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일기
더 잘 살기위해, 살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산부인과 외래 실습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환자들이 너무도 다른 모습과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이었다.“Individual Approach.” 똑같은 병을 가지고 있어도 그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접근은 결코 똑같지 않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그 사람이 처한 사회적 환경이 다르고 경제적 여건이 다르고 병에 대한 개인의 대처방식 또한 다르다는 뜻이다.
부인과 외래를 찾는 환자 중에는 무월경을 주 증상으로 내원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환자는 폐경기 증상 때문에 호르몬 치료를 받기 위한 경우이다. 여성에게 있어 폐경이란 생물학적으로 볼 때 결국 일종의 노화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호르몬 치료가 무슨 절대적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아니고, 보다 질 높은 삶을 누릴 수 있는 수단이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또 다른 환자군은 특정 부인과적 질환을 가진 경우다. 대개 생식기 종양이 많은데, 당장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병들이기 때문에 좀 더 조심스럽게 여러 검사를 거치고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위해 애를 써야한다. 물론 이후 치료 역시 마찬가지이고, 그런 면에서 환자 또한 스스로의 몸에 대한 절실함이 폐경 환자보다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날의 실습에서는 돌아서서 찔끔 눈물을 닦아야 했던 환자가 한 명 있었다. 이제 각 30살을 넘겼을까… 파킨슨병 치료제 때문에 무월경이 생기는 그 환자는 바싹 마른 상태로 손을 떨면서{ -파킨슨병의 주요증상 중 하나. 파킨슨병은 뇌의 신경전달체계에 이상이 생긴 질병.-말을 하기 위해 힘들게 입을 떼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교수가 치료방침을 말하자, 지금까지 들어왔던 수많은 환자들이 고분 고분 순종(?)했던 그 말에 그 환자는 대뜸 질문을 했다. “선…생님, 지금 제가 약을… 바꾸고 있는 중이거든요… 이번에 새로 나왔다는 약인데… 그거 먹어 보면서 상태를… 지켜보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그 환자의 말 한마디, 그리고 말을 할 때의 그 눈빛은 지금 이 사람이 얼마만큼 절박함을 호소하고 있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지만, 의외로 교수의 대답은 간단했고 내진-산부인과에서 하는 검진 중 하나. 어쩔 수 없이 환자는 하의를 벗고 잠깐동안 옆에 있는 침대에 누워야 한다. -을 받은 후 혼자서 일어나지 못해 “누가 나좀 일으켜 주세요.”라는 환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교수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더 잘 살기 위해, 살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위에서 든 예들과 연결이 정확히 잘 되는지는 모르겠다. 의사라는 직업이 남달리 어려운 점이 있다면, 환자들의 그런 여러 정도의 수준에 맞게 적절히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어쩌면 작금의 상황에서 지금 우리 스스로에게도 가장 절실한 건 그런 상대적 가치에 대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이해와 인정함이 아닐지.
<조김영재chokimyj@hanmail.net>
<조김영재는 서울대 의대 본과 3년 재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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