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미] 무익한 노동의 시작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닌 게 있다. 시간이다. 시간에 대한 소유권을 빼앗긴 자의 삶이란 무익하고 가망없는 헛됨의 연속일 뿐이다. 빼앗긴 시간에 의해 박탈당하고 마는 삶과 한 낮 공상속으로 소멸되어 버리는 미래. 그 원인으로서 무익함이란 한줄기 희망으로서의 미래마저 위협하고 만다.
한국사회의 젊은 청년에게 병역은 의무다. 애국(?)의 의지가 있던 없던, 그 방향과 역할의 선택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정 시간은 규정된 틀에서 국가권력을 위해 종사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병역의 의무로, 규정된 틀로써 병역특례를 선택했고, 역시 최소 생계 가능한 임금을 받으며 임노동자로 살고 있다. 성실종사 계약서를 쓰고, 지정된 사업장 이외의 외근은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3년의 종속기간으로 인한 부당 대우를 일정 정도 감수해야 된다. 또한 중소기업의 특성상 주 평균 노동시간 60시간 역시 감수할 짐이다.
그러나 난 이쯤에서 내 생활의 부당함 혹은 불평등함을 토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업장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우리 공장의 일반노동자와 기본급의 차이를 제외한 다른 차별(야근수당, 의료보험, 휴일 등)은 없을뿐더러, 내가 느끼는 생활고란 우리 공장의 일반 임노동자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만은 무노조, 과다 노동시간, 박한 임금, 산재부재, 관리자들에의 권력집중 등 사업장의 특성과 관련된 것으로 제한된다. 오히려 거처가는 시간으로 생각했던 3년의 생활이 임노동자에게는 평생이 될 수 있다는 점과 나 또한 임노동자일 수밖에 없는 내 미래를 생각해 보게 된다.
누구의 말대로 시간은 곧 돈이다. 역으로 돈은 곧 시간이다. ‘존재성을 찾지 못하는 노동’은 ‘헛된 노동’이고 그에 투여된 시간은 헛된 시간이다. 우리에게 돈이란 헛된 노동에 투여될 시간을 줄여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삶의 추구와 행복에의 의지를 가능케 할 수 있는 건 돈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 사회에서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혹은 ‘어떤 형태로든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난은 헛된 노동의 동기가 되고 그로 인한 시간의 허비는 행복을 추구할 여유를 빼앗고 만다. 그리하여 노동은 대개의 경우 허비하는 시간이 된다.결국 임노동자란 시간에 대한 소유권을 빼앗김으로써 국가권력을 포함한 자본의 평생 의무 종사자가 되고 만다. 이들에게 행복은 비극이다.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집착은 아직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했던가? 내 삶의 해방의지와 그 출발은 ‘무익한 노동의 시작과 오래일지 모를 지속’에 대한 인정에서 비롯될 것 같다.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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