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변혁을 예고하는 미국 대선 사태
장석준(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 교육부장)
2000년 미국 대선은 개표 이후까지도 민주당의 고어와 공화당의 부시 사이의 엎
치락뒤치락하는 혼전으로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도 플로리다에서는 팜비치카운티의 수작업 재검표가 한창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
이면에서는 미국 역사의 근본적인 변화의 조짐이 될지도 모를 보다 심원한 움직임
이 감지된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녹색당 대통령 후보로 나온 랠프 네이더의 선전
(善戰)이다.
‘역사’ 바깥으로? – 네이더 선거운동
랠프 네이더는 60년대에 GM 등 독점기업들이 생산한 제품이 얼마나 소비자를 우
롱하고 있는가를 폭로해 미국사의 한 장을 장식한 전설적 소비자운동가다. 우리나
라로 치면 소위 ‘시민운동가’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는 최근 노동조합과 사회운
동 세력들이 벌이는 세계화 반대 투쟁에서 지도적 역할을 맡아왔으며, 노동당 당
대회에 참석해 진보적인 제 3당을 만들기 위해 힘을 합칠 것을 역설하는 등 우리
나라의 시민운동가들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인다.
네이더는 96년에도 녹색당 대선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실질적
인 선거운동은 벌이지 않고 그저 상징적인 독자후보에 그쳤었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는 실질적인 선거투쟁이었다. 연초 본격적인 캠페인에 들어가면서는 한때 7%
에 육박하는 지지를 획득하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분명히 시애틀과 워싱턴의 세계
화 반대 투쟁의 여파가 한 몫 했다. 한때는 민주당 주류에게 실망한 일부 거대 산
별노조(전미자동차노조(UAW), 그리고 보수파가 장악하고 있는 팀스터까지도!)의
지도자들로부터도 우호적인 반응을 얻었었다.
운동 과정에서 네이더는 누구누구처럼 표를 더 얻기 위해 의식적인 우경화를 감
행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할 말은 다 한다”는 것이 네이더 선거운동의 기조
였다. 네이더의 유세장은 사회복지제도의 확충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사형제
도 폐지 등에 대한 대중적 집회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물론 이러한 요구들은 한창
때의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강령 수준에 그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미국 상황에서
이 정도 요구라도 선명하게 내세우는 세력이 하나의 선택지로 등장했다는 것은 분
명 범상치 않은 의미를 지닌다.
또한, 아랍계라는 네이더의 혈통은 리버만을 부통령으로 지명함으로써 유태인
세력과 손잡은 고어에 대한 더할 수 없는 상징적 저항이었다. 팔레스타인에서 학
살극이 계속되는 동안 치러진 이번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그 어떤
세력도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조차 비추지 않았다. 같은 아랍계인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적처럼 네이더는 어쨌든 미 제국주의의 ‘구멍’이었다. 물론
녹색당은 이번 선거에서 정당국고보조금을 얻을 수 있는 5%선을 돌파하는 데는 실
패했다. 하지만, 전국 평균 2∼3%를 넘는 득표율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된다. 주
(州)에 따라서는 5%에 육박한 곳도 있다. 이는 20세기 초 사회당의 유진 뎁스, 2
차대전 직후 진보당의 월레스 이후 미국 대선에 출마한 진보적 후보들 중 가장 열
렬한 지지를 얻은 것이다.
한편, 네이더 선거운동은 비단 녹색당만의 것은 아니었다. 네이더의 나름의 성
공은 클린턴 정부 아래서 민주당의 우경화에 실망하고 시애틀 투쟁 이후 세계화에
반대하는 직접연대투쟁에 고무된 광범한 사회 세력의 지원으로 인한 것이었다. 여
기에는, 여전히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에 머물고 있는 미국노총산별회의
(AFL-CIO) 지도부에 반발한 전투적 노동조합운동 세력, 최근 제 3세계 고착취 노
동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급격히 부활하고 있는 학생운동 세력, 녹색당의 뿌리인
환경운동 세력 등이 포함된다. 이는 80년대 중반 민주당 대통령후보 선거에 도전
한 제시 잭슨 목사의 주위에 결집했던 소위 ‘무지개연합’만큼이나 광범한 진보연
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네이더 선거운동에 자원활동가로 참여한 한국 유학생
들의 전언에 따르면, 이는 결코 녹색당이라는 일개 정당의 정치활동이 아니었으며
미국 내 광범한 진보운동의 정치적 축제였다고 한다.
하지만, 네이더 선거운동의 약점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비록 매닝 매러블, 지미
하이타워 같이 제시 잭슨의 ‘무지개연합’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흑인 좌파
지식인이 결합하긴 했지만, 기층 흑인사회는 여전히 고어에 대한 비판적 지지에
머물렀다. 그래서 이번 네이더 선거운동은 과거 잭슨의 민주당 후보경선 캠페인과
비교해보았을 때 백인 편향적인 한계가 뚜렷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잭슨의 경험보다 훨씬 발전된 점도 있다. ‘무지개연합’
이 잭슨의 민주당 잔류로 인해 결국 형해화됐다면, 이번 네이더 선거운동의 경우
는 녹색당이라는 독자정당의 존재 때문에 그 때와는 다른 장기적 파장을 그릴 것
으로 예측된다. 아래로부터의 공동선거투쟁의 경험에 기반해서 녹색당, 노동당,
신당(New Party)의 스펙트럼을 포괄하는 보다 강력한 진보적 제 3당을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힘을 받을 가능성이 무르익은 것이다.
많은 이들이 미국에 대중적 사회주의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미국 역사의
구조적 차원으로 설명해왔고, 이는 흔히 조악한 숙명론-미국 역사에서 민주당 비
판적 지지 외에 민중의 대안은 없다는-의 근거가 되곤 했다. 그러나, 미국 역사를
사려깊게 검토해본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역사(the History)’로부터 벗어나
려는 역사적 계기들이 분명히 존재했었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위에서도 말한 것
처럼, 1차대전 전후한 시기에는 유진 뎁스의 사회당이 백인 노동운동이 진보적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을 기회를 추구했었다. 또한, 2차대전 직후에는 뉴딜연합의
진보적인 계승을 추구하는 세력들이 월레스 선거운동에 결집했었다. (이 선거운동
의 상대적인 패배가 매카시즘 발호의 신호탄이 됐었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lesser-evil”ism(차악선택론)이 고착된 것은 흑·백인을 막론한 전투적 노동운동
이 가장 고양됐던 1930년대에 산별노조 핵심세력들이 독자적인 노동자정당이 아니
라 뉴딜연합 지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신자유주의화가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넘어서고 미국 내 사회운동이
세계화 반대 투쟁이라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지금, 네이더 선거운동은 또 한 번
미국 정치가 자신의 ‘구조적 숙명’으로부터 벗어날 기회를 추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가 다시 이 기회를 삼켜버릴지 아니면 이제 그 ‘역사’가 전혀 다른
역사의 가능성에 직면해야만 하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미국의 ‘2월 혁명’을 향해
한편, 플로리다 재검표를 둘러싼 초유의 국론분열 사태는 네이더 선거운동과 함
께 미국 정치의 또 다른 심원한 변화 조짐을 보여준다. 국민들의 직접 투표가 아
니라 선거인단 방식으로 대통령을 뽑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제도-우리나라 4, 5
공에나 가능했던-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임은 이미 보수 언론을 통해서도 지적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직접투표로는 이미 승자인 고어가 부시와 승패를 둘러싼 이
전투구를 벌여야만 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비상식적으로 도안된 투표용지나 흑인
들의 투표 참여에 대한 조직적인 방해 등이 미국 민주주의의 현 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아무래도 이번 사태의 핵심은 역시 미국 정치의 뿌리깊은 제도
적 특성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언론의 설명 기사에서도 지적되고 있는 것처럼, 미국인들은 자기네 나라가
‘연방공화국(federal republic)’이 아니라 ‘합중국(federal union)’임을 새삼 확
인하고 있다. 미국 정치체제는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연방의 정
치적 안정을 확보하는 것을 중심적 약속으로 삼는다. 이는 {연방주의자 교서
(Federalist Paper)}라는 저서(국내에도 번역됐음. 한울사 발간.)를 통해 미국 건
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매디슨이 밝힌 정치적 원칙 이래 미국 정치의 골간을 이
뤄왔다.
바로 이 때문에, 하원의원보다 더 막강한 권한을 지니는 상원의원은 인구비례가
아니라 주당 2명이라는 할당에 의해 선출된다. 즉, 가장 커다란 캘리포니아주의
주민들은 동부의 작은 주 주민들에 비해 몇백분의 일의 정치적 권리만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상원의원은 거의 종신직에 가깝다. 지금까지 상원의원의 재
선율은 90% 이상을 기록해왔다. 이러한 상원이 지배하는 미국 정치는 현대 민주주
의보다는 고대의 원로원 정치에 가까운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의사가 가장 정교하게 반영된다고 평가되는 정당명부비례대표제의 관
점에서 보면, 이러한 미국 정치는 국민 의사의 ‘이중의 왜곡’으로 특징지어진다고
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원의원 선출의 경우도 지역구 승자독식제를 통해 정
당명부비례대표제에 비하여 열등한 대의 체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여기에 더해 더
욱 더 기형적인 상원제도가 가세함으로써 대의제도의 그 ‘대의성’은 완전히 무색
해지고 말기 때문이다.
대통령 간선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원시적 제도의 이면에는 상원의 구성 원
칙과 동일한 ‘연방의 정치적 안정성 확보’라는 요구가 버티고 있다. 이 때문에,
낡은 정치체제에 합의하고 있는 공화당과 민주당 이외의 정치세력은 한 주 이상에
서 단숨에 1위를 얻는 기적을 연출하지 않고서는 현실정치세력으로 도저히 인정받
을 수 없다.
그리고, 이번 고어-부시 사태에서도 최후의 심판자로 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복잡하고 강력한 사법제도가 이러한 원로원 정치의 최종적 버팀목 역할을 한다.
미국 주류 정치 내부에 진보적 개혁의 목소리가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됐던 지난
30년대에 진보적 행정부와 보수적 대법원 사이의 힘 겨루기가 시작된 이래, 사법
부는 사실상 미국 정치의 성감대로 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중의 선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지식인 엘리트들이 강력한 최종 결정권을 지니는 이 체제는
사회 곳곳에 뿌리박은 변호사라는 유기적 지식인들에 의해 고도의 안정성을 획득
한다.
심지어는 진보세력 내 고어 지지파의 주 논거도 고어가 대통령에 당선돼야 대법
원 구성에서 진보파가 다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소위 진보세력조차도 민중
의 힘이 아니라 사법제도를 둘러싼 엘리트 중심의 지식-권력 게임에 운을 걸고 있
다는 이야기다.
이미 르윈스키 사태 때 매디슨주의적 헌정체계에 기반한 미국 민주주의의 문제
점을 지적한 바 있는 진보적 정치학자 다니엘 라자르는, 바로 이러한 문제들 때문
에, 민중의 의사를 보다 비례대표적인 방식으로 반영하는 대의제도의 구축은, 지
역구 승자독식제도의 개혁을 통해 새로운 진보세력 등장의 가능성을 열려는 영국
좌파의 경우 그 이상으로, 미국 정치에 심대한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야말로 미국 좌파의 일차적인 과제라는 것이다. 비록 그러한 대의제도가 도입된다
고 해서 변혁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는 ’10월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 할 ‘2월혁명’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관철을 관건적 과제로 삼고 있는 한국의 진보세력에게 이는 결코 남
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런데, 역사의 기회는 생각보다도 일찍 찾아왔다. 이번 플로리다 재개표 사태
가 어떻게 결말짓든 미국 민중들 사이에서는 자국 헌정체제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
기가 급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네이더 진영이야 이미 대의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해왔던 것이고, 이제는 민주당 지지자들까지도 당장에 대통령 직접
투표제도를 실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국민의
60% 이상이 대통령 선거제도의 개혁에 지지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대통령 선거제도뿐만 아니라 상원제도의 개혁 등으로까지 발
전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가장 ‘중세적인’ 정치 구조를 지닌 나라가 세계 민주
주의의 수호자인 양 제국주의 지배를 계속해온 모순된 세계구조를 그 가장 핵심에
서 뒤흔드는 움직임이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움직임이 마침 네이더 선거운동을
통해 힘을 얻은 진보적 제 3당 건설운동과 접합된다면, 그 파장은 더욱더 클 것이
다. 물론 세계적 경제위기를 홀홀 단신으로 막아온 미국경제의 10년 장기호황의
끝마무리 조짐도 심상치 않다. ([한겨레 21]의 이공순 기자는 이러한 미국 헌정의
위기가 미국의 적 ‘사회주의권’의 붕괴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는 통찰력을 보여주
었다. 이는 마치 이탈리아의 부패정치구조가 반공주의의 필요성이 감소하면서 무
너진 것과 비슷한 것이다.)
게다가, 고어가 최종 당선되든 부시가 최종 당선되든 차기 미국 행정부는 공화
당과 민주당의 당파적 차이를 최대한 봉합하는 이른바 ‘중도파 연립정부’가 될 가
능성이 높다. 이는 노동운동의 주류나 흑인, 라틴계, 아시아인 사회가 민주당을
지지해야 할 이유가 더욱더 감소될 것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이크 데이비스
가 미국 사회의 근본적 변혁 주체로 주목했던 유색인 사회는 과연 이번 선거에서
부시-고어 경쟁이 ‘조용한 내전’의 성격을 띠도록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
다. 이 고삐 풀린 힘이 민주당이라는 방파제를 넘어설 때 사태는 또한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역시 제국주의는 오직 내부로터만 확실하게 붕괴할 수 있는 것인가? 베트남 반
전운동이 열어놓았던 역사적 가능성이 다시금 우리를 맞고 있는 것인가? 아무튼,
“시대, 그것은 변화하는 것”(“The times, they’re a changing”)이라는 60년대 밥
딜런의 노랫말은 이제 다시금 흘러간 유행가 그 이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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