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연대의 법통을 이어받은 개혁연대가 어제 국가보안법의 실질적 개폐 및 인권위원회법과 부패방지법의 올바른 제정을 요구하며 명동성당에서 사흘간 밤샘농성에 돌입했다. 정치권의 무관심과 무책임 속에서 이들 3대 개혁입법이 지연되고 왜곡되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서였다. 대표적으로 ‘인권법’이 어떻게 지연, 왜곡돼 왔는지 살펴보자. ‘인권법’은 지난 3년간 김대중 대통령의 꾸준한 관심과 독려의 대상이 된 이른바 ‘대통령 특명사항’이었다. 그 덕에 여권은 인권법에 성의를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야당도 명분과 당위성이 탄탄한데다 예산과 인력이 크게 소요되는 기관이 아닌지라 반대할 수 없는 법안이었다. 한마디로, 인권법은 시대가 요구하고 국민에게 이로운,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정치적 호재였다.
그럼에도 ‘인권법’은 지난 3년간 제정되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었다. ‘국제기준에 부합하고 인권단체가 환영하는’ 법안을 만들려면 처음부터 인권전문가들과 인권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법안기초를 의뢰했어야 했다. 대통령은 달리 결정했다. 인권위의 조사대상이 될 법무부에 인권위 설계책임을 맡긴 것이다. 감시기관의 설계권을 피감기관에 부여한, 잘못된 선택의 대가는 혹독했다. 우선 인권단체와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모범 인권법안 대신 법무부와 검찰의 입맛에 맞는 부실 인권법안이 탄생했다. 또한 인권단체의 반발과 대통령의 체면손상, 그리고 입법지연이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여러 차례의 수정을 거치면서 가장 발전했다는 법무부의 최근 설계도에 따르더라도 인권위는 법무부한테 활동예산과 근거법령을 의존하는 법무부 산하기관이다. 피진정인이 아무리 허위진술과 증거날조를 일삼아도 처벌하지 못한다. 자칫하면 휘말리기 쉬운 명예훼손 시비로부터 지켜줄 면책특권이 없다. 인권관련 법령을 만들고 고칠 때 협의권한도 없다. 인권위의 권고에 대해 대상기관은 하다 못해 이행계획을 제출할 필요조차 없다. 한마디로, 검찰 기타 권력기관을 물어뜯을 이빨은 물론 스스로를 방어할 손톱마저 뽑힌 무기력한 인권위, 이것이 검찰의 자존심 및 법무부의 조직이기주의와 양립가능한 ‘독립적이고 실효성 있는 인권위’의 참모습이었다.
무참히 농락 당한 인권단체들은 참담한 심정으로 일주일 단식농성을 조직하며 저항했다. 사회원로들과 국제사회도 비난성명을 쏟아냈다. 체면과 위신을 구긴 대통령은 급기야 재검토를 지시했다. 법무부는 막무가내로 버텼다. 위에서 언급한 기본결함만큼은 ‘재검토’의 대상이 아니라고 우겼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여권 핵심인사들은 법무부를 두둔하고 나섰다. 독립인권위를 만들 경우 첫째, 검찰이 정권의 품을 결정적으로 떠날까 두렵고, 둘째, 인권위가 정권이 감당하기 어려운 독자적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분들은 법무부가 과대포장하여 주입시킨 얄팍한 정치적 산술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인권위의 철학과 원칙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웬만큼 연구한 입장에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인권위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말해줘도 믿지 않았다. 그저 입으로만 인권대통령과 인권시대를 노래할 뿐이었다. 인권과 권력은 이처럼 거리가 멀었다.
다행히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진퇴양난에 빠진 입법과정에 돌파구가 생겼다. 민주당 인권특위는 적어도 인권법만큼은 연내 제정할 방침을 세우고 법무부에게 입법과정에서 아예 물러설 것을 설득 중이다. 또한 인권위에 독립국가기관의 위상을 부여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날벼락을 맞은 법무부가 분노의 칼을 갈고 인권단체들이 환호의 뜻을 표한 것도 잠시. 애당초 제대로 된 인권위에 대한 올바른 철학과 두둑한 배짱을 갖지 못한 여권 핵심부는 법무부의 반발을 빌미 삼아 위상 문제를 제외하고는 법무부안을 고스란히 여당안으로 삼기로 결정한다.
이와 함께 상임위원 수는 위원장을 포함해서 2인을 넘을 수 없으며, 명예훼손에 대한 면책특권은 인정할 수 없다고 인권단체에 통보한다. 하지만 명예훼손에 대한 민형사상 면책특권은 호주와 뉴질랜드는 물론 남아공과 우간다, 인도와 스리랑카, 말레이시아와 피지, 폴란드와 우즈벡 등 거의 모든 나라의 인권위의 필수품이다. 면책특권이 없으면 인권위가 검찰 등 권력기관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 휘둘리며 뇌사상태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엔의 권고사항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입법례에서 확인되는 이런 면책특권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의 정부가 한사코 손사래를 칠 수 있는 것인가. 도대체 왜들 이러는가? 무엇 때문에 인권위를 두려워하며 일을 못하게 하는가?
상임위원의 숫자만 해도 그렇다. 법무부안도 6인의 상임위원안이다. 인권의 다양성과 예상 업무량을 감안할 때 법무부도 상임위원이 6명은 필요한 것으로 판단한 셈이다. 그럼에도 여권은 이제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의 상임위원이면 족하다는 입장이다. 차관급 상임위원 자리를 여섯이나 신설하는 게 부담스럽고, 위원회의 일은 사무처가 하지 위원들이 하는 게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인권단체들은 상임위원의 숫자를 줄이기보다는 직급을 하향 조정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다. 상임위원장과 상임위원 1인의 위원회 체제에서는 모든 업무가 사무처를 중심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는 바, 바로 이러한 사무처 중심주의야말로 각종 위원회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권 핵심부에 묻는다. 그대들은 정녕 50년만의 평화적 정권교체로 들어선 국민의 정부, 그것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인권대통령의 정부에 부끄럽지 않은 모범적 인권법을 만들어 국민과 역사에 헌정할 의지가 있는가? 그대들은 김대중 대통령의 한국과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에 쏠리는 국제사회의 이목과 기대를 인식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3년이나 걸려 간신히 법무부한테 인권위 설계를 맡긴 원초적 오류에서 벗어나는 마당에 무슨 까닭으로 법무부의 부실 설계도를 신주단지처럼 부여잡고 있는가? 혹시 인권위를 법무부의 손아귀에서 떼어낸 정도의 기초적 사항을 역사적, 정치적, 국제적 책무의 완수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 법무부의 조직이기주의를 반영할 뿐인 의도적 분식과 부실을 훌훌 털어 내고 법안의 내실을 다져야 한다. 인권대통령이 인권지도자, 인권피해자, 인권활동가들에 둘러싸여 모범적인 인권법안을 공포하며, 새 시대의 출범을 다짐하고 경축하는 역사적 순간을 꿈꿔야 한다. 우리 인권단체들은 이러한 꿈과 감격에 이끌려 인권법안의 내실화를 위한 단호한 투쟁에 돌입한다. 인권은 오직 투쟁으로만 쟁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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