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좇아 만나는 열 한 가지 모습
‘연극 전태일’에는 모두 11명의 전태일이 나온다. 분노하는 전태일(1), 의젓한 전태일(2), 공부하는 전태일(3), 기쁜 전태일(4), 슬픈 전태일(5), 발로 뛰는 전태일(6), 절망하는 전태일(7), 분열된 전태일(8), 사랑하는 전태일(9), 지도자 전태일(10), 어린양부리는 전태일(11)이 그것. 전태일을 이루는 각각의 상징기호가 자연과 사회의 모습으로 배경을 채운다.
때는 1960년대 말. 농촌의 해체로 도시에는 값싼 노동력이 넘쳐나고 있다. 성장과 속도만이 미덕일 뿐 노동조건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서곡. 가난에 시달리던 전태일이 동생 순덕을 업은 채 ‘언젠가 가족이 함께 살 날’을 그리며 상경한다. 그는 순덕을 고아원에 맡긴 뒤 평화시장의 시다가 된다. 그가 다시 찾아갔을 때, ‘저녁에 찾으러 오마’는 거짓말로 버리듯이 두고 왔던 동생은 오빠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고아원의 규율과 반복교육에 길들여진 자동인형처럼 말할 뿐이다.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순덕 또래의 어린 여공들과 일한다. 그들은 장시간노동과 저임금에 혹사당하며 공부는 꿈도 못 꾼다. 그는 자신의 차비로 풀빵을 사주고 일을 도와주며, 온정을 베푼다. 그러나 전태일은 미싱사의 각혈과 부당해고에는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다.
아버지를 통해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전태일은 온정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동료 노동자들을 조직한다. 철야와 야근에 지친 젊은 재단사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설명해주고 여공들에게 글을 가르친다.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평화시장의 근로기준법 위반실태를 고발하고 폭로한다.
그의 노력에도 평화시장은 바뀌지 않고 사회의 무관심은 최소한의 근로조건 개선도 허용치 않는다. 동료 노동자들 또한 현실의 벽 앞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며 어렵사리 결성한 ‘바보회’를 탈퇴한다. 평화시장을 떠났던 전태일은 공사장 인부의 죽음을 접하며 온 세상이 비정하고 잔혹한 현실 때문에 신음소리로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현실도피가 아니라 고통의 한가운데 있는 평화시장과 어린 동심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이후 여러 차례의 시위와 노동청 항의방문을 감행하나 현실의 벽은 높을 뿐이다. 그는 몸에 불을 지핀 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일요일은 쉬게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치며 죽는다. 작업장 미싱사들의 몸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푸른 싹이 돋고 그 싹은 전태일을 덮는다.
2000년 11월9일(목)∼10일(금) 오후4시, 8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정경은 joungke@nodong.org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