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민종덕(48) 전 청계피복노조 위원장

“전태일정신을 현실의 운동좌표로 끝없이 다듬어야”

전태일은 길지 않은 삶을 통해 많은 것을 남겼다. 그 가운데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람과 조직이다. 그의 처절한 죽음을 계기로, 그리고 그의 치열한 삶을 통해 많은 사람이 ‘인간다운 노동’을 위한 싸움에 투신했고, 청계피복노조라는 조직이 결성됐다. 민종덕(48)씨는 이 두 가지 요소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 중의 한 사람이다. 60년대말 서울로 옮겨와 제분소, 보석가공소 등을 떠돌던 민씨는 74년 평화시장(쌍비둘기사)에 시다로 취직했다. 75년 본격적으로 노조활동을 시작했고, 77년부터는 노조에 상근했으며, 81년 강제해산된 노조를 84년에 복구해 위원장을 맡았다. 85년 8월에는 서울노동운동연합 사건(위원장)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지금은 생업에 꾸리면서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고 70년대 민주노동운동 동지회에 참여하고 있다.

△노조활동을 시작한 동기는.

=서울에서 노동자생활을 시작했지만 희망도 없었고 미래가 막막했다.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도 많았다. 여기저기 헌책방을 돌아보던 중 <신동아>에 실린 전태일 관련기사를 보고 나름대로 큰 충격을 받았다. 전태일의 수기를 읽으면서는 노동자로서 한줄기 빛과 희망을 찾게 됐다. 곧 이소선 어머니를 찾아가 “전태일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말씀드린 뒤 평화시장으로 갔다.

△삶에서 전태일이 지니는 의미는.

=나에게 전태일은 절대적 존재다. 힘들거나 두려울 때 전태일은 항상 용기를 줬다. 일이 잘 안 풀릴 때나 내부갈등이 있을 때 우리는 전태일 묘역에 가서 토론했다. 그러면 다 잘 풀렸다. 사무장을 맡고 있던 81년, 노조가 권력에 의해 강제로 해산됐다. 노조간부로 있으면서 무기력하게 당하는 심정을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고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다. 전태일은 엄혹했던 시기에 투쟁을 조직하고 노조복구를 위한 비공개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70년대 청계노조의 꿈과 투쟁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었다. 소박하지만 큰 주제라고 생각한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투쟁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나름대로 사명감 같은 것을 갖게 됐고 늘 투쟁에 앞장섰다. 노조라면 어용인 한국노총밖에 없었는데, 단순히 노동자 권익쟁취에 무관심한 데 그치지 않고 노동자 탄압에 앞장섰다. 노동자 의식은 기업별 의식에 머물러 있었고 탄압은 계속됐지만 우리는 사명감과 의무감을 바탕으로 민주노조의 교류와 연대투쟁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75년12월23일 노동시간단축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요구는 첫째 모든 공장상가 건물은 저녁 8시에 무조건 소등, 둘째 다락방 철폐, 셋째 주휴근무 실시 등이었다. 요구가 모두 관철되자 노조는 엄청난 대중성을 확보했다. 배움에 굶주렸던 조합원들은 노동교실에서 일을 끝낸 뒤 중학과정을 공부하고 노동자 의식도 깨쳐나갔다.

이렇듯 대대적인 의식화작업이 이뤄지자 권력은 위협을 느꼈다. 권력은 77년7월 이소선 어머니를 구속하고 노동교실을 강제로 폐쇄했다. 노조활동가와 조합원은 ‘이대로 물러서면 안된다’는 각오로 9·9결사투쟁을 감행했다. 유서를 쓴다는 결의로 결사선언문을 쓴 뒤 노동자들은 투신하거나 할복하며 목숨을 건 투쟁을 벌였다.

△오늘 특별히 강조돼야할 전태일 정신이 있다면.

=이는 내가 말할 게 아니라 민주노총이 규명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다만 민주노동운동의 뿌리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태일정신 계승’을 노동자대회 명칭에 넣느냐, 빼느냐가 논란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이 문제가 논란거리가 된 현실이 서글프다.

87년 이후 노동운동의 비약적 발전이 있었지만 우리의 정신적 자산을 외면한다면 노조운동은 그야말로 경제적 이익만을 지키는 투쟁에 머물게 된다. 우리사회를 변화·발전시키는 중심세력으로 성장해나가려면 정신적 좌표 혹은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 노동운동의 정통성과 전통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오늘의 전태일 정신과 노동운동의 좌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현재화해야 한다. 그래야 전태일이 박제화되지 않고 살아있는 전태일로 남을 수 있다.

이재철 leecc@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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