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위 ‘합의문’ 왜 문젠가>
사용자쪽 주장 전폭수용…’도입 않느니만 못한 결과’ 불보듯
노동시간단축과 관련 노사정위(위원장 장영철)가 내놓은 이른바 ‘합의문’은 주5일근무제를 껍데기만 남게 만들고 노동조건의 대대적인 후퇴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긴장을 늦춰서는 안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문구는 ‘관련임금 및 휴일·휴가제도 개선’, ‘업종과 규모를 감안’ 등이다. 이는 휴일휴가를 축소하고 주5일근무제를 단계적으로 실시하자는 사용자쪽 주장을 수용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또 일부 언론이 노사정위 합의가 발표된 뒤 일제히 사용자쪽 주장을 기정사실화하는 사설을 내놓고 있어 이런 의혹에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민주노총이 ‘2001년부터 전산업·전규모에 노동조건 후퇴없는 주40시간제 실시’를 못박고 있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한국노동연구원은 주44시간에서 주43시간, 주42시간, 주41시간 등의 중간단계를 거쳐 주40시간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자본과 정부는 여기에다 10여년에 걸쳐 주40시간제로 옮아갔다는 일본의 사례를 빼놓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는 주48시간제부터 계산했기 때문이며, 실제로 주44시간제에서 주40시간제로 옮아가는데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94~97년). 프랑스 1936년, 미국 1938년 등을 비롯해 대부분의 주요 선진국들이 주5일근무제를 도입한 것은 이미 1970년대 이전이다. 한마디로 계산상으로 가능할 뿐인 주43시간제, 주42시간제 등은 억지단계라는 지적이다.
또 규모별, 업종별 단계적 실시 방안 역시 기업쪽 사정만을 고려한 것으로 주5일근무제 정착에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라는 게 민주노총의 입장이다. 주5일근무제를 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 효과가 전 노동자에게 한번에 골고루 돌아가도록 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이를테면 ‘실근로시간이 짧은 업종과 대규모 사업장부터 실시’하는 경우 영세·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장시간 노동에 따른 차별에다 주5일근무제 실시로 인한 이중차별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경총 등 재계는 주5일근무제가 실시되면 휴일이 늘어나므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월차, 생리휴가는 폐지 또는 무급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사정위 합의는 ‘휴일·휴가제도를 국제기준에 걸맞게 개선·조정’한다고 해 사용자쪽의 주장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주5일근무제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으로 지적된다. 월차·생리휴가가 폐지될 경우 여성노동자의 경우 연 24일의 유급휴일이 없어짐으로써 단순 계산으로도 주5일 근무제는 실시하나마나한 셈이 된다.
세계적으로 봐도 기준 노동시간을 단축하면서 휴일·휴가를 축소한 예는 없다. 또한 대부분의 나라가 휴가를 늘리고 있는 추세여서 주5일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휴가를 줄일 조건이 아니다. 우리나라 연월차휴가일수 22일은 ILO 최저기준인 ‘3주 이상’을 겨우 충족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나 사용자 주장처럼 월차휴가를 폐지하면 연10일의 연차휴가만 남게 돼 국제노동기준에 크게 못 미치게 되는 것이다.
한편 경총 등은 현행 초과근로 할증율을 50%에서 25%수준으로 낮출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ILO기준도 25%이고 우리나라 할증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는 근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쪽의 주장은 노동시간단축의 방향과는 거리가 먼 ‘거꾸로 가기’이거나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다. 초과근로의 주도권이 사용자에게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할증율을 높여 초과근로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ILO조약은 초과근로 할증율을 25%이상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ILO 기준을 근거로 할증율을 낮추자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실제로 ILO가 조사한 각국의 초과임금율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체 78개국 가운데 44개국이 50% 이상의 할증율을 적용하고 있고 노동부가 최근 펴낸 자료에도 비교대상 20개국 가운데 할증율을 50%이상 지급하는 곳이 11개국이고 25%이상 지급하는 곳은 7개국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번 정기국회에 주40시간으로 법정노동시간단축, 연장근로 제한, 연차휴가 부여요건 완화 등을 뼈대로 한 입법청원을 이미 낸 상태다. 이와 더불어 민주노총은 노동조건 후퇴없는 주5일근무제 입법에 정부가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하는 한편 노사정위가 노동조건 개악과 단계별 실시를 합의한다면 총파업 등 강력한 총력투쟁으로 분쇄할 뜻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재철 leecc@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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