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사용료 징수 촉구
미군기지로 사용되는 우리땅을 되찾기 위한 운동이 단일한 전국조직
아래 벌어지게 되었다.
서울, 인천, 대구, 평택 등 전국 11개 지역의 우리땅되찾기 운동단체들
과 녹색연합, 전국연합, 주한미군범죄근절을 위한 운동본부 등은 22일
오전 기독교연합회관에서 모임을 갖고 「우리땅미군기지되찾기 전국공
동대책위원회」발족식을 가졌다.
이병수 의정부시민광장 사무국장은 “각 지역에서 분산적으로 대응해오
던 미군기지 문제를 전국조직을 통해 단일하고 상시적으로 대응하게
됐다는 점에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날 발족식에는 니시요 목사, 시라 마쓰 도쿄 사회운동가 등
오끼나와 미군 기지 반환운동을 벌여온 일본인 20명이 참석해 연대
의 뜻을 표시했다. 일본인들을 포함한 참석자들은 낮 12시 용산 미군
기지 앞에서 열린 135차 금요시위에 참가해, 최근 일본 언론을 통해
알려진 열화우라늄탄(저준위 핵무기)의 한국 반입을 규탄하고, 미군기
지 반환운동에 대한 한일 공동투쟁을 천명했다.
이날 발족식에 앞서 21일 우리땅되찾기 공대위는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안(소개 의원, 김근태)을 국회에 청원했다. 이번 개정안은 미군기
지 사용에 임대료를 징수하고 그 사용기한을 명시하는 것 등을 골자
로 하고 있다.
<<<<우리땅 미군기지 되찾기 전국공동대책위 출범 선언문>>>>
우리는 아무 대안 없이 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는다. 도심에 있는 미
군기지를 시외곽이나 시골로 이전하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미군기지
가 우리 지역으로 오는 것만은 안된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미군기지의 임대기간을 정해 임대료를 징수할 것을 주장한다.
또한 우리는 미군이 현재 안 쓰고 있는 기지를 당장 돌려달라고 주장
한다. 우리의 주장은 필리핀이나 호주처럼 하자는 것이다. 아니, 최소
한 오키나와처럼이라도 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상황
이 다르다는 말도 듣는다. 그들은 분단되지도 않았고, 동족끼리 전쟁을
한 경험도 없다는 것이다. 맞다.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는 분명히 다르
다. 유럽에서 전범국인 독일을 나눠 가진 승전국들이 아시아에서는 역
시 전범국인 일본을 나눠 갖지 않고 우리나라를 나눠 가졌다.
승전국 미국의 감시를 받는 전범국 일본의 미군기지도 임대기간과 임
대료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무기한이다. 통일후에도 다. 아니, 주둔해야 된단다. 그러나 미군 주둔으로 피해를 보는 주민들
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거의 없다. 독도가 우리땅인 것처럼, 미군기지
도 분명 우리땅이다. 불났을 때 꺼주고, 도둑도 지켜주는 일은 분명히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가 집에 들어와 어머니, 아내나 딸을 겁
탈해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살인, 강도, 강간 등 온갖 미군범죄! 공
짜로 쓰는 1억평의 미군기지! 그런 미군기지를 우리가 필요해서 잠깐
이라도 사용하려면 오히려 우리가 사용료를 내야 한다. 그것도 이따금
씩 인상해 주어야 한다.
공짜로 집 한 채를 빌려주었다가, 방 한 칸이 필요해서 쓰자니까 방세
를 내라는 격이다. 땅주인도 모르게 국가가 미군에게 쓰라고 준 땅이
시 전체 면적의 51%가 넘는 곳도 있다. 길도 못내고, 도시개발계획도
제대로 세울 수 없는 곳은 너무나 많다. 소음과 수질오염, 토양오염으
로 고생하는 주민도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그런데도 말 한 마디 못한
다. 이래서는 주인이라고 할 수 없다. 이래서는 우리나라가 엄연한 독
립국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제는 말해야 한다.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
이고, 이제는 말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이런 생각을 “미군기지 반환
운동”이나 “미군기지 되찾기”라고도 부른다. 전국에는 96개의 미군기지
가 있다. 그 가운데 11 지역에서 이런 운동을 하고 있다. 그 11지역의
미군기지 반환운동 지도자들과 미군기지의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애쓰
는 녹색환경운동의 지도자들, 미군범죄를 뿌리뽑고 불평등한 한미주둔
군지위협정을 전면개정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시민운동의 지도자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이름하여 우리땅미군기지되찾기 전국공동대책위원회!
이 이름으로 우리는 주인된 권리의 극히 일부분을 되찾았다. 우리땅미
군기지되찾기 전국공동대책위원회 만세!
97년 8월 22일
1997년 8월 23일 토요일 제9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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