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자유무역협정 좌초
[주간녹색좌파] 10/25 션 힐리
타이 치앙마이에서 열린 아세안(ASEAN) 경제장관 회의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
랜드의 아세안 “자유무역”협정(AFTA, 이하 아프타) 가입 신청을 거부한 10월 8일,
오스트레일리아 거대 기업들을 위해 더 큰 아시아 시장을 확보하려는 캔버라 당국
의 계획이 좌절되었다.
아프타와 오랜 역사를 지닌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사이의 긴밀경제관계협
정(CER, 이하 세르협정)이 통합될 경우 5억 3천만 인구와 9천 9백억 달러의 연간
총생산을 보유한 단일 시장이 창출될 예정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기
업계는 이러한 계획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세안 국가들이 동의할 수 있었던 내용은 라피다 아지즈 말레이시아 통
상장관의 제안, 즉 대화를 더 진전시킨 후 내년 아세안 정상회담에서 이 계획을
다시 다루자는 것이었다.
아세안 회원국들이 아프타 규정 아래 기존의 약속을 이행할 경우,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타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브루네이 등은 2002년까지 아프타 회원국
사이에 거래되는 생산품의 97%에 대한 관세를 0-5%로 인하하고 2005년까지는 이를
폐지해야만 한다. 각각의 서비스 부문에 대한 접근 제한 또한 상당히 완화될 것이
다.
아세안의 다른 네 개 회원국-버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의 경우 유예기간
이 더 주어지지만 2005년까지는 역내 교역 상품 대부분에 대해 0-5%의 관세율을
적용할 것이 예상된다.
아프타 하의 이러한 관세율은 아세안 역외 국가들의 상품에 대한 관세에 비해
대단히 낮아지게 될 것이다. 가령 2002년에는 역외 국가들에 비해 역내 관세가 농
산품의 경우 12-50%, 내구 소비재의 경우5-33% 수준이 될 예정이다.
제국주의의 우위
아프타와 세르협정이 통합될 경우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기업들은 상당한
경쟁 우위를 누리게 될 것이다. 이들 나라의 상품은 아프타 역외 국가들에 비해
아세안 시장에서 가격 및 접근상 우위를 누리게 되는 한편, 높은 수준의 생산성으
로 인해 아세안 내 다른 경쟁국들을 압도할 것이다.
아프타와 세르협정의 거래는 또한 아세안의 서비스 부문 자유화를 오스트리아와
뉴질랜드로 확대시킴으로써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의 거대 은행, 보험사, 전
자통신 회사들이 보다 용이하게 아세안 내에서 서비스를 개시하게 될 것이다.
마크 베일 오스트레일리아 통상장관과 통상관료들은 지난 6개월 동안 아프타와
세르협정의 통합에 관해 떠들어댄 바 있다. 국제경제센터(CIE)가 작성한 외무통상
부의 6월 보고서는 이번 통합을 통해 얻게 될 이득이 2020년까지 481억 달러에 이
를 것이라는 장밋빛 예측을 내놓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의 거의 절반인 225억 달러는 이 지역 인구의 4%에 불과하지
만 총생산고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가 차지하는 것이
다. 이 보고서도 인정하고 있듯이 아세안에서 가장 가난한 4개 국가는 아프타-세
르협정 통합으로부터 어떠한 이득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캔버라 당국은 아프타-세르협정 통합이 아세안에서 이미 합의된 바 이외의 어떤
다른 이슈도 포괄하지 않을 것이며 기존의 무역자유화 계획을 가속화시키진 않을
것이라고 애써 주장해왔다.
그러나 지난 8월 가조인되어 현재 뉴질랜드 의회에 제출되어 있는 뉴질랜드와
싱가포르 사이의 자유무역협정 조항들을 보면 아프타-세르협정 통합에 관한 캔버
라 및 웰링턴(뉴질랜드 수도) 당국의 계획이 아세안의 기존 합의를 훨씬 뛰어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무역 자유화
싱가포르와 뉴질랜드의 협정은 섬유, 의류, 신발 등 민감한 부문의 관세 인하
외에도 서비스 부문과 투자의 광범위한 자유화에 관한 조항도 담고 있다. 가령 이
협정은 양국 정부가 경쟁 표준 이외의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조달 정책에 기반하
거나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50%의 현지부품 사용을 명문화하는 것을 불법화하고
있다.
이 협정은 또한 1998년 국제적인 저항에 의해 좌초된 다자간투자협정(MAI)을 상
기시키는 수많은 투자 조치를 담고 있다. 이는 단기 자본 이동에 대한 통제의 도
입을 가로막는 등의 효과를 야기할 것이다.
이러한 반수용적(anti-expropriation; 수용이란 국가가 공익적 목적을 위하여
개인의 재산을 강제로 -그러나 대가를 지불하고- 취득하는 것이다. 다자간투자협
정을 모델로 한 대부분의 자유무역협정, 투자협정은 포괄적으로 투자를 보호함으
로써 사실상 수용을 금지하고 있다-옮긴이) 조치들은 각국 정부가 투자의 가치를
상당 수준 감소시키는 규제를 통과시키지 못하게끔 할 것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의 경우 이와 유사한 반수용적 조항들로 인해 환경파괴적 기업들을 폐쇄했
다는 이유로 각국 정부가 심각한 손해를 보았다.
이 협정은 또한 강력한 이행 조치를 명문화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통상 변호사
들의 비밀 위원단이 적법성이나 정부 법률, 징벌적 제재 수준에 관해 판결을 내리
게 된다. WTO의 경우 이와 유사한 위원단이 거의 항상 다국적기업의 교역 및 투자
“권리”를 최우선시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싱가포르와 뉴질랜드의 협정이 다른 아프타 회원국들로 확대된다면, 대부분 오
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가 소유한 다국적기업들은 상당히 강화되는 반면 가난한
나라들의 입지는 약화될 것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정확히 이러한 결과를 얻기 위해 로비를 벌이고 있다. 뉴질랜
드 기업로비단 아시아2000 재단(Asia 2000 Foundation)의 전무이사인 팀 그로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싱가포르와 뉴질랜드의 자유무
역협정은 -동남아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모두를 포괄하는 새로운 무역
블록의 가능성이라는- 실질적인 막판 협상을 위한 트로이의 목마이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이 “막판 협상”을 치앙마이에서 개시하기를 바랬
지만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등에 업은 말레이시아의 반대로 좌절을 겪었다.
변방으로 밀려난 정책
말레이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관계는 10년 넘게 적대적이었고 인도네시
아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관계 또한 동티모르의 폭력사태 이래 냉담해졌다. 그
러나 세 나라가 아프타-세르협정 통합에 반대한 이유에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자유
무역지대로 진입을 허용받을 경우 약탈적 행태를 보일 것이라는 우려 또한 있었
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국산차인 프로톤이 생산성에서 우위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의 거대 자동차 제조사들과의 경쟁으로 황폐화될 것이라는 정당한 우려를 표명하
였다.
한편 필리핀의 경우 오스트레일리아의 검역법이 자국산 파인애플과 바나나에 대
한 보호무역 정책의 형태로 행사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와 장기간
에 걸쳐 무역 분쟁에 휘말려 있다.
미국과 유럽을 좇아 1998년의 아시아통화기금(AMF) 설립 제안을 반대하고 그 대
신 이 지역에 대한 IMF의 개입 확대를 지지하기로 한 오스트레일리아의 결정 또한
아세안 정부들의 거부감을 부추겼다.
치앙마이에서 아프타-세르협정 통합 제안을 지지한 유일한 정부는 싱가포르와
타이뿐이었다. 싱가포르는 기존 수입관세가 거의 없으며 타이의 경우 말레이시아
가 보호정책을 부과하고 있는 자동차 시장에 진입하기를 바라고 있다.
아프타-세르협정 통합 계획을 둘러싼 이러한 마찰은 내년 아세안 정상회담을 앞
두고 확대될 가능성이 높으며 아프타, 심지어 아세안 자체의 붕괴를 야기할지도
모른다. 각국이 상당히 상이한 경제 전략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이 계획의 실패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무역정책을 변방으로 밀어넣었다.
지난 11월 시애틀의 대규모 시위와 빈국 대표단들의 반란으로 인한 WTO 뉴라운
드 개시 시도의 좌절은 폭넓은 다국간 협상을 통해 시장 확대를 도모하던 오스트
레일리아 기업들에 낭패를 안겨주었다. 농산물 및 서비스 자유화 확대에 관한 협
상이 WTO 본부에서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는 자신의 의제를 강제
할만큼 영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10월 12-13일 캐나다 뱀프에서 열린 농산물
수출국 모임 케언즈 그룹의 정상회담에서 베일은 미국, 유럽, 일본 등의 농산물
수입에 대한 높은 보호장벽을 낮추도록 하려는 시도가 실패했음을 인정하였다.
이제 남은 무역정책인 양자간 협상 또한 성과를 낳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베일
과 그의 기업계 친구들로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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