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간추린 생애

·1948년 8월26일 대구에서 아버지 전상수와 어머니 이소선씨의 2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남.

·1954년 여름 아버지의 양복제조업이 오랜 장마로 타격을 받자 가족들과 함께 상경.

·1956년 서울 남대문초등공민학교 2학년에 편입.

·1960년 브로커의 배신으로 아버지 의류제조업 실패. 남대문국민학교에 편입.

·1963년 대구 청옥고등공민학교 입학. 그해 겨울 ‘학교를 그만 두라’는 아버지의 말을 뿌리치고 무작정 상경했지만 사흘만에 집으로 돌아감.

·1964년 봄 평화시장 시다로 취직.

·1966년 가을 평화시장 뒷골목 통일사에 미싱사로 취직. 그러나 곧 한미사에 재단보조로 자리를 옮김.

·1967년 2월24일 재단사가 됨. 아버지한테서 노동운동과 근로기준법에 대한 얘기를 들음.

·1969년 젊은 재단사들의 모임인 바보회를 꾸려 회장에 뽑힘. 근로기준법과 밤을 새워 씨름함. 그해 6월 아버지 세상을 떠남.

·1969년 여름 평화시장 업주들 사이에 ‘위험분자’로 소문이 퍼짐. 8~9월 노동실태 조사용 설문지를 평화시장 노동자들에게 돌림. 설문결과를 모아 시청 근로감독관과 노동청을 찾았으나 무성의한 태도에 충격을 받음.

·1969년 가을 막노동판을 전전함. 겨울 바보회의 활동은 거의 정지상태에 들어감.

·1970년 3월 근로기준법을 준수해 종업원들에게 인간다운 대우를 해주는 모범적인 피복업체를 만들기 위한 계획에 매달림.

·1970년 8월9일 삼각산 공사판에서 일하다 평화시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

·1970년 9월 왕성사에 재단사로 취직한 뒤 바보회 회원을 규합해 근로조건 개선을 목적으로 한 삼동친목회로 개편.

·1970년 10월6일 노동실태조사 설문지 1백26매를 걷은 뒤 노동청장 앞으로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개선 진정서’를 제출함.

·1970년 10월7일 경향신문에 평화시장의 참상에 관한 보도가 실림.

·1970년 10월20일, 24일 데모계획을 세웠으나 근로감독관과 경찰의 속임수로 보류함.

·1970년 11월13일 낮 1시30분경 삼동친목회가 계획한 데모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몸을 불사름.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며 이날 밤 10시 숨을 거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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