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노동상’을 보면

민주노조운동의 역사가 보인다

1987년 여름, 전국의 노동자들은 너나없이 전태일이 되었다.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방방곡곡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노동자들의 이 위대한 대투쟁 뒤 전태일기념사업회는 ‘전태일노동상’을 만들어 그해 노동해방·인간해방을 모범적으로 실천해온 단체나 개인을 시상해왔다.

첫 시상식이 88년 11월 맨 처음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서울 연세대)에서 진행됐다. 수상자는 87년 노동자대투쟁의 기폭제가 됐던 현대엔진노조 결성의 주역 권용목씨. 당시 권씨가 구속상태였던 사실이 보여주듯 3회(1990년)까지 수상자는 군사독재의 폭압에 맞서 눈부시게 싸운 사람들이었다.

제2회상(1989년)은 마창노련과 전교조가 함께 받았다. 그해 5월 설립된 전교조는 군사독재의 온갖 탄압과 왜곡에도 굴하지 않고 ‘교사도 노동자’임을 선포했으며, 학생과 학부모를 비롯해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끌어냈다. 마창노련은 통일중공업을 비롯한 마산·창원지역 노조들이 87년12월 전국 최초로 결성한 지역노조협의회였다. 군사독재의 탄압에 효과적으로 대응키 위해 전국 각지에서 잇따라 결성된 지역노조협의회의 시발점이자 모범으로 인정받았다.

제3회 수상자(1990)는 전노협이다. 89년1월22일 민자당과 같은 날 탄생했으나 정반대의 운명을 타고난 전노협은 현대중공업노조의 1백28일 고공파업에 총파업으로 연대함으로써 헌신적 투쟁이 인정됐다.

이후 전태일노동상은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시상이 중단된다. 이 기간 전태일기념사업회가 여러 어려움으로 활동이 정지됐던 탓이다. 기념사업회는 1994년께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기획하며 사무국이 다시 활기를 띄게 됐고, 이듬해인 1995년 전태일노동상 시상을 재개했다. 최초로 소산별노조를 결성한 전국과학기술노조가 제4회 수상자에 뽑혔으며, 5회상(1996년)은 민주노총 건설에 앞장선 서울지하철노조와 기아자동차노조에 돌아갔다.

1997년 이후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국제통화기금(IMF)시대에 접어든 한국 노동자들의 고통과 투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수상자들은 일방적인 기업퇴출, 정리해고로 길거리로 내몰려 끈질기게 싸운 노동자들이 주류를 이룬다. 제6회 수상자로는 정리해고에 따른 고통과 그에 굴하지 않는 투쟁의 상징으로 떠오른 삼미특수강노조와 전교조 노옥희 울산지부장이 함께 선정됐다. 노지부장은 87년 이전인 울산현대공고 재직시절부터 지역노동운동에 헌신해온 점이 인정됐다. 이듬해(1998년)에도 기업퇴출로 임금과 퇴직금이 체불된 상태에서 고용승계를 위해 수백일 동안 싸운 동아엔지니어링과 현대중기산업노조가 7회수상자로 뽑혔다. 제8회상(1999년)은 법정관리 상태에서 노동3권과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킨 한라중공업노조와 택시월급제 쟁취를 위해 11개월간 투쟁한 고려운수노조에 돌아갔다.

현재 후보추천을 받고 있는 9회 수상자가 어떻게 결정될지 벌써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정경은 joungke@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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