폴레옹은 유럽제국과 60회나 되는 싸움을 벌임) 직후로서 일반대중이 전쟁의 큰 피해를 겪고 있던 시기였다. 전쟁이 멎은 후 서구사회는 봉건체제가 붕괴되고 민주주의로 이행하고 있었으며 이런 변화에 힘입어 1815년을 시발로 유럽과 미국에서는 수많은 평화운동단체들이 생겨났다. 이 무렵 여성들도 영국과 미국에서 전국여성평화협회를 창립하게 된다(1820∼1830).
그러나 세계사에는 또다시 제국주의 열강이 출현하고 식민지 쟁탈전이 심화되면서 수많은 전쟁이 이 시대를 할퀴었다. 불란서 혁명부터 제1차대전이 발발하기까지 세계 주요 국가의 전쟁 참가 횟수가 101회에 달할 만큼 전쟁은 그치질 않았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오스트리아의 여성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인 베르타 폰 슈트너(Berta von Suttner)는 1883년 <무기를 버려라>라는 반전소설을 발표해 대중의 열광적인 갈채를 받게 된다. 노벨은 이 소설을 통해 그녀의 반전사상에 영향을 받게 되고 마침내 평화상을 제정하게 된다.
19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평화운동은 국제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1889년에는 평화운동가들의 세계평화대회가 파리에서 열리고 1899년에는 정부대표들이 참석한 만국평화회의가 헤이그에서 열린다. 이때 강렬하게 평화운동을 전개한 지도자가 바로 베르타 폰 슈트너였다. 그는 유럽 각지를 돌며 전쟁을 폐지하고 국제분쟁을 조정할 사법재판소의 설치를 주장했다.
오늘의 국제연합, 사법재판소, 안전보장이사회 설립이 이런 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이런 평화운동의 결과로 1905년 노벨평화상의 첫 여자 수상자가 된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평화운동을 하며 여성평화당을 조직하고 1차대전 중 유일하게 국제여성대회(1915)를 열고 전쟁반대를 결의했으며 후일 WILPF의 첫 회장이 된 제인 아담스(미국)는 1931년 두 번째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된다.
이렇게 전쟁거부운동으로 시작된 여성들의 평화운동은 이후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여성들은 이제 원주민 인권운동, 자선운동, 민주화운동, 군축운동, 대국제지뢰금지운동 등에서 평화적 지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확장시키고 있다. 그 공로로 지금까지 노벨평화상을 받은 여성은 모두 10명이다.
1946년에는 세계WILPF 명예회장이었던 미국의 에밀리 발취(Emily Greene Balch)가, 1976년에는 북아일랜드의 베티 윌리암스(Betty Williams)와 메이리드 코리간(Mairead Corrigan)이 아일랜드의 평화정착에 공헌한 공로로 평화상을 공동수상했다. 1979년에는 마더 테레사 수녀가 인도에서 빈민구제운동을 벌인 업적으로 수상하고 1982년에는 스웨덴의 군축평화운동가이며 작가이자 외교관이었던 알바 뮈르달이 수상자가 되었다. 1991년에는 미얀마의 야당 지도자 아웅산 수지가 인권운동, 민주화운동을 이끈 공로로 수상했고, 1992년에는 과테말라의 원주민 인권운동가 리고베르타 멘츄가, 1997년에는 미국의 조디 윌리암스가 국제대인지뢰금지운동으로 각각 수상자가 되었다.
노벨상의 다른 분야에서도 많은 여자 수상자가 배출되었다. 노벨문학상에서 9명, 생리학/의학상에서 6명, 화학분야에서 3명, 물리학에서 2명 등을 포함, 모든 분야에서 30명의 여성이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다.
이제, 마침내 한반도에 노벨평화상이 찾아온 고무적인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한반도에 모종의 긍정적 평화바람이 불어올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아 더 없이 희망적이고 가슴 벅차다. 남아공과 동티모르의 경우처럼 말이다.
한반도에서의 인권운동, 민주화운동, 남북화해와 평화를 이끌어낸 공로가 인정된 이번 평화상의 수상 의미는 매우 크다. 우선 이번 수상은 한국민의 평화능력을 국내외적으로 인정받고 확인받게 했다는 점이다. 마지막 냉전의 섬으로 일컬어지는 분단상태는 국제적으로 한국민을 ‘화해할 줄 모르는 백성’으로 상징하는 듯해서 늘 우리를 곤혹스럽게 했다. 동족을 적대시 하면서 느끼는 민족 내부의 좌절감과 자괴감도 컸다. 이런 점에서 노벨평화상은 남북한 국민에게 평화능력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다.
평화상 수상의 또 다른 의미는 한반도와 동북아에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 등의 보편적 가치를 사회의 중심 가치로 뿌리내리게 하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점이다. 가부장적이고 군사주의적인 한국사회와 아시아에서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에 대한 신뢰와 실천은 여전히 취약하다.
무엇보다 이번 수상이 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에 대한 관심을 확장시키고 평화에 대한 대중의 의지를 자극하고 넓혀 나가리라 기대된다. ‘평화’에 대한 대중의 의지와 실천이 확고할 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앞당겨질 것이다.
이번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에 힘입어 평화에 대한 한반도 여성들의 열망과 실천이 커지는 날, 한반도에는 그만큼 통일의 희망이 열릴 것이며 노벨 평화상은 또다시 우리를 찾아 올 것이다.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확장시킨 공로로, 또는 여성의 인권을 고양시킨 공로로, 남북한의 여성단체가 공동수상자가 되는 날을 꿈꿔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그보다 먼저 남북한 정신대대책협의회가 또는 정신대 할머니들이, 역사의 진실을 밝혀낸 공로로 차기 노벨 평화상 공동수상자가 되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